‘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展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3월 24일~5월 22일

작품, 아카이브 등 240여 점 전시
생애 전반의 주요 작품 총망라해

2021년,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141점 기증

화단의 몰이해로 좌절, 불교에 침잠
가시적 사물 너머의 본질 추구 몰두
“내가 평온할 땐 불상이 미소 짓고,
내가 우울할 땐 불상도 울고 있다”

사진: 권진규, 〈불상〉, 1971, 나무, 45×24.2×17.5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 권진규기념사업회 · 이정훈.
사진: 권진규, 〈불상〉, 1971, 나무, 45×24.2×17.5cm, (사)권진규기념사업회 기증,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 권진규기념사업회 · 이정훈.

 

한국현대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은 3월 24일부터 5월 22일까지 서서문 본관에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권진규(1922~1973) 작가가 일평생 ‘노실의 천사’를 구하고자 했던 여정을 따라 1947년 그가 본격적으로 미술에 입문한 성북회화연구소(1946~ 1950)시절부터 1973년 5월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주요 작품을 총 망라했다. 조각, 드로잉, 유화, 아카이브 등 240여 점을 선보인다.

‘노실의 천사’는 1972년 3월 3일 〈조선일보〉 연재 기사 ‘화가의 수상’ ⑧에 실린 권진규의 시, ‘예술적(藝術的 산보) - 노실(爐室)의 천사(天使)를 작업(作業)하며 읊는 봄, 봄’에서 인용했다.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이 시는 그의 예술에 대한 태도, 작업 대상, 작업 방법, 추구하는 바, 삶의 회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까지 낱낱이 담고 있다. 그의 시구 “진흙을 씌워서 나의 노실(爐室)에 화장(火葬)하면 그 어느 것은 회개승화(悔改昇華)하여 천사(天使)처럼 나타나는 실존(實存)을 나는 어루만진다.”에서 노실은 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를 의미한다. 따라서 ‘노실의 천사’는 그가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이상, 즉 승화된 존재, 순수한 정신적인 실체로 볼 수 있다.

2021년,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은 많은 사람들이 권진규 작품을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총 141점을 기증했다. 기증 작품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조각, 소조, 부조, 드로잉, 유화 등으로 다양한데, 특히 1950년대 주요 작품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미술관은 기념사업회와 유족의 뜻을 기리고, 2022년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회고적 성격의 전시로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 - 노실의 천사’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평생을 불교와 함께해 왔다는 점에 착안하여 시기별로 입산(入山, 1947~1958), 수행(修行, 1959~ 1968), 피안(彼岸, 1969~-1973)으로 전개된다. 세속적 삶을 떠나 고독한 미술의 세계로 입문하여 평생을 수행하듯 작업에 임했지만 살아생전 한국화단의 몰이해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불교에 더욱 침잠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과 작업을 그대로 담았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은 ‘지원의 얼굴’(1967)로 대표되는 여성흉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동물상, 여성두상, 여성상, 자소상, 부조를 비롯해서 불상, 탈, 가면, 기물, 잡상, 유화, 드로잉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는 자신을 예술가이기 전에 장인으로 칭했고, 그 옛날 이름 없는 장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에 큰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작품의 대상이나 크기에 따른 특별한 위계를 두지 않았다. 다만 그는 일관되게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동양과 서양의 고대 유산을 참조, 자신만의 강건하고 응축된 형태를 통해 영원성을 구현했다. 이는 그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썩지 않는 테라코타와 방부·방습·방충에 강한 건칠로 작품을 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예술관인 영원성, 전통의 현대화와 맞닿아 있는 테라코타와 건칠 제작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장을 마련, 그의 독자적인 작품세계 형성에 대한 기초적이면서도 충실한 이해를 돕고자 했다.

“나의 마음이 평온할 때는 불상이 미소 짓고 있지만 나의 마음이 우울할 때는 불상도 울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는 불상과 보살상이 다수 있다. 그에게 불상은 종교적 숭배나 구원의 상징물을 넘어 그 자신을 표현하는 매개체였다. 그는 광복 후 1947년 성북회화연구소에 다니며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 마무리 작업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이 훗날 그가 조각을 전공하고 불교의 명상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권진규 작가는 당시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채, 다양한 레퍼런스를 반영하면서 작품에 몰입하여 자신만의 모더니티를 구현했다. “진실의 힘의 함수관계(函數關係)는 역사가 풀이한다.”는 그의 시구처럼,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 주제, 재료, 기법 등에 있어서 어떤 제약도 없는 동시대 미술에서 그의 작품이 갖는 의미를 편견 없이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전시는 시기별로 변화하는 권진규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가 영감을 받은 공간에서 그의 작업세계를 깊이 느낄 수 있다. 그의 주요 제작 기법인 테라코타와 건칠 제작 과정을 볼 수 있으며, 작품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권진규 작가의 작품 세계 형성에 있어 기반이 된 아카이브와 드로잉에서 그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허명회 고려대 명예교수와 허경회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가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오후 2시 특별 도슨트로 참여한다.

권진규는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늑막염에 걸려 투병하다가 16세가 되어서야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춘천중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사설 미술 아틀리에에서 미술 수업을 받았다. 1948년 도쿄예술원에 들어가 미술교육을 받았고, 1949년에는 무사시노 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여 조각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1952년 일본의 제37회 이과전에서 ‘백주몽(白晝夢)’으로 입상했고, 무사시노 미술학교를 졸업한 1953년에는 제38회 이과전에서 ‘마두(馬頭)’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1959년 귀국하여 동선동에 작은 집을 장만하고 마당에 손수 설계한 9평짜리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 작업실에서 경복궁 난간의 십이지상, 남대문 용마루 잡상 등을 스케치하는 등 전통문화에 몰두했으며, 새로운 부조작업과 오래된 공예기법인 건칠(乾漆)을 조각의 기법으로 발전시키는 시도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3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다. 1965년 서울 신문회관에서의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일본 니혼바시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 그리고 명동화랑 1주년 기념초대전으로 3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1973년 5월 3일, 51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작업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틀리에는 2004년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보존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불상’(1971년), ‘보살입상’(1955), ‘자소상(自塑像)’(1966), ‘여인좌상’(1972) 등이 있다. (02)2124-8800.

권진규 조각가 ⓒ 권진규기념사업회
권진규 조각가 ⓒ 권진규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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