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파 스님, 옻칠로 울주 암각화 재현

4월 24일부터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 마당에 전시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두점 연못에 띠워
“사각 연못 자연 액자”…최초의 사찰 수중 회화전

가로 8m 세로 4.5m, 반구대암각화 실물 크기로
옻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물 속에서 썩지 않아
숲에 수조 만들어 옻칠그림 물에 담가 전시 예정

“우리나라 역사를 대략 5천 년으로 잡는데,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는 이보다 훨씬 전인 7천 년 전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러니 암각화는 우리 한국 미술의 원조이자 인류 문화의 시초라 할 수 있죠. 우리 미술하는 사람들은 위대한 대자연에 그려진 이 암각화를 보면서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보는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이 그려질 당시에는 지금은 흔한 로프줄이나 사다리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 절벽에 저런 그림이 새겨질 수 있었는지 그 자체가 경이로울 뿐입니다. 내용도 그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가 그대로 그림으로 기록돼 있죠. 제가 암각화를 처음 본 것은 40여 년 전이었습니다. 지금처럼 분쟁이나 갈등도 없었을 그 시대의 생활상을 유추해 세계의 최고 걸작인 우리 자랑스런 문화를 예술로 펼쳐 보이고 싶었습니다.”

4월 24일 영축총림 양산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의 주석처인 통도사 산내암자 서운암(감원 성연) 경내 장경각 앞 얕은 인공 연못에는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와 ‘천전리 각석’을 그린 대형 수중 옷칠 작품 2점이 일반에 공개됐다. 마치 뗏목을 띄운 형상이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대곡천에 있는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는 제작 시기가 기원전 3500년~7000년으로, 그 추정 연대의 폭이 넓다. 절벽에 새긴 그림인 반구대 암각화는 사람과 호랑이, 거북이 등 당시 신석기인들의 수렵 채집생활이 잘 묘사돼 있다. 특히 고래가 많아 당시 이미 그물과 목책으로 고래잡이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전 세계서 가장 오래된 포경 유적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지난 1971년 발견됐지만, 그보다 앞선 1965년 반구대 암각화 앞을 흐르는 대곡천 하류에 사연댐이 생기면서 해마다 우수기에는 암각화가 물에 잠기면서 훼손이 진행돼 왔다. 하지만 댐 수위조절을 하면 시민 식수가 모자란다는 반대의견으로 반구대암각화 보존 해법을 찾지 못해 오늘에 이르렀다.

인근에 있는 천전리 각석도 국보 147호로 지정돼 대곡천 암각화군을 이루고 있고, 이곳은 지난 2010년 1월 1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바 있다.

이번 옻칠 대형 작품은 방장 성파 스님이 삼베에다 옻칠한 건칠 기법과 나전칠기 공법으로 3년여에 걸쳐 완성했다. 가로 8m 세로 4.5m 크기로, 반구대 암각화 등과 똑같은 실물 크기다. 보고 있노라면 옻칠 특유의 중후한 질감이 묻어났다.

성파 스님은 “50년 전 암각화가 발견됐을 때 탁본을 떴는데, 지금 가서 다시 보면 마모돼서 원형보존이 안 돼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을 위해 국립경주박물관서 암각화의 마모된 부분을 컴퓨터로 원형 복원해 발간한 책을 보면서 비례에 맞춰 1:1 비율로 대형 옻칠 판을 만들어 자개를 붙였죠.”

반구대 암각화는 옻칠판 위에 자개 조각으로 선사시대 고래와 호랑이, 선사인과 그물망 등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천전리 각석 역시 자개 조각으로 기하학 무늬나 문자를 만들어 붙였다. 새까만 옻 칠판을 전통 방식으로 직조된 두꺼운 삼베를 겹겹이 쌓아 만든 뒤 그 위에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형태로 박아 넣는 나전칠기 공법이 적용됐다.

특히 이번 작품은 지금까지 사연댐 물에 잠겨 훼손 논란을 빚은 반구대 암각화가 최근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침수를 막기로 합의함에 따라 가치가 높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연못에 설치된 반구대 암각화 작품이 사연댐에 실제로 잠겼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에 잠긴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옻칠 판에 고래와 사냥꾼, 뭍·바다 동물들이 조화롭게 어울린 반구대 암각화의 장관이 영롱한 자개 이미지로 수놓아져 빛을 뿜어내고 있다.

많은 오브제중에서 스님은 왜 하필 공정도 까다로운 옻칠을 택했을까? 그 물음에 성파 스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합천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절에서 만든 옻 냄새에 익숙했어요. 특히 사찰에서 많이 사용해 ‘꿈에서 스님만 봐도 옻이 오른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죠.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칠 문화를 꽃 피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숭유억불의 조선 시대부터 칠 문화가 쇠퇴했어요. 옻은 그림을 그리는 물감으로 사용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리는 바탕 재료로도 굉장히 다양하게 쓰일 수 있어요. 그만큼 매력이 있는 미술 재료죠. 여기에다 삼베를 켠켠히 쌓을 때마다 열 차례 넘게 옻칠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물 속에서도 썩지 않고 변하지 않습니다. 원형이 훼손되거나 변형이 안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번 야외 대형 프로젝트는 성파 스님의 장벽을 뛰어넘는 선의 기지와 예술적인 큰 상상력에서 비롯됐다. 즉 사각 연못이 대형 액자가 되고 그 위에 자연스럽게 눈비가 오거나 낙엽이 져서 연못에 스며들면 자연스럽게 대자연의 화폭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성파 스님은 이번 전시에 만족하지 않고 올 가을쯤 서운암 뒤 이팝나무 숲에도 수조를 만들어 그동안 작업한 옻칠 그림들을 물에 담가 전시할 예정이다. 세계 최초의 숲속 수중 전시에 도전장을 낸 셈이다.

성파 스님은 “1년내내 전시 하다보면 구름, 달, 별, 해 등이 물에 비치겠죠. 연못 안 옻칠 작품이 인위적이라면 자연의 섭리와 변화들이 화폭에 보태지는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라는 진리를 관람객들에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서운암서 한국적 국가대표 미술 재료인 ‘옻액’을 활용해 ‘칠화’(漆畵) 작업을 한다. 옻에 상처를 내면 나오는 ‘옻액’에 석채, 흑연 등 다양한 재료를 섞어 직접 옻 물감을 만든다. 전국 사찰 중 유일하게 칠공방이 있는 이 곳에서다. 그래서 서운암은 우리나라 사찰 옻칠 문화가 계승되는 총본부인 셈이다. 성파 스님은 옻칠 작업으로 공예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칠화’로 영역을 확대했다. 칠화는 내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보적 기법이다. 유화는 여러번 덧칠해 마지막에 칠하는 색을 보여주지만, 옻칠화는 덧칠한 부분을 깎아내 속을 보여준다. 어떤 부분을 얼마나 깎아내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성파 스님은 “표면을 버리고 이면을 드러내는 기법은 옻 물감 밖에 없다”며 “옻 물감은 화려하면서도 중후한 맛이 나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색감이 생생히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성파 스님이 칠화를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우리 전통 산수화와 옻칠 그림을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중국의 일류 대가들 작업실을 10여 년간 왕래하고 머물면서 일일이 사사해 오늘날 옻칠 민화와 건칠 설치작업, 암각화 재현 작업을 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었다.

이후 성파 스님은 칠 문화 부흥을 위해 제자를 양성중이다. 공방에서 5기 50명이 수료했고 그 중 7명이 옻칠문화재 수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옻칠로 그리는 민화 과정도 벌써 3기가 수료했다. 그런데 옻칠을 배우려는 스님 제자들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한편 성파 스님은 1960년 통도사서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197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문경 봉암사 태고선원 등 제방 선원서 정진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제5ㆍ8ㆍ9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교무부장,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옻칠불화, 민화 등 전통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7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1983년 옻을 이용한 개인전을 처음 연 이후 국내외에서 전통 옻과 불교미술을 접목한 전시를 10여 차례 열었다. 팔만대장경 각 한벌을 도자판 두 벌로 만든 16만 도자대장경을 21년간 작업해 2012년 장경각에 봉안해 교단과 문화재계를 놀라게 했다. 2014년에는 옻칠 물감으로 그린 민화를 처음 선보여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현재는 조계종 원로의원과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으로 수행정진하고 있다.

옻칠로 재현한 울주 반구대암각화 위에서 제작자인 성파 스님이 도판을 보고 있는 모습.
옻칠로 재현한 울주 반구대암각화 위에서 제작자인 성파 스님이 도판을 보고 있는 모습.
‘천전리 각석’을 실제 크기의 옻칠로 재현한 성파 스님.
‘천전리 각석’을 실제 크기의 옻칠로 재현한 성파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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