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 쌍계사서 영결 ·다비식
우중에도 사부대중 모여 애도
가르침 따라 정진 이어 갈 것
선·교·율 삼장에 투철한 안목
근면한 수행가풍과 근면 강조

쌍계총림 방장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영결다비식이 3월 27일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쌍계총림 방장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영결다비식이 3월 27일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春來萬像生躍動 (춘래만상생약동)
秋來收藏待次期 (추래수장대차기)
我於一生幻人事 (아어일생환인사)
今朝收攝歸故里 (금조수섭귀고리)

봄이 오니 만상이 약동하고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
내 평생 인사가 꿈만 같은데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

지리산 무쇠소 쌍계총림 쌍계사 방장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임종게다. 고산 대종사는 이 와 생명이 움트고 희망을 노래할 때 무상을 마지막 가르침으로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쌍계총림 방장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영결법요식이 327일 쌍계사 도원암 앞 광장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쌍계총림 방장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영결법요식이 3월 27일 쌍계사 도원암 앞 광장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쌍계총림 방장 고산당 혜원 대종사의 영결법요식이 3월 27일 쌍계사 도원암 앞 광장에서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명종 5타로 시작해 삼귀의 동주 스님, 선훈 스님의 영결법요 문도대표의 헌다 및 헌향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 스님 행장 소개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대중들은 고산 대종사의 육성 법문을 들으며 끝까지 정진을 당부한 대종사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다.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영결사에서 언제나 멈추지 않는 법륜처럼 손 안에서 돌아가던 큰 염주가 이제 큰스님을 따라 적정부동(寂靜不動)의 경계에 들었다대종사님께서 남겨 주신 염주는 저희들에게 수행과 전법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무언의 부촉일 것이다. 저희들은 대종사님께서 부모미생전의 소식을 다시 세상에 펼칠 인연을 일구월심 기다리며 오늘의 아쉬움을 달래겠다고 말했다.

영결사를 하고 있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영결사를 하고 있는 총무원장 원행 스님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은 이제 자애스러운 모습과 대방무외(太方無外)한 선지(禪旨)와 대기대용(大機大用)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누구에게 생사의 어둠에서 벗어나는 길을 물어야 하고 격외의 진수를 배워야 합니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정문 스님은 저희 후학과 제자들을 비롯한 사부대중들에게 아직도 스님의 가르침이 필요하며 도저히 보내드리기 어렵다고 애도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경우 스님은 수미산만큼 많은 불사를 이루시고도 단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던 대종사의 법문이 생생하다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들어 보이신 등불을 따라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도록 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스님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이어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영진 스님과 주윤식 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의 조사도 이어졌으며 문도를 대표해 쌍계사 주지 영담 스님은 참석 해 준 모든 대중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오직 정진으로 대종사의 은혜를 갚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수 조영남은 고산 대종사의 생전 직접 남긴 시에 곡을 만들어 노래를 부르며 추모했다.

스님의 법구가 연화대에 안치되고 있다
스님의 법구가 연화대에 안치되고 있다

영결식이 마치자 지리산을 덮고 있던 봄꽃마저 색을 잃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만장을 든 사부대중은 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으며 법구는 고산 대종사가 평소 아꼈던 쌍계사 차시배지와 콩밭, 꽃길, 목암마을 등을 지나 마지막으로 연화대에 안치됐다. 거화의식이 진행되자 대중들은 오열했고 큰 스님 불들어갑니다며 소리치고 대자비심으로 속환사바 해 불일(佛日)을 밝혀 줄 것을 기도했다.

고산 대종사는 1933년 음력 129일 경남 울주군에서 출생했다. 13살에 출가해 동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았다. 계행에 철저하고 경안이 남달랐던 대종사는 1961년 김천 직지사에서 고봉 스님께 전강을 받았고 1972년 부산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석암 스님께 전계를 받았다.

고산 대종사는 젊은 시절 깨달음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제방 선원에서 용맹정진했으며 대종사의 오도송은 간절한 정진의 정점이었다.

心行一場夢(심행인장용) 息心卽是覺(식심즉시교)
夢覺一如中(몽교일여중) 心光照大千(심광조대천)

마음 작용은 한바탕 꿈이요, 한 마음 쉰 것이 곧 잠깬 것이라
꿈과 잠깸이 한결같은 가운데 마음 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도다

고산 대종사는 후학과 불자들의 포교에도 열과 정성을 다했다. 1963년 금룡 청암사에서 강사로 지내며 후학을 양성하였고, 1971년 부산 범어사에서 강사와 포교사를 역임하며 불법의 전수와 홍포에 진력했다. 1976년 부산 혜원정사와 부천 석왕사를, 1998년에는 통영 연화사를 창건했다.

대종사는 청암사 시절부터 근면한 수행가풍을 역설했고 잠깐도 헛되이 살지 말라, 부지런히 힘쓰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다고 당부했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며 승가의 자립과 승풍의 근면함을 강조했다.

1998년 대한불교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에 취임하고도 대종사의 수행가풍은 계속되었으며 종단 스님들이 너그럽고 당당하기를 늘 당부했다.

고산 대종사는 2002년 대한불교조계종 포교대상과 2006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창건 20주년 공로패를 수상했다. 2006년 종단의 원로의원이 되었으며 2008년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전계사로 추대됐다. 2013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쌍계총림 방장에 추대되었으며 <우리말 불자수지독송경>, <반야심경 강의>, <육조단경 강의>, <보살계 강의>, 그리고 일대기인 <지리산의 무쇠소>와 같은 수많은 저서를 통해 지계와 수학과 정진과 포교의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의 한 생애의 길을 열어 보였다.

고산 대종사는 불기 2565323일 오전 846분 쌍계사에서 법랍 74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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