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 입은 웹툰, 여성을 말하다

부처님께서 주신 이름 ‘해송’
남 동생에게 빼앗긴 주인공
고군분투 성찰·성장 스토리

불교 이미지·철학 활용한
주인공의 심리묘사 탁월해

‘연꽃같은사람’을 지향하며
여성간의 연대·저항 강조

단행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만날 수 있는 외전 ‘봄맞이’의 한 장면. 울고 있는 주인공 숙이의 진짜 이름 ‘해송’을 지장보살이 불러준다.
단행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만날 수 있는 외전 ‘봄맞이’의 한 장면. 울고 있는 주인공 숙이의 진짜 이름 ‘해송’을 지장보살이 불러준다.

한 어머니가 꿈을 꿨다. 부처님 앞에 스님과 소년 ‘해송’이 나타났다. 스님은 말한다. “과거에 큰 죄를 진 아이인데 긴 시간 수행을 해 마침내 속죄를 하게 됐다.” 그리고 해송을 데려가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다. 10달이 지나 태어난 아이는 남아가 아닌 여아였다. 시어머니는 그런 여아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뒤이어 태어난 남동생에게 ‘해송’이라는 이름을 쓰게 한다. 

공명 작가의 웹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도입부다. 작품은 부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 ‘해송’을 빼앗긴 주인공 숙이가 여러 인물들을 만나면서 연대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공명 작가의 데뷔작으로 2019년 제1회 NC버프툰 글로벌웹툰스타오디션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수상 후 같은 해 버프툰에서 연재를 시작했으며, 높은 몰입도와 독창적인 그림체로 화제를 모으며 단숨에 최고 인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인기로 최근에는 단행본으로 편집돼 출간되기도 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도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큰 주제는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다.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빼앗긴 들’은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였다면, 공명 작가의 웹툰에서 ‘빼앗긴 들’은 남동생에게 빼앗긴 숙이의 태명이다. 나아가 가부장제라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빼앗기고 희생을 강요당했던 여성들의 권리와 주체적인 삶이다. 

여성서사로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특징은 어머니 세대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로 주인공이 대학을 진학하는 1980년대까지 이어진다. 시대별로 변화하는 숙이의 일대기는 우리네 어머니의 이야기이자 현재 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숙이뿐만 아니라 권례(숙이 어머니)와 미자, 지민, 필남 그리고 가해 주체인 시어머니까지 모두 가부장제의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이 같은 갈등의 기저에는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내재된 가부장제가 있다.

작품 속에서 이를 극복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여성들의 연대다. 대표적 관계가 주인공 숙이와 동급생 지민이다. 둘은 상황은 다르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한다. 하지만, 이내 서로를 격려하며 성장한다. 

공명작가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제10화 여명의 한 장면. 사진제공= 문학동네
공명작가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제10화 여명의 한 장면. 사진제공= 문학동네

치유의 공간 ‘지장전’
작품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저항하는 숙이와 주변 인물들의 갈등을 그린다. 인물간의 날선 갈등과 번뇌를 풀어내는 기저의 중심에는 ‘불교’가 있다.

숙이가 어머니와 함께 처음 사찰을 찾은 건 자신이 애지중지 키웠던 뽀뽀라는 닭이 할머니에게 의해 죽임을 당하고 동생 해송의 저녁 밥상으로 오르면서다. 숙이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닭목이 비틀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는 닭을 먹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숙이를 데리고 어머니는 사찰의 지장전을 찾는다. 참배를 마친 어머니는 숙이에게 “사람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거나 평생 굶주리거나 아니면 짐승으로 태어나지. 뽀뽀가 닭으로 잠깐 태어났을 때 너를 만난 건 지장보살님께서 뽀뽀에게 준 큰 축복”이라고 달래준다. 

이후 숙이에게 지장전과 지장보살은 자신의 한을 토로하는 치유의 공간이자 대상이 된다. 때로는 지장보살을 보며 “구제 받는 사람은 따로 있다”며 울분을 토해내면서도 “저도 당신의 무릎에 앉을 수 있을까요”라며 지장보살의 가피를 받길 바란다. 

시즌1의 막바지, 숙이는 큰 병을 앓게 되고 꿈에서 육환장을 든 스님(지장보살)을 만난다. “자신이 있는 곳이 지옥이며 돌아가지 않고 싶다”고 우는 숙이에게 스님은 말한다. 

“지옥에 있는건 그들이다. 현재의 마음이 번뇌로 가득 찬 것이 곧 지옥이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귀이며, 어리석음으로 가득 찬 것이 축생이다. 비록 네 있는 곳이 지옥이라 할 지라도 사람은 끊임없이 육도를 윤회한다.”

지장보살을 현몽(現夢)한 숙이는 다짐한다. 스스로를 지옥에 두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바꿔 자신의 세상을 바꾸겠다고.  

공명 작가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장보살은 모든 지옥 중생이 구제되기까지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원력을 가진 분”이면서 “숙이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은 모두 지옥에 있다. 작품에서 이들을 구제하고 섭수하는 존재가 지장보살이며 숙이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조력해준다”고 밝혔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공명 작가의 웹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단행본 표지.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공명 작가의 웹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단행본 표지.

예토를 정토로 바꾸는 힘
현재 발간된 단행본에는 나오지 않지만 숙이를 변화시키는 사람 중 한 명이 지민이다. 시즌1 마지막화, 병을 털고 일어난 숙이는 지민을 찾고, 둘은 연지(蓮池)가 있는 정자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지민이 숙이에게 “연꽃은 더러운 진흙 속에서 청결하게 자라나는 꽃”이라고 소개하며 자신은 “가꿔지며 자라는 꽃이 아니라 스스로 진흙을 이겨내는 연꽃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예토(穢土)라는 진흙 속에서 정토(淨土)라는 연꽃을 피워내는 원동력은 자신의 변화에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주인이 되는 삶(隨處作主)이 자신의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자 주인공이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현재 버프툰에서 시즌3이 연재 중이며, 올해 말 총 120화 전후로 완결될 예정이다. 단행본 1권에는 연재 15화까지의 분량이 담겼다. 단행본에서는 단독 외전 ‘봄맞이’를 만나볼 수도 있다. 숙이가 엄마를 따라 쑥을 캐러 간 어느 봄날의 짧은 사건을 그렸는데 마지막 장면은 마치 한 폭의 불화 같다.

공명 작가에게 묻다

Q. 작품 구상은 어떻게 하게 됐나
A.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기획한 것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다. 여성 서사에 내가 좋아하는 불교 이야기를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담당 지도교수님도 부처님과 태몽이라는 주제를 좋아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여러 웹툰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계속 고배를 마셨다. 다른 작품을 하려고 했는데 지도 교수님이 “계속 밀고 나가라”고 격려해 주셨다. 결국 2019년에  제1회 NC버프툰 글로벌웹툰스타오디션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작가로 데뷔했다. 

Q. 작중 사찰명이 금산사다
A. 1화에 나오지만 작품 배경은 전북 전주다. 금산사는 나에게 익숙한 사찰이라서 배경으로 사용했다. 사실 외가가 전주인데, 외가에 가면 가족 모두 금산사를 찾아 참배한다. 작품에서는 주인공 마을의 사찰로 표현했다. 작품 내 사찰 일부 전각은 아차산 영화사다.

Q. 작중 지장보살은 어떤 의미인가
A.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시다. 작품 인물들은 모두 지옥에 산다. 사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극락과 지옥을 오가지 않는가. 지장보살은 이를 구제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는 숙이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보살님이다.

Q. 종교는 무엇인가
A. 무교다. 하지만 어머니가 불심이 돈독하시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서 사찰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사천왕상과 불보살상이 나를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코끼리를 좋아하는데, 코끼리 그림이 사찰에 많았다. 이것을 보는 것도 좋았다. 아버지께서도 불교철학과 문화를 좋아하셔서 평소 강의를 많이 듣는다. 어린 저에게 싯다르타 태자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기도 했다. 

Q. 불화를 보는 듯 하다. 불교미술을 배운 적 있나
A. 작가 지망생 때 어머니께서 저에게 탱화를 배워 볼 것을 권유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불교미술을 배우지는 않았다. 대학에서는 만화를 전공했다. 대신 불교회화 도록들을 많이 참고했고, 교리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작품을 그릴 때는 컷이라는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한다. 무한한 공간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혜석, 박생광 작가의 그림과 색채들도 많이 참고하고 있다.    

Q. 향후 작품 계획은
A. 나혜석 작가를 좋아해서 신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 작품에도 불교를 함께 다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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