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적 세계관으로 대대적 전환 필요

기후 위기는 거대한 담론
과거 환경 문제들의 총체
인본주의 가치 종말 예고
불교, 대안적 세계관 제시

불교적인 성찰이 대안 제시
인간·자연 하나임을 인식
달라이라마·틱낫한스님도
지속적인 관심·실천 촉구

기후위기는 그동안 우리사회에서 제기돼 온 모든 환경문제들의 총체적인 집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실제로 그동안 자연과 생태환경 보존을 위해 분야별로 진행돼 온 그간의 환경운동들은,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화두 앞에서 아연실색한 채 좀처럼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그만큼 거대하고 포괄적인 문제이며, 개인의 실천과 사회적 인식변화를 넘어선 전지구적이고 급박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문제 본질은 인간의 탐욕에 정당성을 부여한 물질문명의 폐해다. 이제 지구는 18세기 이후 인류를 지배해 온 물질중심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철학적인 성찰에 기반한 대대적인 변화 없이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이유다. 바로 이 지점에 불교의 역할이 있다.〈편집자주〉

일러스트=강병호

불교의 핵심적 사상은 모든 존재를 상호적 관계로 통찰하는 ‘연기(緣起)’이다. 연기법은 ‘제법(諸法)’이라 칭해지는 모든 존재가 상호관계 속에서 존재함을 의미한다. 〈화엄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일체 법계가 인드라망의 그물과 같음을 아신다’고 했다. 지혜의 눈으로 보면 온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그물코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인드라망의 씨줄과 날줄을 잇는 각각의 그물코가 우주법계와 연결돼 있듯이, 하나의 개체도 그와 같은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에 대한 생태적 통찰과 맥을 함께한다. 19세기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은 행태학에 대해 “유기체와 그 유기체들을 둘러싼 외부세계 간의 관계에 대한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생태학 역시 각각의 생물종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관계성을 시스템 속에서 통찰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불교의 연기적 관점에서 보면 나와 남이 둘이 아니기에(自他不二) 모든 생명을 향한 연민과 보살핌으로 대변되는 자비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불보살이 중생을 향해 대자비심을 일으키는 것 역시 동체대비(同體大悲), 중생과 자신이 동일체임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에 불성(佛性)이 있으며,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와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법화경〉에서는 부처님을 삼계라는 가정의 가장이자 자비로운 아버지로 표현하는데, 이것이 ‘사생자부(四生慈父)’다. 사생은 생명이 태서나는 네 가지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 간 차별이나 위계적 서열이 아닌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한다.

또한 불교에서 중생은 육도를 윤회한다고 보는데 중생은 인간 뿐 아니라 유정(有情),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갖춘 모든 생명체를 의미한다. 모든 중생이 윤회를 통해 형태를 달리하며 태어나기에, 현재의 동물도 전생에는 인간이었을 수 있고 인간 역시 동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모습은 인연관계에 따라 드러난 일시적인 모습이기에, 모든 생명이 평등하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나아가 불교의 자연관은 ‘의정불이(依正不二)’로 대변된다,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며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곧 자연이며, 자연이 곧 인간인 동질성을 드러낸다.

“대체로 몸뚱이는 흙·물·불·바람이다. 강한 것은 흙이 되고 연한 것은 물이 되며, 더운 것은 불이 되고, 숨 쉬는 것은 바람이다. 목숨이 다해 혼신이 가고 4대가 각각 흩어지면 능히 보전할 것이 없으니 몸이 아니다.”〈육도집경〉

“중생의 무리는 각기 차이가 있으므로 여러 가지 모습의 분신을 나태내어 그들을 제도하느니라. …. 때로는 산, 숲, 내, 강, 목, 샘, 우물의 모습을 나타내어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제도하며….”〈지장본원경〉

이처럼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불교적 세계관은 기후위기에 직면한 인류가 반드시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우리 앞에 당면한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관의 대대적인 전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산업혁명 이후 인류를 지배해 온 가치관인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자연과 차별된 가운데 지배적 입지를 점하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지금의 기후위기를 불러온 원인이 됐다. 때문에 전지구의 위기 속에서 불교적 대안으로 ‘에코 다르마’가 제시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에코 다르마는 생태적인 관심에 불교의 가르침과 그에 연관된 영적 전통을 결합한 것이다.

불교학자이자 선수행자인 데이비드 로이는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불광출판사)’ 서문을 통해 “우리와 지구가 분리돼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지구와 관계맺는 방식 또한 재구성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며 “불교의 많은 가르침에는 생태적으로 적용할 것들이 있기에, 소비주의에 사로잡힌 삶은 불교의 길과 양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달라이 라마

세계적인 불교지도자들 역시 기후위기와 관련한 지속적인 발언으로 인류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 스님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전 지구적 위기라는 미지의 영역에 진입해 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방식’은 계속될 수 없다. 우리는 이 세계를 바로잡고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며, 모든 인간과 모든 종을 위해 안전한 기후의 미래를 보장해야 한다.”(달라이 라마)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이미 2010년대부터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왔다.  2015년에는 “기후 변화 문제는 인류 전체의 책임”이라며 “‘세계의 지붕’인 티베트 고원을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특히 달라이 라마는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기후변화 캠페인’을 주도하며 수차례에 걸쳐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티베트 고원은 남극과 북극 다음으로 빙하가 많은 지역이지만, 지난 50년간 티베트 고원의 기온은 세계 평균의 3배에 해당하는 1.3℃ 상승했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해 7월에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G7 가상회의 참석자들에게 ‘세계 기상 이변 위기에 대해 긴급하고 단결된 조치’를 촉구한데 이어, “기후위기 문제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해결해야 하며 70억 인류를 상호의존적인 하나의 공동체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탁낫한 스님

틱낫한 스님은 2015년 파리 기후협정(유엔기후변화협약)을 이끌어 낸 숨은 공로자로 평가된다. 협약을 성공적으로 이끈 크리스티나 피게레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이 “이번 성과는 틱낫한 스님의 불교적 가르침 덕분이며 그는 기후협정의 영웅”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또한 스님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묻는 질문에 “우리 안에서 지구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답하는가 하면,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채식식단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우리 초록별이 어려움에 빠졌다는 것을 모두 안다.…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끝없이 소비하며, 애써 종소리를 못 듣는 척 외면한다…우리는 깨어 있는 마음의 종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 지구별의 운명을 결정할 힘은 우리에게 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상태를 모두 깨닫는다면 우리 모두의 집단적 의식 속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깨울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틱낫한 스님)

송지희 기자 jh35@hyunb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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