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통도사 다비식 엄수

통도사 한주 재관당 양진 선사의 다비식이 12월 12일 통도사에서 엄수됐다.

"문을 열면 문을 닫을 줄 알라"

통도사 양진 선사가 짧은 임종게를 남기고 1210일 오전 10시 좌탈입망(坐脫入亡)했다. 문을 여는 것이 태어남이라면 닫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죽음도 여여(如如)하게 맞으며 참된 회향을 참구 할 것을 당부하고 양진 선사가 홀연히 사바세계를 떠났다.

1210일 오전 10시 입적
스스로 곡기 끊고 정진이어
소유 일체 대중공양 회향해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 당부

통도사 한주 재관당 양진 선사의 다비식이 1212일 통도사에서 엄수됐다.

통도사 송수정에서 노재를 봉행 한 후 연화대로 스님의 법구는 이운 됐으며 다비의식이 진행됐다.

통도사 스님들은 스님의 영전에 헌화, 헌향하며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양진 선사는 말 그대로 한주(소임을 맡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이다. 상좌도 두지 않았고 통도사에서 40년 동안 조용히 수행 정진 했다. 하지만 양진 스님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 스님들은 바른 회향을 일러주는 삶, 그 자체였다고 회고 했다.

원오사 주지 정관 스님은 스님은 나눔으로 회향하고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는 소박한 삶으로 수행의 지표가 되셨다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공양미를 들고 오셨고 수좌 스님들의 정진을 위해 보시금을 일체 회향했다고 말했다.

양진 스님은 받은 한주 소임비와 보시금은 동안거와 하안거 마다 선방 수좌 스님들의 대중공양으로 회향했다. 임종 전에 마지막 남긴 당부도 통장에 혹여 남은 것이 있으면 모두 선원 대중공양으로 사용해 줄 것이였다.

이뿐 아니라 은사 스님이 남긴 유품 금동아미타삼존불상을 통도사 박물관에 기증했다. ‘금동아미타삼존불상2012222일 보물 1747호로 지정됐다.

보물 1747금동아미타삼존불상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외래 양식의 영향을 받은 작품 중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됐으며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양진 스님의 속명은 한승교이다. 경북 예천 하리면에서 6남매 중 4째로 태어났다.

19세에 출가했으며 은사 스님은 박보현 스님이다. 박보현 스님은 월하 스님과 금강산에서 함께 수행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가 이후 전강 선사와 관응 스님 회상에서 수행했으며 제방에서 정진하다 은사 스님 열반 후 1978년에 통도사 월하 스님께 건당 해 재관이란 법호를 받았다.

의령 옥산사 주지 법장 스님이 양진 스님의 속가 동생이며 한국불교금강선원 활안 스님은 스님의 사촌 동생이다. 활안 스님은 법사로서 한국불교 포교역사의 산증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님은 평소 중은 자기를 돌아보는 힘이 없음 헛방이다.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하며 철저한 수행으로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을 당부했다.

양진 스님은 10여 년 전 부터 오후 불식을 하며 통도사에서 정진하다 2년 전 부터는 일종식, 임종 일주일 전 부터는 곡기를 끊고 물만 마시며 정진을 이어갔다. 1210일 오전 10시 좌탈입망했으며 법랍 64, 세납 83세 이었다.

스님의 49제는 통도사 명부전에서 매주 수요일 봉행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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