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번역 시작 2017년 완역 총 34권 완간
소와 초 번역 반산 스님의 견해 덧붙여 완성
“화엄경 최고의 경전이지만 공부하기 어려워,
쉽게 강의할 수 있는 토대 마련하고 싶어 시작”

화엄경청량소 청량징관 지음 / 반산 스님 역주 / 담앤북스 펴냄 / 각권 3만원(34권 세트가 1백2만원)

 

〈화엄경〉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화엄경청량소〉가 우리말로 완역 출간됐다. 역주자는 반산 스님(경남 양산 원각사 주지)이다.

반산 스님은 1998년 강원교재용으로 번역을 시작해 2017년 번역을 모두 마쳤다. 〈화엄경청량소〉 7처 9회 39품의 모든 번역을 마치고, 2018년 11월부터 3년 동안 제1회 적멸도량법회, 제2회 보광명전법회, 제3회 수미산정법회, 제4회 야마천궁법회, 제5회 도솔천궁법회, 제6회 타화자재천궁법회, 제7회 재회보광명전법회, 제8회 삼회보광명전법회, 제9회 서다원림법회를 진행하며 총 4차에 걸쳐 34권을 완간했다. 한글로 완역해 완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화엄경청량소〉는 〈화엄경〉을 중국의 청량 국사가 자세한 해석과 주석으로 해설한 것이다.

이번 반산 스님의 〈화엄경청량소〉는 봉은사 소장 목판 80권 〈화엄경소초회본〉을 원본으로 삼았다. 반산 스님은 직접 원문을 입력하고 소(?)와 초(?)를 번역했으며 스님의 견해를 덧붙였다. 직역을 원칙으로 하여 원본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존했다.

청량 국사는 〈화엄경〉을 주석하면서 항상 네 가지 문으로 나누었다. 1. 내의(來意), 2 석명(釋名), 3. 종취(宗趣), 4. 석문(釋文)이다. 여기에 다시 십문(十門)으로 나누어 해설했다.

그 원칙은 정종분이 시작되는 ‘여래현상품 제2’의 첫 부분에 밝히고 있다. 본 청량소 번역의 근본이 되는 〈80권 화엄경〉은 우전국의 대표적인 역경삼장인 실차난타(651~710)에 의해 번역됐는데, 삼장은 증성 1년(695)에 중국 낙양에 범본을 모시고 대변공사(大?空寺)에서 측천무후가 친림한 가운데 의정, 보리 유지와 함께 〈화엄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여 성력 2년(699) 복례, 법장의 조력으로 80권의 번역을 마쳤다. 이러한 무후의 국력을 동원한 역경사업은 중국 사상계의 큰 흐름이 되었고,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뛰어난 주석가들이 다투어 주소를 저술한 바 있다.

봉은사 소장 목판본은 원래 조선 숙종 15년(1689)에 임자도에서 발견됐던, 성총 스님이 판각 불사를 통하여 유통시킨 징광사(澄光寺) 판본이 그 원본이다. 그러나 1770년에 화재로 소실됐고, 영조 50년(1774)에 설파 상언(雪坡 尙彦)이 판각한 영각사 판본이 유통됐는데 이 판본도 역시 1950년의 전란으로 없어졌다.

하지만 그 경본만은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하여 철종 때(1855~1856)에 영기(永奇) 스님이 각인(刻印)한 봉은사 판이 현존하게 됐다. 봉은사 판은 영각사 판을 복각(復刻)한 것으로 중간에 45장을 보충했다. 이것이 그동안 강원 대교과(大敎科)의 교재로 쓰여 왔던 유일한 현존 판이다.

반산 스님이 〈화엄경청량소〉 대작불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화엄경〉이 불교 최고의 경전이지만 현실적으로 〈화엄경〉을 끝까지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공부를 다 제쳐두고 〈화엄경〉만 공부한다고 해도 끝까지 마치려면 4~5년이 걸리기 때문에 4년 학기인 강원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또한 〈한글대장경〉에 〈화엄경〉의 진면목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화엄경청량소〉가 없으며, 중요한 경전인데도 불구하고 〈고려대장경〉에 합본이 없어 빠져있다. 반산 스님은 어렵겠지만 어느 누군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큰 불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산 스님은 “누군가는 어렵게 공부해서 쉽게 강의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래 부처님의 말씀은 어렵지 않은데 그 깊이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는 자신의 공부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매해 공부하면서 깊이가 달라진다면 또 그 내용을 담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량 국사가 〈화엄경청량소초〉의 소를 내고 초에서 보충을 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청량 국사의 의지에서 소초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의지와 마음을 이어가고 싶었다”고 불사의 동기를 밝혔다. 아울러 스님은 앞으로 〈화엄경반산소〉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렇듯 〈화엄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이다. 소초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청량 징관 스님의 소초가 유명한 이유는 정확하고 근거를 정확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의 약칭이다. 경전의 성립사적 측면에서 보면 불기 500~600년 사이 중관(中觀)ㆍ유가(瑜伽) 양 파가 형성된 이후 두 학파를 종합 통일한 일승불교의 진행과정 속에서 성립된 대승불교의 최고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청량 징관(738~839) 스님은 중국의 성당(盛唐) 시절 화엄종을 발전시킨 대종장으로 본래 회계(會稽) 사람이다. 성은 하후(夏候)요 자는 대휴(大休)이며 청량은 덕종이 내린 법호이다.

7세에 출가하여 우두 혜충(牛頭 惠忠, 683~769), 경산 도흠(徑山 道欽, 714~792)에 의지해 선을 깨닫고 현수 법장(賢首 法藏, 643~712)으로부터 화엄의 법을 이었다. 770년경 오대산(五臺山) 대화엄사(大華嚴寺)에서 〈화엄경소〉 저술을 결심하고 다시 세간의 학문을 배워 육예(六藝), 도사(圖史)와 구류이학(九流異學), 축경범자(竺經梵字), 사위오명(四圍五明)에 이르기까지 널리 열람하고 건중(建中) 4년(783)에 집필에 앞서 서응(瑞應)을 구했다.

어느 날 꿈에 부처님 얼굴이 산마루에 비치어 그 광명이 천지에 온화했다. 스님이 손으로 받들어 입으로 삼켰는데 이로부터 한 번 붓을 내림에 막힘없이 4년 만에 〈화엄경소〉 60권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어서 후학을 위하여 〈수소연의초(隨?演義?)〉 40권을 지었다고 한다.(소초연기ㆍ??緣起 참조)

반산 스님은… 통도사로 출가하여 고원 명정(古園 明正) 화상을 은사로 득도했다. 1984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다. 천은사, 불국사, 대승사, 극락암 선원 등에서 여섯 번의 하안거를 성만했다. 중앙승가대학, 조계종립 은해사승가대학원 1기 졸업(1999), 쌍계사, 통도사, 해인사 강사와 봉선사 능엄학림 학감, 조계종 행자교육원 교수사를 역임했다. 2002년 봉선사 조실 월운 강백에게 전강했으며 쌍계사승가대학 강주를 역임했다. 현재 경남 양산 원각사 주지를 맡고 있다. 번역 및 편저서로 〈화엄경청량소〉 제1권 세주묘엄품, 〈화엄경청량소〉 제7, 8, 9권 십지품, 〈재미있는 금강경 강의〉, 〈재미있는 화엄경〉, 〈재미있는 법화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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