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5월 30일 법요식서
원장 퇴임 후 첫 법석인데도
총선 낙선인들에 발언 양보
뜻밖의 배려에 ‘화합’ 한 뜻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봉은사 회주)은 5월 30일 퇴임 이후 첫 공식 행보로 법요식 법문을 하기로 했지만 이날 21대 총선 낙선자들에게 법석을 양보했다. 뜻밖의 초청에 낙선자들은 정치화합을 위해 여야를 떠나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으며, 21대 국회의원들의 축사를 겸한 화답이 이어졌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정치와 국민 화합을 기원하는 부처님오신날 법석이 열렸다.

서울 봉은사(주지 원명)는 5월 30일 경내에서 불기256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을 개최했다. 이날 법요식은 前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봉은사 회주)의 총무원장 퇴임 후 첫 공식 행보인 만큼 교계의 관심을 모았다. 동안거 기간 상월선원 천막결사 후 대중들과 여는 첫 법석이기도 했기에 봉은사 신도대중들은 회주인 자승 스님의 법문을 기대했다.

자승 스님은 법문을 애써 준비했지만 짧게 마치겠다고 말했다. 정해진 법문보다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살피고 화합과 상생으로 코로나 위기를 비롯한 현재 상황을 이겨가자는 메시지에 대중들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국민, 정치화합에 위해 법석 내줘

자승 스님의 법문은 뜻밖이었다. 자승 스님은 “오늘 식순을 보니 현직 강남구 국회의원분들의 축사만 잡혀있다. 떨어진 분들의 다짐과 결심도 우리 사회가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해소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기에 저 대신 법문을 청하겠다”며 이들이 법단으로 올라오길 권했다.

법사 스님이 법석을 다시 대중에게 넘기는 것도 교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대상이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이들인 점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21대 국회의원들의 임기시작일인 만큼 당선자들에게 초점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내빈석에서도 당선자들에게 밀려 뒷열에 배석했던 이들은 다소 당황한 듯 했지만 스님의 뜻을 알아차렸다.

강남갑과 강남병에 각각 출마했던 김성곤, 김한규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스님으로부터 마이크를 넘겨 받았다. 이들은 “지난 선거 때 치열하게 대결했지만 코로나 극복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 당선 되신 국회의원 분들이 우리나라와 봉은사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봉은사 스님들이 마스크를 끼고 법요식 헌공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봉은사 신도인 여여진 유정주 21대 민주당 비례 국회의원과 이번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19대 국회 정각회에서 간사를 맡아 활동한 류지영 前국회의원도 법단에 올라 코로나 극복과 건강을 기원했다.

자승 스님은 “법문은 애를 써서 준비했지만, 오늘 네 분 말씀으로 저의 법문을 대신하겠다”며 짧은 법문을 마쳤다. 기대했던 스님의 법문은 없었지만 대중들에게선 박수가 쏟아졌다.

스님의 법문에 이어 화합을 기원하는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태영호, 박진, 유경준 국회의원은 “오늘 이 자리가 국회의원으로서 첫 행사인데 부처님의 화합과 자비의 의미가 진심으로 다가온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이기기 위해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화합하자”고 말했다.

이날 법요식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거리두기 차원에서 3단계에 걸친 방역과 마스크 착용 등 지침하에 진행됐다.

생활속 거리두기 속 작은 축제로

이날 법요식이 열린 봉은사는 일주문과 법왕루, 법요식장까지 3단계에 걸친 방역을 진행했다. 발열 점검과 함께 인적사항을 기입하고, 출입 스티커 및 비표를 발부해 참석 인원을 통제했으며, 법요식장도 최대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라인을 설치했다.

법요식 전에는 스님들이 마스크를 쓰고 헌공의식을 치렀으며, 관불의식도 순번에 맞춰 일정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진행됐다.

법요식을 지켜본 봉은사 신도 김명희 씨는 “매번 뉴스만 보면 정치인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에 눈쌀이 찌뿌려졌다. 회주 스님의 배려로 이 위기 상황에서 모두 함께 힘을 모으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나라가 잘 될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며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면 코로나가 아닌 더한 위기도 충분히 극복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이 관불의식을 하고 있다. 원명 스님은 불교계와 봉은사가 코로나 기간 동안 확산 방지를 위해 법회 중단 등 노력을 기울였으며, 코로나 극복을 위해서도 계속 노력해갈 것임을 밝혔다.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은 “전세계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 코로나19사태 속에서도 이렇게 반가운 모습으로 함께 하는 것 만으로 감사를 올린다. 코로나 19로 희생된 모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 방역 최전선에서 임하는 관계자분들에게 경의를 드린다”며 “코로나 확산과 감염 예방을 위해 봉은사는 최선을 다해왔다. 법회 및 교육, 공양간 운영 중단과 함께 연등행사 전격 취소까지 국민 건강을 최선으로 삼아 노력했다. 여기에 코로나 소멸기도에 이어 코로나 극복을 위한 법요식을 열게 됐다. 나보다 우리 이웃을 배려하는 상생과 화합을 통해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참 가르침을 실천하자”고 당부했다.

봉은사 회주 자승 스님(조계종 전 총무원장)이 관불의식을 하고 있다.
태영호 국회의원 등 강남구 21대 국회의원들은 낙선자들의 화합메시지를 듣고 여야를 떠나 국민화합과 상생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봉은사는 이날 봉은사 발전에 기여한 불자들을 대상으로 감사패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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