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과 독일맥주축제

 

남해에는 숨겨진 자랑거리가 많다

지난 주 남해에서는 넉넉한 가을만큼이나 풍성한 들을 거리와 볼거리 행사가 비단결처럼 펼쳐졌다. 우리나라 사람이 옛날부터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긴다고 중국 사람들도 혀를 내둘렀지만, 남해 분들처럼 흥이 많고 신명 잡히면 엉덩이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국군의 날이었던 1일에는 오랜 만에 남해에서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있었고, 개천절인 3일부터 5일까지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독일맥주축제’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묘하게도 그 사이에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 이 뜻 깊은 행사에 차질이 빚어질 뻔했다. 작년에도 태풍 때문에 ‘맥주축제’가 취소까지 되 버려, 너 나 없이 많은 분들이 걱정이 태산이었다. ‘노래자랑’은 남해유배문학관 광장에서 실내체육관으로 옮겨졌고, 축제 때는 구름은 조금 끼었어도 내내 날씨가 좋아 다들 한 시름 놓았다.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 자리
유교의 엄숙주의와 대조돼
다양한 문화축제 개발 필요

아닌 게 아니라, 남해군만의 일은 아니겠지만, 요즘 너무 비가 잦기는 하다. 며칠 걸러 큰 비가 내리니, 남해처럼 농사 짖는 분들이 많은 고장은 가을걷이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염려스럽다. 벼를 거두면 이어 마늘이나 시금치를 심어야 하는데, 땅이 마를 틈이 없으니, 근심이 더욱 커진다. 남해에 사는 우바이 우바새를 위해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한 보름만이라도 허락해 달라고 부처님께 통사정하고 싶은 심정이다.

며칠 전 나는 내가 사는 고현면에서 읍으로 버스를 타고 오다가 아주 유쾌한 경험을 했다. 진주에서 들어오는 버스를 탔는데, 운전을 하시는 기사분이 성품과 인정, 게다가 언변까지 두루 갖춘 분이었다. 그날따라 면 지역에서 버스를 타신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기사분이 이 분들과 재치 있는 재담을 주고받아 무료함을 달래주었다.

이 분 들 중 상당수가 보건소를 가시는 분이었나 보다. 보통 때는 버스가 보건소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승객들을 내리는데, 나이 들고 몸 어딘가 아파 가시는 분들이라 그 거리도 고역이었다. 한참 버스 안 분위기를 돋우던 기사분이 앞을 내다보면서 “대사(고현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아지메들, 보건소에 내리쟤. 요 앞에 내려드릴 테니, 딴 데 가선 여기서 내려줬단 말 마소.” 하며 갓길에 차를 정류시켜 주었다.

다들 “고맙구로! 고맙구로!” 하시면서 입에 웃음을 가득 담고 내리시는데, 보는 나도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버스 운전, 그것도 시외버스 운전은 무척 중노동이라 피로도가 높을 텐데도 저렇게 유쾌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낙천적인 남해 사람의 선한 품성을 보는 듯했다. 저런 정겨움을 보고 느끼면 한 번 올 관광객도 인정에 감동해 두 번 세 번 오지 않을까?

다시 돌아가, 노래자랑은 그야말로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을 만큼 인산인해였다. 광장보다 비좁은 공간 탓이기도 했지만, 만석을 넘어 서서 볼 자리도 없어 밖에서 서성거린 분들이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동네 사람이 올라와 노래 솜씨를 자랑할 때면 곳곳에서 플래카드가 꽃잎처럼 나부꼈고 덩달아 박수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과장 좀 섞어 체육관 지붕이 날아갈 정도였다.

다른 약속이 있어 끝까지 보고 오지 못해 섭섭했지만,(비를 쫄딱 맞았다.) 한 해 내내 농사와 어업 때문에 시달린 몸을 목청껏 부르는 노래로 훨훨 날려버리셨을 것이다.

맥주축제의 떠들썩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앞에 ‘독일’이란 곁말이 붙은 것처럼 이 축제는 삼동면 ‘독일마을’ 일원에서 벌어지는데, 워낙 유명해 전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일부러 축제에 동참하려고 오는 분들도 많다. 맥주와 음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가 학익진(鶴翼陣)처럼 어우러져 찾는 수고가 아깝지 않다. 독일산 소시지와 다채로운 맥주를 즐기노라면 정말 독일의 어느 마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독일마을에는 ‘파독(派獨) 기념관’도 있어 함께 구경하면 아이들 교육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남해는 이번 한 주 노래와 축제의 향연 속에서 인심도 나누고 시름도 덮으면서 행복한 날들을 만끽했다. 한 해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남해군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다.

전통 깊은 불교 축제와 화방사 산사음악회

중생들을 고해(苦海)에서 제도(濟度)해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려고 만들어진 불교니, 해묵은 번뇌를 씻어줄 불교 축제가 없을 수 없다.

가장 큰 축제라면 역시 음력 4월 8일에 있는 ‘부처님 오신 날’ 축제다. 이 날은 불교 4대 명절의 하나인데, 그 밖에도 2월 8일의 ‘출가일’과, 2월 15일 보름날의 ‘열반일’, 그리고 도를 깨치신 12월 8일의 ‘성도일(成道日)이 여기에 들어간다. 속세의 축제와는 분위기가 다르지만, 부처님의 큰 뜻과 한량없는 대자대비심을 본받으려는 발심(發心)의 축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음력 7월 15일에 치러지는 우란분절(盂蘭盆節)도 축제라 할 만하다. 생전의 업장(業障)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진 조상의 넋을 구하기 위해 올리는 의식이다. 조상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나 역시 선업을 쌓아 극락에 가려는 바람을 담는 날이니, 경건함과 함께 흥겨움이 절로 우러나는 행사다. 조상만 아니라 나도 죽음에 대비해 죽은 뒤의 공덕(功德)을 미리 닦는 예수재(豫修齋)도 축제가 아닐 수 없다.

고려시대 때는 팔관회(八關會)나 연등회(燃燈會)가 때마다 열려 전국적인 축제로 자리했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축제가 맥이 끊긴다면 흥겨움의 화신인 우리 민족으로서는 너무나 큰 손실일 것이다. 일부 재현되고는 있지만, 만인이 즐기는 축제로 거듭 나기를 기다린다.

요즘의 불교 축제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산사음악회’를 빠뜨릴 수 없다. 처음 어느 사찰에서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가을철에 맞춰 성대하게 열리는 산사음악회는 말 그대로 산사에서 즐기는 음악의 축제다. 인기 가수와 그 지역의 예술단체가 참가해 사부대중과 승가의 고승대덕들이 어깨춤을 추는, 승속일체(僧俗一體)의 걸판진 축제를 모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고려팔만대장경의 탄생지 우리 남해에도 당연히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읍내에서는 법흥사에서 ‘보물섬문화한마당’이란 이름으로 예술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10월 6일에 열렸는데, 잊지 마시고 내년에 꼭 한 번 찾아 흥겨움을 누리시길 바란다.

더 크고 신바람을 몰고 오는 산사음악회는 고현면에 있는 화방사(花芳寺, 주지 승언 스님)에서 펼쳐진다. 올해는 10월 19일(토) 오후 4시부터 개막된다. 올해의 음악회는 ‘호국문화제’란 이름 아래 열리는데, 호국영령을 위한 ‘진도 씻김굿’ 공연도 있고, 국민가수 송대관 씨와 정율스님, 한가빈 씨 등이 출연해 방문객들을 맞이한단다.

이 산사음악회를 전후로 10월 12일(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는 고현면 일대에서 ‘대장경판각지 역사문화 탐방’ 행사도 있고, 11월 8일(금) 오후 2시에는 읍내 유배문학관에서 팔만대장경과 ‘삼국유사’를 쓰신 일연(一然) 스님의 업적을 주제로 한 학술 심포지엄도 열린다.

나도 학술 심포지엄에 참여한다. 남해에서 태어나 남해를 공부의 장(場)으로 삼아 열공(?) 중인 김봉윤 선생의 논문에 질의를 맡았다. 김봉윤 선생은 일연 스님의 제자들 12분이 대장경 판각에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이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는데, 동음이자(同音異字)인 스님도 17분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번에 공부하면서 일연 스님이 1249년부터 1261년까지 물경 12년 동안 이곳 남해에 주석(駐錫)하시면서 대장경 판각에 참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연 스님은 정안(鄭晏)의 초빙으로 남해 정림사(定林寺) 주지를 지내셨고, 이후 길상암(吉祥庵)에 계시면서 길상암의 요사채였던 봉소헌(鳳笑軒)에서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를 저술하셨다. 김봉윤 선생은 그간 남해가 대장경의 판각지였다는 사실을 연구한 글들을 모아 ‘팔만대장경과 남해’(고려대장경 판각성지보존회 간)라는 저서도 출간했다. 아주 재미있게 쓴 책이니,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고 공감하시기를 바란다.

너무 남해 자랑만 한 것 같이 겸연쩍지만, 어쩌겠는가! 내 고장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우주 삼라만상도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행사들이 궁금하신 분은 화방사 종무소(전화 055-863-5011)로 문의하시기 바란다.

선비들도 더불어 즐겼으면 좋겠네

불교의 다양한 축제와 잔치에 견줄 때 유교에서 여는 축제는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공자께서는 축제와 여흥을 무척 즐겼던 것 같다. ‘논어’ 향당편(鄕黨篇)에 보면 공자는 “술을 마시면 한량이 없었지만, 술주정을 부리는 일은 없었다.(唯酒無量 不及亂)”고 했으니, 절제하면서도 흥겨움의 도락을 멀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유교는 ‘도덕군자(道德君子)’를 내세우며 엄숙주의에 빠져버렸다. 유교에도 엄연히 ‘강호가도(江湖歌道)’의 풍류가 존재하고 ‘음풍영월(吟風詠月)’의 낭만이 깔려 있으니, 격식에 얽매이지 말고 육신과 정신의 무릉도원을 소요(逍遙)하는 여유를 가져도 좋았을 법하다.

대유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도 ‘낮 퇴계 밤 퇴계’가 달랐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겉으로는 군자연하면서 축첩(畜妾)은 당연하고 기방 출입은 문턱이 닳아라 뻔질나게 들락거린 선비들의 위선(僞善)은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과(過)한 것도 문제지만 지레 자기 검열에 빠져 불급(不及)하는 것도 참된 도학자의 모습은 아닐 듯하다.

맹자(孟子)도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 해서 지배자들끼리만 재미 보지 말고 백성들과 함께 즐기라고 일갈하신 바 있다. 시회(詩會)니 수계(修稔)니 해서 행사가 없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은 안타깝게도 ‘그들만의 축제’였지 백성들의 동참은 불허했다.

시나브로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에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집안싸움만 하지 말고. 산으로 들로 사찰과 암자를 찾아 노래와 축제를 즐기는 지혜롭고 신바람 나는 삶을 누려봤으면 좋겠다. 이런 공염불만 하지 말고 나부터 밖으로 나가야겠구나.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