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참석한 동료의 결혼식
결혼은 삶속 가장 행복한 의례
불교서 애착·구속으로 여겨져
완전한 깨달음 방해요소로 평가

부처님 본생담·반야부 경전엔
결혼은 수행 완성 돕는 요소
수메다 행자와 상제보살이 예
배우자는 세세생생 나의 도반

며칠 전 함께 일하는 동료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했다. 늘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씩씩하게 뛰어다니던 사람이 새하얀 드레스에 고운 신부화장을 한 모습을 보니 괜히 내 맘이 다 설레었다. 신부도 신부지만, 사랑하는 딸을 품에서 내놓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신부 아버지의 애틋한 표정도 참 인상적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혼을 안 하려거나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소식은 쉬지 않고 들려오지만, 그래도 결혼적령기 신랑신부 친구들의 들뜬 모습에서 여전히 결혼은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화려한 의례가 아닐까 싶다.

불교계에 몸을 담고서 경전을 읽고 강의를 해오는 내 입장에서 결혼이란 제도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평범한 세상과, 세속을 뛰어넘은 수행의 차원에서 결혼이 갖는 의미는 다르기 때문이다. 세속에서야 사랑하는 이와 맺어지는 결혼은 행복이다. 하지만 구도의 길에 나선 이들에게 그 도탑고 아름다운 인연은 또 다른 애착과 구속으로 여겨져 결혼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수행의 길에 나선 구도자에게 이성과의 만남은 치명적이다. 특히 수행을 방해하는 유혹자로 여성들이 그 악역을 많이 맡고 있어 종종 마구니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가장 높고 완전한 깨달음인 아뇩다라삼약삼보리에 이르기 위해 세세생생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 주저앉는단 말인가.

하여 결혼이란, 종교에서는(적어도 불교라는 종교에서는) 100% 축하해주기에는 좀 망설여지는 의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생담이나 반야부 경전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행을 완성하는 데에 아주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주 오래 전 수메다 행자 시절을 떠올려보자. 연등부처님에게 나아가려 하니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기 위해 꽃이라도 올리고 싶은데 단 한 송이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장면이 있다. 그때 그에게 꽃을 내미는 이가 있으니 그녀가 바로 수밋다(구리 여인)이다. 수밋다의 등장과 도움으로 수메다 행자는 연등불에게 나아갈 수 있었고, 급기야 장차 석가모니불이 되리라는 수기까지 받았다. 그리고 이 인연으로 두 사람은 세세생생 부부가 되고, 결혼 후에 남편은 출가하지만 아내 역시 그 뒤를 따라 수행하게 되니, 이들이 바로 싯다르타와 야소다라이다.

반야부 경전의 최초경전이라 하는 팔천송 반야경에 등장하는 상제보살은 어떤가. 자신에게 반야바라밀다를 들려줄 스승을 찾아 먼 길을 나섰다가 마침내 스승이 살고 있는 성 앞까지 왔을 때, 가난한 그에게는 스승에게 공양 올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진리를 완성하기 위해 자기 몸까지도 기꺼이 버리겠다는 구도심을 품은 그를 도우려고 나선 이는 어느 장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다 상제보살에게 주어서 스승에게 공양 올릴 수 있도록 도우며, 그녀 스스로도 스승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듣기를 발원한다. 장자의 딸이 도와준 덕분에 상제보살은 그토록 원했던 스승에게서 반야바라밀다를 듣게 되며, 그녀는 제 부모와 자기를 따르는 하녀 500명 모두와 함께 발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수메다 행자와 상제보살 이야기를 음미할 때마다 구도자에게 이성은 어떤 존재이며 결혼은 보살행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결혼은 나의 보살행을 완성할 수 있는 화룡점정의 의례요, 배우자는 세세생생 나의 도반이라고. 그러니 어찌 결혼을 축하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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