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신중도… 아직 제자리 못 찾은 불화들

청송 대전사에서 도반된 후불도(사진 왼쪽)와 지장시왕도(사진 오른쪽).

경상북도 청송은 동쪽으로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험준한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군(郡)으로, 태백산맥과 주왕산을 경계로 영덕군, 포항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남쪽의 보현산맥은 영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예로부터 '청송고추'로 알려진 고추의 주산지이다. 조선전기 청송은 토질이 기름지지 못하고 메마르고, 풍속이 남보다 검소하다고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였다.
여말선초 이래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은 청송심씨(靑松沈氏)로서 청송을 도호부로 승격시키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한 심청(沈淸)·이홍중(李弘重) 등이 이 지역 출신이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은 대전사(大典寺), 보광사(普光寺), 수정사(水晶寺)밖에 없다.

청송 지역 대표 사찰인 대전사
불화 6점·불상 42구 상존 기록
현재 후불도·지장시왕도 도난돼

2014년 도난된 신중도는 ‘환수’
조계종·경찰·문화재청 협력 사례

이 가운데 청송을 대표하는 사찰은 부동면 주왕산(周王山)에 위치한 대전사이다. 이 사찰은 조계종 제10교구본사 은해사 말사로, 672년에 의상(義湘)이 창건했다는 설과 919년에 주왕(周王)의 아들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사찰에 관련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연혁은 전하지 않고,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주방사(周房寺)로 기록돼 있다. 대전사는 16세기 말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 유정(惟政) 스님이 승군(僧軍)을 훈련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 전각이 소실된 후, 1672년에 중건됐다.

1751년에 이중환이 쓴 인문 지리지인 <택리지(擇里志)>에 대전사가 신선과 스님이 살기 좋은 곳이라 언급되어 있다. 사찰 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삼층석탑, 17세기 후반에 승호 스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 만든 석조석가여래삼존상과 18세기 전반에 수연 스님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1806년에 종간과 정철 등이 명부전 후불도로 조성한 지장시왕도, 승탑원에 청심당태옥대사탑(淸心堂太玉大師塔), 경월대화상사리탑(慶月大和上舍利塔), 낙진당혜웅대사탑(樂眞堂惠雄大師塔, 1714년 건립), 국일도대선사양종정사경월당비(國一都大禪師兩宗正事慶月堂碑, 1846년 건립) 등이 남아있어 조선후기에도 지속적으로 법등이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전각은 보광전(普光殿), 명부전(冥府殿), 산령각(山靈閣), 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보물 제1570호), 석조여래삼존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 지장보살도(도 문화재자료 제468호), 석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 주왕암 나한전 후불탱화(도 문화재자료 제470호)가 지정문화재이다. 부속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 주왕암(周王庵) 등이 있다.

20세기 전반에 대전사에 소장된 불교문화재는 1920년을 전후해서 작성된 재산대장(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통하여 자세히 알 수 있다. 재산대장에 의하면 대전사에 봉안된 성보문화재가 20건 100점이고, 이 중에 불상 42점, 불화 6점이 적혀 있다.

따라서 대전사는 20세기 전반에 주불로 봉안된 불상이 3건이고, 시왕상(19위)과 나한상(16위)을 상호 비교하면 전각이 보광전, 명부전, 영산전이 운영되던 작은 사찰임을 알 수 있다.

대전사 신중도는 2014년 회수돼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현재 대전사에서 문화재청과 조계종 총무원으로 도난 신고를 한 불화는 2000년 9월4일에 잃어버린 후불도와 지장시왕도이다. 각 불화의 크기는 후불탱화가 세로 365cm, 가로 315cm이고, 지장시왕도의 크기는 세로 275cm, 가로 332cm이다. 이외 신중도는 2014년에 사립박물관장이 은닉하고 있던 도난문화재를 환수하여 현재 은해사성보박물관에서 보존 중이다.

이 신중도를 찾게 된 경위는 조계종 문화부에서 도난문화재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고미술품경매시장에 나온 4점이 도난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신고했다. 그 결과 긴급조사를 통해 고미술품 경매사에서 운영하던 ‘조선시대 불교미술 특별경매’ 출품작 가운데 한 점이 청송 대전사 보광전에서 도난당한 작품과 같은 작품으로 판정이 난 것이다. 

이 신중도는 1806년 비단바탕에 그려졌는데 화면의 크기가 세로 261cm, 가로 205cm로 비교적 크기가 큰 작품이다. 화면을 살펴보면 아랫부분에는 무장한 호법신들이 서로 마주보듯 배치되어 있으며 화면의 윗부분에는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이 그려졌고 그 사이에 사천왕을 비롯한 수호신들이 상반신만 모습을 드러낸 채 서로 마주보듯 시선을 맞춰 도열해 있다.

불교우주관에서 보면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는 수미산, 그 정상 도리천에 살고 있는 제석천을 부각시켜 그린 대전사 신중도는 붉은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면서 호분과 청색 그리고 중간색으로 부분 채색하였다.

대전사 신중도는 이전 불화에서 보이던 본존을 중심으로 권속이 둥글게 에워싸던 형식에서 벗어나 권속을 빽빽이 그려넣고 배열한 화면구성으로 복잡해지고 주조색인 적녹색의 색감도 짙어지고 탁해진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화기가 좌우로 묵서되어 남아있는데 박락된 부분이 있어 온전하지가 않지만, 같은 해 조성된 명부전의 지장시왕도 화기와 비교해보면 몇 글자 정도는 꿰맞출 수가 있어서 조성 당시의 시주자는 달라도 연화질 명단을 확인해 갈 수 있다. 일례로 신중도에는 ‘供養主 比丘幻○ 比丘抱○ 比丘幻○’를 읽을 수 있지만, 지장시왕도 화기에는 ‘供養主 比丘友 比丘抱還 比丘幻○’라 적혀 있어 공양주비구가 환우스님과 포환스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도난 성보의 환수는 성보로서의 위의를 갖춘 예경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할 뿐만 아니라 우리 성보문화재의 의미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2017년 환수해 온 대전사 신중도를 성보박물관에 이운 봉안하면서 소회를 밝혔던 은해사성보박물관 부관장스님의 언론 인터뷰 내용처럼 신성한 종교적 신앙물인 불상, 서지, 탱화 같은 전통적 성보들이 경매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인 것이다.

대전사 신중도 환수사례와 같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이 더욱 활성화되어지기 위해서는 사찰과 종단관계자 그리고 불자를 비롯한 문화애호가 등 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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