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사(平常事)속에서 본분사(本分事)를 발휘할 때 제대로 된 공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인제경불망심(愚人除境不忘心)이요

지자망심부제경(智者亡心不除境)이라

어리석은 사람은 대상경계를 제거하고 마음을 잊지 않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잊고 대상경계는 제거하지 않는구나.

 

용아거둔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질문이 매우 어렵구나.”

조사의 뜻과 부처님의 뜻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조사는 부처님보다 나중에 왔다.”

조사는 무사사문(無事沙門)입니까?”

사문이라면 무사(無事)해서는 안 된다.”

어째서 무사(無事)하면 안 됩니까?”
 

삼세제불도 무사인(無事人)이며 역대 조사 또한 무사인 입니다. 무사(無事)란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쳐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이며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여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는 경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의미와는 달리아무 일이 없는 것을 궁극적인 경지라고 여기는 무사선(無事禪)이 제방(諸方)에 횡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상을 있는 그대로 그냥 보내면서 아무 일 없이 지내고 지견과 알음알이조차 세우지 않는 것을 도()라고 생각하는 병통이 종문(宗門)에 만연하게 됩니다. 유위(有爲)의 사()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여 다시 무위(無爲) ()라는 경계에 속박된다면 이 또한 큰 허물입니다. 정작 마지막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무사(無事)라는 것은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일 없다는 생각도 없는 것이며 또한 일 없다는 생각조차 사라졌다는 그 생각까지 없어진 경지 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것이 참된 무사인 것입니다. 만일 일로써 일을 없애려고 한다면 일이 하나 둘 늘어날 것이며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없애려고 한다면 도리어 마음이 세 개 네 개 더 생기게 될 것입니다. 경계를 대할 때 마다 근본으로 돌아갈 줄 알아야 하며 대상을 만날 때 마다 도()에 합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평상사(平常事) 속에서 본분사(本分事)를 발휘할 때 제대로 된 공부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자기 손으로 번뇌망상의 못과 쐐기를 뽑고 기름 때로 찌든 모자를 벗기며 냄새나는 베적삼을 벗기고 자기 몸까지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무사를 체득한 납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또 결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아주 가치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숨 쉬다가 안 쉬면 내생(來生)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사람 몸 받기 힘들고 부처님 법 만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공부할 수 있을 적에 공부를 해야 됩니다. 애써 정진해서 공부를 성취하도록

합시다.

 

단어사상통무사(但於事上通無事)하고,

견색문성불용롱(見色聞聲不用聾)이로다.

단지 일을 하는 중에 일없는 도리에 통해야 하며

색을 보고 소리를 들음에 귀머거리와 봉사처럼 할 필요는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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