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존불벽화에 흐르는 적멸의 美

서쪽 벽면의 아미타여래 삼존도

서쪽 벽면에 아미타여래 설법벽화

양산 신흥사 대광전은 순치 십사년(효종 8년: 1657년)에 건립한 17세기 맞배지붕의 건축이다. 동서 좌우 벽면에 넓은 화면이 구조적으로 나타난다. 내부장엄에 불교교의를 충실히 구현한 종교장엄의 특징이 뚜렷하다. 장엄의 중심에 미술을 통한 불보살의 봉안과 수호신장의 배치에 두었다. 즉 다섯 점의 대형벽화가 내부장엄의 중심을 차지한다. 맞배지붕의 구조에서 형성된 좌우 대형벽면을 단청 별지화의 미술화면으로 적극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다섯 점의 대형벽화는 동측면의 약사여래삼존벽화, 서측면의 아미타삼존도와 육대보살도, 사천왕도, 그리고 후불벽 뒷면의 관음삼존벽화 등이다. 또 하나 특별한 벽화는 네 모퉁이 평방 위 벽면에 조성한 <팔상도(八相圖)> 네 점을 들 수 있다. 대광전 장엄에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동, 서, 북의 세 벽면에 각각 불보살을 모신 삼존벽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존벽화를 통해 한 불전건물에 불교에서 가장 대중적인 접근성을 가진 불보살세계의 신앙을 총체적으로 구현한 특징이 있다. 몇몇의 벽화를 결집하면 하나의 탱화로 수렴되는, 분리와 해체를 통한 탱화의 재구성이라는 독특한 장엄양식도 주목거리다.

내부장엄 중심에 다섯 점 대형벽화
팔대보살은 아미타불 48대원 실천자
오색구름 타고 강림하는 도솔래의상
물고기 바구니 든 희귀한 어람관음도

내부장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서측면의 벽화들이다. 불교에서 서쪽은 극락정토의 세계로서 아미타불이 상주하신다. 서측면의 중간 벽면은 거의 같은 크기로 상중하 세 칸으로 구획했다. 상단은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봉안했고, 중단은 육대보살을, 맨 아래쪽 하단은 사천왕을 그렸다. 불보살과 수호신중의 위계에 따라 배치공간을 엄격히 달리한 것이다. 하지만 세 화면을 하나로 통합하면 팔대보살을 거느린 아미타여래도가 된다. 팔대보살을 거느린 아미타여래의 장면은 무위사 극락보전의 서측면에 조성했었던 <아미타내영도> 벽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상단의 아미타삼존도는 고요하고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고귀함을 갖춘 사찰벽화의 걸작이다.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모신 구도다. 보관에 아미타불을 모신 관음보살은 자비를, 오른손에 경책을 든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상징한다. 범어사, 통도사 등 국내 사찰 서너 곳에서 삼존도 벽화가 현존하지만, 규모면에서도 가장 크고, 예술성에서도 심미성을 갖춘 독보적인 명작으로 첫손에 꼽힌다. 붉은 색과 녹청색의 강렬한 단청색채가 화려하면서도 선연하다. 붉은 색과 녹색의 선명한 색채대비는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전통적인 채색기법이다. 특히 아미타여래의 법신에서 퍼져 나오는 오색파장의 광채가 대단히 화려하고 아름답다. 오색파장의 광채는 고려불화에 사용한 주된 삼색인 녹청, 주홍, 군청 세 색채로 각각 이빛의 바림을 형형색색 풀어 반복함으로써 거룩함과 위신력, 고귀한 아름다움을 극대화 했다. 수인과 결가부좌의 자세로 미뤄봐서 아미타여래벽화는 내왕도가 아니라, 설법도 형식임을 추정할 수 있다.

동쪽 벽면의 약사여래 삼존도

관음, 대세지 두 보살은 중단에 조성한 육대보살과 함께 팔대보살을 이룬다. 중단에 봉안한 육대보살은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금강장보살, 미륵보살, 제장애보살이다. 아미타팔대보살도 도상은 고려불화로도 활발하게 조성되었는데 정토신앙의 중요한 관상(觀想) 및 의례의 대상이었다. 도상의 바탕이 되는 소의경전은 『팔대보살 만다라경(八大菩薩曼茶羅經)』으로 알려진다. 경전 속의 팔대보살에는 대세지보살 대신 허공장보살을 열거한다. 그런데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왜 팔대보살이 등장하는가의 문제다. 팔대보살은 아미타불의 화불이 팔방에 두루 편재한다는 기본개념에 근거한다. 원형은 밀교의 만다라에 있겠지만, 본질은 아미타불께서 세운 48대원의 실천에 있다. 다시 말해 팔대보살은 극락정토에로의 내영뿐만이 아니라, 중생구제의 다양한 본원력을 실행하는 실천자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즉 팔대보살은 정토신앙의 구현자라 할 수 있다. 아미타팔대보살도는 하단의 사천왕도와 결합하여 궁극적으로 아미타여래 설법장면인 아미타회상도로 귀결한다.

동쪽 벽면에 약사여래삼존벽화

동측면의 대형벽화는 동방 약사여래불의 약사여래삼존도이다. 서측면의 아미타여래삼존도와 대칭으로 조성했다.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구도다. 두 벽화는 색채와 구도에서 동일하지만, 발색의 무거움으로 인해 동측면의 벽화가 보다 범접키 어려운 위엄과 근엄함이 흐른다. 석굴암 본존에 흐르는 근엄함과 적멸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두 여래의 묘사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아미타여래에선 표현하지 않은 정상계주를 약사여래에선 뚜렷이 표현하고 있는 점과 오색광채에 톱니바퀴 무늬를 넣어 더 강력한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좌협시 보살인 일광보살은 머리 위 보관에 붉은 해를, 우협시 보살인 월광보살은 보관에 흰 빛의 보름달을 장식한다. 약사여래의 정법을 지니고 있는 두 보살은 왜 해와 달을 상징지물로 갖추는 것일까? 『약사여래본원경』에 의하면 약사여래는 과거 보살행을 행할 때 12대원을 세워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구제할 것이라고 서원했다. 약사여래의 몸은 유리처럼 투명하고 밝게 빛나서 ‘유리광불’로도 부른다. 약사불은 12대원을 통해 달빛처럼 맑은 빛으로 중생에게 진리의 법락을 베풀고, 해처럼 찬란한 빛으로 중생의 온갖 재앙과 어둠, 고통을 두루 비춰 소멸시킬 것을 천명했다. 일광보살의 햇빛이 중생의 무명을 밝히는 반야의 진리라 할 때, 월광보살의 달빛은 자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아미타삼존도에서 관음-대세지보살의 교의체계와 동일한 패턴이다. 그러고 보면 대광전에선 네 방위의 좌향 모두에 삼존불을 봉안한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본존불인 석가모니삼존불은 남향, 서쪽의 아미타삼존불은 동향, 동쪽의 약사여래삼존불은 서향, 후불벽 뒷면의 관음삼존은 북향하고 계신다.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경이로운 구조임에 분명하다. 네 방위 모두에 삼존불로 장엄한 불보살의 대향연을 펼쳐 놓았다.

팔상도 벽화 중 도솔래의상도 부분

국내 유일의 팔상도 벽화

네 모서리의 평방 위 벽면에 그린 네 점의 벽화는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압축한 <팔상도> 중에서 네 장면을 표현한 벽화다. 네 장면은 동측면 안쪽에서부터 시계방향의 순서로 도솔래의상, 유성출가상, 설산수도상, 쌍림열반상을 배치하고 있다. 장면마다 흰색 바탕에 묵으로 화제(畵題)를 써놓았다. 불전 내부의 팔상도 벽화는 매우 희귀한 사례다. 이 곳 외엔 대구 용연사 극락전 포벽에 쌍림열반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그 포벽화는 <석씨원류응화사적>의 한 부분이므로 팔상도의 표현은 신흥사 대광전이 유일하다고 봐야한다. 벽화를 조영한 회화수준은 팔상도 벽화가 가진 유일성의 의의에는 미치지 못해 아쉽다. 화면의 공간제약에서 오는 불가피한 한계였다 하더라도 소심한 붓질의 옹색함은 내내 아쉬움을 남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장면은 마야부인의 태몽을 포착한 ‘도솔래의상’ 벽화다. 도솔래의상은 석가세존의 탄생을 예지하는 팔상도의 첫 장면이자, 불교의 서막이다. 부처께 수기(受記)를 받아 미래에 부처가 될 보살을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라 부른다. 석가모니불도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오시기 전에 호명보살(護明菩薩)의 존명으로 도솔천 내원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일생보처보살로 도솔천에 계셨던 것이다. 벽화의 장면은 호명보살이 도솔천에서 상아 여섯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의 몸 속으로 하생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오색구름을 타고 강림하는 모습을 단청 진채의 밝은 명도와 채도로 거룩하게 표현했다. 종교교의와 예술이 혼연일체를 이룬 고귀한 조형으로서, 서사의 성스러움과 함께 오색단청의 아름다움이 깊은 감명을 안겨준다.

물고기 바구니 든 어람관음 세부

후불벽 뒷면에 관음삼존벽화

후불벽 뒷면의 관음삼존벽화는 대광전 내부장엄의 정수로 손꼽힌다. 희소성, 교의성, 예술성, 전통성, 창조성 등에서 무한한 깊이와 가치를 간직한 벽화다. 관음삼존벽화는 중앙에 정좌한 수월관음을 중심으로 왼쪽에 어람관음, 오른쪽에 백의관음이 서계신 구도다. 우아하고 고귀한 분위가 저변에 흘러 보티첼리의 <봄>의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바탕을 검게 마감하고, 형상은 흰 선으로 그린 독특한 백묘 벽화다. 관음삼존벽화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분은 맨 땅에 맨발로 서계신 어람관음이다. ‘어람(魚籃)’이란 말은 ‘물고기 바구니’라는 뜻이다. 왼 손에 커다란 물고기가 든 바구니를 들고 계신다. 중생들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남루한 차림의 변화신으로 세간에 나툰 보살이시다. 벽화는 검은 바탕에 백묘로 시문한 까닭에 문양 묘사력이 대단히 섬세하고 세밀하다. 세 분의 법의에 시문한 치밀한 문양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옷자락마다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기하문과 넝쿨문양을 촘촘히 베풀었다. 세 보살이 가진 거룩한 대자대비의 원력을 다양한 문양으로 표출하고 있다. 문양이 곧 강력한 에너지이고 생명력의 표현이다. 벽화에서 절대적이며 숭고한 아름다움이 고요히 흐른다. 벽화에 흐르는 적멸의 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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