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백 무비 스님, 〈화엄경〉 강설 81권 완간
한국불교 대강백이자 일생을 경전연구에 몰두한 조계종 前교육원장 무비 스님이 〈대방광불화엄경〉 81권 전부를 해설한 강설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2014년 1권을 펴낸 데 이어 4년여에 걸친 대작불사는 한국불교 역사에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불교계도 이를 경축하며 부처님 전에 강설집을 봉정했다.
2014년 1권 발간 후 4년만에
강설집 완간, 국내 최초 사례
“화엄 공부해야 부처님 만나”
범어사서 4월 4일 봉정법회
사부대중 1000여 명 동참해
무비 스님 강설집 1천질 기부
“화엄을 봐야 진짜를 안다”
조계종(총무원장 설정)과 금정총림 범어사(주직 경선)는 4월 4일 범어사 보제루에서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봉정법회를 봉행했다. 봉정법회에는 총무원장 설정 스님을 비롯해 범어사 주지 경선 스님, 前포교원장 혜총 스님, 주호영 국회정각회장 등 사부대중 1000여 명이 참석해 기쁨을 함께 나눴다.
봉정법회는 부처님께 먼저 책을 올리는 봉정식으로 시작을 알렸다. 이어 무비 스님은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1000세트를 조계종에 기증했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총 81권으로 구성돼 이번에 기증한 책을 권수로 나누면 총 8만1000권에 달한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봉정사에서 “무비 스님이 베풀어 주신 모든 법공양은 이 나라 방방곡곡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야 한다”며 “부처님 은혜와 가피가 충만하고, 부처님 진리 속에 인류평화와 세계평화가 이뤄지는 그날까지 우리도 함께 정진하자”고 당부했다.
무비 스님은 편찬사에서 “〈화엄경〉의 한자 수가 10조9만5000천자가 넘는다. 바다에 모래처럼 많다”며 “나는 화엄경을 줄여서 한마디로 ‘이대로가 화장장엄세계요, 이대로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이 부처님이다. 〈화엄경〉을 읽고 공부해야 이 사실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하며 대중이 경전공부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금강석 같은 원력 앞에선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화엄경 전체 해설집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다. 〈화엄경〉은 80권에 보현행원품을 포함해 총 81권으로 구성된 대경전이다. 강설집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오래됐지만 그 내용이 방대해 전부를 풀어낸 이가 없었다.
무비 스님이 〈화엄경〉을 처음 만난 것은 1963년 해인사 강원 화엄경반에서다. 1970년대 초, 구례 화엄사 구층암에서 범룡 스님의 〈화엄경합론〉을 사경한 것이 두 번째 인연이다. 화엄경 강설집 원력은 같은 해인 1970년대 중반에 세웠다. 탄허 스님의 〈화엄경합론〉 출판에 동참하면서 대중에게 어려운 한자가 안타까웠다. 무비 스님은 좀 더 쉽게 대중에게 〈화엄경〉을 알리길 서원했다.
이후 무비 스님은 〈화엄경〉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1994년에는 〈한글화엄경〉을 단락으로 나눴다. 1997년에는 한문 화엄경에 현토를 달았고 현대화된 강원 교재로 출판했다. 이번에 나온 〈대방광불화엄경 강설〉은 40년 이상 연구한 무비 스님의 결과물이다.
“한문으로 된 〈화엄경〉을 보면서 한편으로 답답했다. 현대화된 말로 쉽게 번역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무비 스님의 원력은 40년 만에 세상에 현현(顯現)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스님은 지병으로 인한 수술로 하반신이 마비되고, 손을 다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럼에도 스님은 멈추지 않았다. 어려움은 스님을 더욱 분발하게 했다. 집필을 위해 컴퓨터를 배워 워드 작업을 했다. 밤을 꼬박 새우며 집필에 매달렸다. “마치지 못하고 열반에 들까봐”라는 염려도 있었다. 결국 마지막 81권은 병원에서 만났다.
이제 스님은 개정판 집필에 착수했다. 1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무비 스님은 “책을 내고 나니 아쉬움이 많다”면서 “더 좋은 해설을 전하고 싶어 바로 개정판을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화엄경〉은 대승경전 가운데 꽃이다. 승속을 막론하고 모든 대중이 읽고 공부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