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굴곡진 멸빈자 사면史

멸빈자 사면관련 종헌개정안에 대한 무기명 비밀투표가 진행되는 모습.

현재 조계종 최대관심사인 멸빈자 사면관련 종헌개정안이 중앙종회서 부결됐다. 찬성 35, 반대 44.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원행)320일 개원한 제210회 중앙종회 임시회서 종헌 개정의 건을 다뤄 지난 208회서 상정 이후 1년여 간 이월된 멸빈자 사면관련 종헌개정안을 무기명 비밀투표에 부쳤다. 투표에는 총 79명의 의원이 참여했으며, 투표결과 찬성 35·반대 44표로 끝내 부결됐다. 이로써 십수 년간 지속된 조계종단의 멸빈자 사면 노력은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집행부의 정치력 시험대

이번 종헌개정안 논의는 제35대 총무원장 설정 스님을 비롯한 집행부의 정치력 시험대로 평가됐다. 하지만 투표결과 찬성표가 과반수도 넘지 못한 채 종헌개정안이 부결됨에 따라 향후 집행부의 종단운영에 중앙종회가 적지 않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제210회 중앙종회 임시회서
79명 투표, 찬성35·반대44표
집행부 기대에 못 미친 결과

서의현 前원장 의식에 영향
부칙 따른 종헌 제한 반감도
집행부 “겸허히 받아들인다”

올해 초부터 설정 스님은 신년기자회견서 멸빈자 사면을 통한 종단 대화합을 강조했다. 특히 최근 전국교구본사주지회의서 각 교구의 협조를 요청, 본사주지들이 이를 지지하면서 사면에 대한 긍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한 각종 위원회 회의서 멸빈자 사면 종헌개정안 통과에 힘을 싣자는 종회의원들의 의견이 다수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종정 진제 스님은 교시를 통해 승가엔 오직 화합만 있다며 멸빈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 정비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집행부도 관련 계획을 알리며 멸빈자 사면 분위기를 끌어올렸으나 종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결국 종헌개정안 가결을 지지한 몇몇 종회의원들이 부끄럽다는 말을 남기고 회의장을 떠나는 모습도 연출됐다.

실제 임시회를 앞두고 여권 종책모임 불교광장 내부에서도 멸빈자 사면 종헌개정안에 대한 의견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야권 종책모임도 지지할 명분이 부족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찬성 35표 중 10표가 비구니종회의원 표인 것을 감안할 때 제35대 집행부가 선출직·직능대표 의원들로부터 얻어낸 것은 고작 25표에 불과하다.

위로부터 형성된 사면여론

멸빈자 사면 논의는 10여 년 전부터 시작, 2003년 이후 수차례 중앙종회에 종헌개정안이 상정됐지만 번번이 부결됐다. 특히 20043월 제162회 중앙종회서는 가결정족수에 1표 모자란 찬성 53표가 나와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4월 곧바로 제163회 중앙종회를 소집해 종헌개정안을 다시 다뤘지만 오히려 찬성표가 줄어들며 동력을 잃었다.

그간 이뤄진 종헌개정안 부결의 가장 큰 공통 배경은 위로부터 형성된 사면여론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동안 멸빈자 사면은 주로 종정 스님과 원로회의의 당부·호소 등으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이 때문에 자비문중’ ‘대화합이라는 표현만으로 대중을 설득하기엔 명분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풀뿌리 구성원으로부터 공감대를 얻고, 점차 종단 핵심 소임자쪽으로 논의를 확산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물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서의현 총무원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원장을 구제하기 위해 멸빈자 사면 논의가 이뤄진다고 표현할 만큼 그에 대한 반감이 크다. 게다가 20156월 재심호계원이 초심호계원의 멸빈징계 판결을 21년 만에 뒤집어 공권정지 3으로 결정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거듭된 논란에 집행부의 행정처리는 보류됐지만, 진제 스님 교시 직후 이뤄진 일이어서 서의현 살리기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종회의원 A스님은 바라이죄나 재산비위에 해당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사면 대상자는 몇 안 된다. 결국 서의현 스님으로 사면 대상자가 좁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종회의원들 사이에서도 사면 여론이 좋지 않았다고 종회의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종회의원 B스님은 원칙적으로 사면에 동의한다고 해도 헌법에 해당하는 종헌을 부칙으로 1회만 제한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의원이 많았다. 이번 결과를 두고 예상보다 찬성표가 많았다는 시각도 있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설정 스님의 강력한 의지가 현실 종단 정치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몇몇 중진 스님들은 설정 스님이 제17대 중앙종회의원 선거 이후인 11월 종회까지 내다보며 사면 논의를 천천히 이어갈 것을 직접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능대표선출위원장이 당연직 총무원장인 만큼 오랜 기간 여론을 수렴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에서 종헌개정안을 다루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처럼 종헌개정안 부결로 제16대 중앙종회서는 사실상 멸빈자 사면에 대한 논의가 불가능해졌다. 오는 10월 제17대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있지만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이를 장악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앞으로 멸빈자 사면 여론에 다시 불을 지피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조계종 집행부는 종헌개정안 부결 이후 대변인 기획실장 금산 스님 명의로 종헌개정안 부결에 대한 제35대 총무원 입장을 내고 사부대중 여러분께 참회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집행부는 종헌개정안이 중앙종회에서 부결된 결과에 대해 종도들의 공의를 모으기 위한 정성과 노력이 부족했음을 통감하며, 종단 대화합을 위해 더욱 노력하라는 준엄한 가르침으로 알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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