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신 화가 화문집 발간 〈근원의 땅, 원주 그림순례〉

 

 

 

원주에 깃든 역사·자연·문화·인물 126점
오늘의 숨결과 현재의 시선으로 복원
화가·문장가·역사가·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원주

 

“사라진 세월의 흔적을 더듬으며 잡초 무성한 절터를 거닐다가 화실로 돌아왔다. 한지를 펴고 거돈사터를 화폭에 옮겨본다. 발굴 당시의 희미한 항공사진을 어렵게 구해 살펴가며 가람의 밑그림을 그린다. 답사는 한여름에 했으나 그림의 배경은 스산한 겨울밤이다. 밤하늘에 반달이 떠있고, 폐사지에는 눈이 내린다. 산세와 폐사지와 유적을 수묵으로만 그려나간다. 어제의 역사 속에 오늘의 눈이 내린 장면을 표현하고 무상한 세월을 담고 싶었기에…”

흥미로운 화문집이 나왔다. 이호신 화백의 〈근원의 땅, 원주 그림순례〉다. 한국 진경산수화의 전통을 창신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과 다채로운 색채를 응용하여 ‘생활산수화’라는 독자적인 장르와 화풍을 추구해온 이호신 화백은 30년 이상 이 땅의 산하대지와 문화유산을 두루 살피며 가슴에 절절히 담아 그림으로 형상해온 길 위의 화가다. 이 화백은 화가와 문장가, 역사가와 인문학자의 소양 그리고 우리 것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이 땅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엔 그림만 있지 않다. 그 그림이 그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와 의미, 가치 등 그 그림으로 인해 생각하고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영역들이 녹아있다. 잃어버린 역사와 사라진 삶의 이야기를 채집하여 오늘의 숨결과 현재의 시선으로 복원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사물에 시간의 흔적을 채록하고, 그 안에 깃든 생의 자취를 시각화한다. 아울러 사라지고 망실된 우리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복원하여 기록한다. 역사에서 추출된 공식적인 것들뿐만 아니라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거나 누락된 것들, 소소하여 밀려난 것들까지 힘껏 껴안으며 그림과 글로 되살려 놓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이야기 그림’이면서 ‘그림 이야기’가 된다.

치악산 상원사 (148×210cm)

이 화백이 이번에 펴낸 〈근원의 땅, 원주 그림순례〉는 이 화백이 수년에 걸쳐 치악산국립공원과 원주시를 탐사하여 그 공간이 산출한 의미 있는 대상들을 그림과 글로 담아낸 화문집이다. 원주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유산, 상징 인물 그리고 근현대사의 자취까지 총망라한 기행화첩으로, 원주라는 땅의 어제와 오늘이 한데 어우러진 감각적이고 운치 있는, 이호신의 생활산수화를 만날 수 있다. 여섯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 책에는 모두 126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제1부 ‘치악산국립공원을 걷다’에서는 원주의 상징과 같은 치악산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 자리한 빛나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구룡사와 비로봉이 있는 구룡지구, 입석사와 흥양리 마애불좌상, 보문사 등을 만날 수 있는 황룡지구, 계곡이 맑고 숲이 우거진 금대지구, ‘활엽수 박물관’이라 불리는 성황림과 속세의 근심을 씻어주는 상원사를 품은 성남지구 등이다.

△제2부 ‘원주, 사람의 향기’에서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소설가 박경리,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감동적인 생애를 인상 깊게 들려준다. 그리고 구름처럼 물처럼 살다간 동양철학자 김충열, 이 땅에 고구마를 처음 들여온 조엄 등 원주 땅에서 살다간 걸출한 위인들도 만날 수 있다.

△제3부 ‘역사의 유산을 찾아서’에서는 고인돌과 석조불두를 통해 돌 하나에 깃든 역사의 무게를 가늠하고, 법천사지와 흥법사지, 거돈사지 등 원주의 폐사지를 찾아가 천년의 웅대한 시간과 조우한다.

△제4부 ‘삶과 문화의 숨결’에서는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을 찾아가고, 급변하는 시대에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진정한 장인들을 만난다. 화가는 고판화박물관과 오랜 미래신화미술관, 뮤지엄 산 등 원주의 특색 있는 문화공간을 둘러보고, 한지테마파크와 시민 축제의 흥겨운 현장도 소개한다.

△제5부 ‘자연과 마을의 풍경’에서는 학곡리 한다리골과 복사꽃이 아름다운 두둑마을, 생명의 배움터 참꽃작은학교, 소나무가 춤추는 집 무송원, 자연이 피고 지는 치유의 정원 원주 허브팜 등을 찾아간다.

△제6부 ‘근원과 오늘, 미래의 땅’에서는 중앙시장과 자유시장, 미로예술시장 등 원주 시민들의 오늘의 삶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현장을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이호신 화백은 지금까지 17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주 핀란드 한국대사관, 주 탄자니아 한국대사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지은 책으로는 〈화가의 시골편지〉 〈지리산진경〉 〈가람진경〉 〈산청에서 띄우는 그림편지〉 〈우리 마을 그림 순례〉 〈그리운 이웃은 마을에 산다〉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숲을 그리는 마음〉 〈길에서 쓴 그림일기〉 등이 있다.

원주 거돈사지의 설야 (137×178cm)
치악산 비로봉 해맞이 (148×20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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