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개와 불교

작가 미상의 문배도(門排圖). 민화 속에서 개는 친숙한 존재로 자주 묘사됐다. 그만큼 우리들 삶에 가까운 동물이었다. 불교 속에서도 개는 친숙한 존재로 윤회와 업의 주인공으로 자주 표현됐다.

불교 속 개 이야기
당나라 때 한 수행승이 물었다.“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은 “없다(無)”고 대답했다. 수행자는 다시 물었다. “일체 중생에게는 모두 불성이 있는데 왜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 조주 스님이 대답했다. “개에게 업식(業識)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조주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의문을 타파하게 되면 견성(見性)한다고 한다.

1700 공안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무자(無字) 화두의 기연이 된 선문답의 일부다. 조주(趙州) 스님(778∼897)은 ‘개에게 불성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때론 ‘있다’ 때론 ‘없다’고 답하면서 무수한 수행자들을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란의 경지로 몰아갔다. 이 문답은 개와 불성에 관한 것이라 해서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화두라 불린다.

조주 스님 ‘구자무불성’화두
현상 집착하는 존재에 비유
아라한과 이룬 개 이야기도


이 문답에는 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표상돼 있다. 일체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대승불교 전통의 가르침이므로, 논리적으로는 개에게 불성이 있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어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개의 품행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이처럼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한 개에 대한 편견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충돌하면서 문답을 둘러싼 의구심은 커지고, 문답은 하나의 화두로 승화된다. 이 같은 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경전이나 선전(禪典) 이곳저곳에 자주 눈에 띈다.

〈대방편불보은경〉에는 성현을 헐뜯은 죄로 개로 태어났던 균제 사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균제 사미는 과거세에 아비담장(阿毘曇藏)과 비니장(毘尼藏)과 수다라장(修多羅藏)을 통달한 비구였다. 그는 행색이 누추하고 음성까지 무딘 늙은 비구 마하라를 얕잡아보고 “음성이 개가 짖는 것보다 못하구나”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그 늙은 비구는 이미 성현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성현을 몰라보고 구업을 지은 균제 사미는 개의 몸을 받아 태어나야 했다. 말 한마디가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 속에서 ‘개’는 악업의 결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전등록〉에서도 개는 어리석은 존재로 묘사된다. 잘 알려진 사자교인(獅子咬人) 이야기가 그것인데, “돌을 던지면 개는 그 돌을 물고, 사자는 돌을 던진 사람을 문다(韓盧逐塊 獅子咬人)”고 해서 개는 현상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존재를 상징한다. 〈잡아함경〉도 애욕의 결박을 끊지 못하는 중생의 모습을 ‘기둥에 묶인 개’로 비유하고 있다.
 

하지만 개가 언제까지나 어리석고 탐욕스런 존재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개도 엄연히 성불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경전에 제시되고 있다.

〈구잡비유경〉에는 환생을 거듭한 끝에 아라한과를 얻은 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밤낮으로 경전을 외우는 사문이 하나 있었다. 그의 평상 밑에는 늘 개 한 마리가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사문의 독경 소리를 일심으로 듣곤 했다. 그렇게 몇 년 지내다 목숨을 마친 개는 사위국의 여자로 태어났다. 자란 뒤 사문을 따라가 비구니가 돼 정진해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

개는 일찍부터 불교미술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독자적인 것보다 십이지의 한 신중으로 표현돼 왔으며, 초기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장수의 형태로 등장하다 후대로 가면서 무관에서 문관으로 복장이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릎을 꿇은 공양상 형태로 도상이 변모해왔고, 십이지상을 최초로 배치한 보물 제 1429호 경주원원사지석탑에서는 상층기단에서 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생활 속 개 이야기
십이지의 열한 번째 동물인 개(戌). 시간으로는 오후 7시에서 9시, 방향으로는 서북서, 달(月)로는 음력 9월을 상징하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개는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화 됐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 온 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헌신’과 ‘충복’의 대명사로 통한다. 목숨을 걸고 주인을 살린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다. 설화 속에서 개는 충성과 의리를 아는 의견(義犬)으로 그려진다.
그런가 하면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를 따라가면 칙간으로 간다’ 등 개는 비천함의 상징으로 우리 속담에 등장한다. 또 ‘개XX’, ‘개만도 못한 X’ 등의 욕에 응용되기도 한다. 또한 ‘개살구’ ‘개꿈’ ‘개판’ 등 앞에 ‘개’를 붙이면 사물의 격이 낮아지고 만다.

동반자·폄하 용어로 혼용
병·잡귀 물리쳐 민화에 등장
불교선 삼목천왕 환생 여겨…


이처럼 무시당하는 개지만, 인류의 오랜 벗으로서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개를 기르면 잡귀와 병도깨비, 요귀 등의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옛 그림에 개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실제로 오늘날에는 개가 범인을 추격하거나 마약 및 폭발물을 찾는 데도 큰 몫을 담당한다. 또 시각장애인에게는 길을 안내하는 등 일상생활을 돕고 활력을 주는 친구이기도 하다.

개고기는 한국과 중국 등에서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꼽힌다. 중국에서는 향육, 북한에서는 단고기라 불리는 개고기는 소화흡수력이 뛰어나고 양질의 영양가를 많이 갖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삼목천왕의 환생이라 보기도 하고, 인과환생 할 때 개로 태어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해서 식육이 금기시 된다.

붉은 닭(丁酉)이 가고, 금빛 개(戊戌)가 왔다. 지나간 일 쫓다간 닭(酉) 쫓던 개(戌)가 될 수 있다. 지나간 닭은 보내고, 새해엔 현재에 집중해 살아보자. 무술년 새해에는 특히 개의 장점만을 받아 활기찬 출발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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