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보살의 이타행

饒益他品第十八
世間生己樂故。於生死中身心疲勞。菩薩心得休息悲心作饒益。他生死中除對治法更無有樂。菩薩除利益他更無有樂。菩薩得作利他歡喜樂。知利他者卽是自利。捨自己利愛利他樂。知利己樂卽是利他樂。知利他樂卽是利己樂。知利他樂時卽自己樂故。人有上中下。愚人者見他得樂心生苦惱。中人者己自苦時知苦。上人者見他樂時心生快樂。見他苦時如自己苦。菩薩四攝法中與他同利。云何同利。他苦則苦他樂則樂。是名同利。悲心平等無有他想。菩薩與生同苦同樂。菩薩自己身特生苦惱。何以故。不能救生苦故。不觀過去不觀未來。隨生意作滅苦對治。菩薩自意亦如他意。世間生與他利樂還望返報。菩薩與他利樂不望其報。菩薩雖悲心平等愛一切生。然於怨憎中倍與利樂。於怨憎邊與利樂時心中歡喜。如捨身命時歡喜者名平等。若不如是名不平等。於怨憎中倍與利樂者名稱悲心所作。

번역|요익타품 제18
세상의 중생은 자기 즐거움을 위해 생사 가운데 몸과 마음이 피로하지만, 보살은 마음에 휴식을 얻어 자비심으로 두루 이익케 합니다. 생사 가운데 대치하는 법을 버리면 즐거움이 없지만, 보살은 타인의 이익을 버리면 즐거울 게 없습니다. 보살은 이타행으로 환희의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의 이익임을 알아서 자신의 이익을 버리는 이타락(利他樂)을 사랑합니다. 자신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이 곧 이타심의 즐거움임을 알고, 이타락이 곧 자신을 이롭게 하는 즐거움임을 아는 것은 이타심으로 즐거울 때 곧 자신도 즐겁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상, 중, 하가 있거니와 어리석은 이는 타인이 즐거우면 마음에 괴로움이 생기고, 중인(中人)은 자신이 괴로울 때에야 괴로운 줄 알고, 상인(上人)은 남이 즐거울 때 마음에 쾌락이 생기고 남이 괴로울 때 자신도 괴롭습니다. 보살의 사섭법(四攝法) 가운데는 남에게 동리(同利) 베풂이 있는데, 무엇이 동리(同利)인가 하면, 타인이 괴로우면 곧 괴롭고, 타인이 즐거우면 곧 즐거운 것을 바로 동리(同利)라고 합니다. 자비와 평등으로 남이라는 생각이 없기에 보살은 중생과 더불어 괴롭고 함께 즐겁습니다. 보살 자신에게 특별한 괴로움이 생김은, 중생을 괴로움에서 구제하지 못해서 그렇거니와 과거도 미래도 살피지 않으며 중생의 뜻에 따라 괴로움을 없애도록 대치합니다. 보살은 자기 뜻을 남의 뜻으로 여기는데, 세상의 중생은 남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주면 도리어 보답을 바랍니다. 보살은 타인에게 이익과 즐거움을 주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보살은 오직 자비심과 평등으로 일체 중생을 사랑하기에 원망하고 미워해도 배나 이익과 즐거움을 줍니다. 원망과 미움의 경계에서 이익과 즐거움을 줄 때 심중에 기쁘고 몸과 목숨을 버리듯 하는 것을 평등이라 합니다. 만약 이와 같지 않으면 불평등이며 원망과 미움 가운데 배나 이익과 즐거움을 주면 자비심 짓는다고 합니다.

해설|새벽안개 자욱하게 내려앉은 거리에 가로등 하나가 거리를 다 비추는 법이고, 캄캄한 중생의 마음에 지혜 한 줄기 비취면 삼계를 훌쩍 벗어나는 법이다. 원망과 미움 가득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이 원망하고 미워하며 아귀다툼을 해야 할 것인지 우리는 스스로 결정해야만 한다. 헐떡이는 그 마음을 자비로 돌려세울 수 있다면 그가 곧 보살마하살이다. 염불은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는 일이다. 명호를 부른다는 것은 불보살과 내가 하나가 되는 일임에도 우리는 그 염불 속에서 여전히 자신의 이익만을 갈구하지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기도란 평등심으로 돌리는 일이자 자비심 짓는 마음 바탕을 닦는 일임을 자꾸 되새겨야만 하겠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