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해탈 공덕을 위한 자세

人若得解脫知利他樂歡喜氣味者。必當還來利益生。畏於生死自利益求於解脫以極樂者。不如菩薩受陰身時歡喜快樂利他故。若自一已受逼迫苦者乃可入於涅槃。一切生受逼迫苦。云何捨於生入於涅槃。見自己苦者入於涅槃。悲者見一切生苦皆住己心。云何捨於生入於涅槃。若能他作樂歡喜卽是涅槃。若不如是卽是生死。於生有平等悲者他作樂歡喜卽是涅槃。佛所讚說。若解脫如利益一人歡喜樂者智者所愛。若與他重樂不計功者卽是解脫。悲者他作樂不望果報。若能如是卽是解脫。若不如是卽是生死。若己求樂者卽是苦也。捨於己樂他求樂卽是涅槃。世間生以破苦故名解脫。修悲者能破他苦卽是勝解脫也。破他苦者二俱得樂。何有智者捨二解脫取一解脫。世間人言。有智者得於解脫。菩薩作是思惟。我不信是語。何有智人捨救他樂取於解脫。自己得樂能與他作樂。三有中樂勝解脫樂。菩薩生受苦。勝於他人己得解脫樂。

번역|지혜로운 사람이 만약 해탈을 얻으면 이타행의 즐거움과 환희의 기미를 알고 반드시 되돌아와 중생을 이익케 하나니, 생사를 두려워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해탈을 구함으로써 극락 삼는 것은 보살이 오음(五陰)의 몸을 받았을 때 즐겁고 기뻐하며 이타행을 하는 것만 못합니다. 만약 자기 한 몸의 핍박과 괴로움 때문이라면 열반에 들어가겠지만, 일체 중생이 핍박과 괴로움을 받는데 어찌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들어가겠습니까. 자기 괴로움만 보면 열반에 들어가겠지만 자비로운 이는 일체 중생의 괴로움이 모두 자기 마음에 머물러 있음을 보는데 어찌 중생을 버리고 열반에 들겠습니까. 만약 타인을 즐겁고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이것이 열반이거니와 만약 그러지 못하면 생사(生死)입니다. 중생을 향해 평등과 자비가 있고, 타인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게 곧 열반입니다. 부처님께서 찬탄하신바 만약 해탈하여 한 사람이라도 이익케 하고 기쁘고 즐겁게 한다면 지혜로운 이가 사랑한다고 하셨고, 만약 타인을 거듭 즐겁게 하되 계산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열반이라 하셨습니다. 자비를 닦는 이는 능히 타인의 고통을 파하기에 곧 수승한 해탈이 됩니다. 타인의 고통을 파하면 두 가지 즐거움을 얻는데, 어찌 지혜로운 이가 두 가지 해탈을 버리고 하나의 해탈만 취하겠습니까. 세상의 사람들은 말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해탈을 얻고, 보살도 이런 생각을 짓는다고요.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 타인 구제를 버리고 해탈의 즐거움을 취하겠습니까. 자신이 즐거우려면 더불어 타인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 삼계(三界) 가운데 즐거움은 승해탈락(勝解脫樂)이니, 보살은 중생을 위해 고통을 받거니와 타인이 자신을 위해 해탈을 얻는 것보다 수승합니다.

해설|본문을 읽다보니 언젠가 내게 해탈하였느냐 물었던 사람이 생각난다. 집착을 다 끊지는 못했다고 말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틀린 답이었다. 해탈은 내가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해탈은 내가 평안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즐겁고 평안하도록 만드는 삶이었다. 지혜란 것도 그러하였다. 사람들은 보통 내가 평안하면 세상이 평안하다고 여긴다. 한편, 내가 부처가 되면 세상에 부처 아닌 것 없다고 여기기도 하였는데, 이제 보니 세상이 부처님 세상이기에 내가 부처가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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