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의 공안(公案)을 모두 합쳐 1700공안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게 된 것은 〈경덕전등록〉에 수록된 선사들의 공안을 모두 합쳐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이들 공안을 선별하여 중요한 공안을 활구(活句)라 하여 간추려 내기도 하였다. 설두중현의 〈송고백칙〉도 1700 공안 가운데서 100개를 간추려 낸 것이다. 간혹 공안에도 사구(死句)가 있다고 한다. 활구니 사구니 하는 말은 공안이 지닌 생명력이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는 말(活句)이라 하고 공안의 생명력이 없는 것을 죽은 말(死句)이라 하였다.

간화선 공부에 있어서 선수행자가 가장 많이 참구해온 대표적인 공안을 무자(無字) 화두라 한다. 물론 ‘이 멋고(是甚?)’라는 화두도 있지만 무자화두의 10가지 병을 설해온 예를 보더라도 공안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것이 역시 무자라 할 수 있다.

이 무자 화두는 조주종심(趙州從?:788~897) 선사에 의해서 제안된 화두다. 원래는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인데 줄여서 그냥 무자화두라 한다.

〈조주록〉에 어떤 학인이 찾아와 조주스님에게 질문을 하는 이런 대화의 장면이 나온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위로는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개는 어째서 없습니까?” “그것은 업식성이 있기 때문이다.”

질문한 학인은 〈열반경〉 등에 설해져 있는 ‘일체 중생은 불성이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는 경전의 말을 근거로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다 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 개도 중생에 속하지 않느냐는 취지로 물은 것이다. 경전의 말을 부정하는 것인가? 여기서 화두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말이 가지고 있는 지적인 아름아리를 따라가면 이는 죽은 말이 된다. ‘없다(無)’ 한 것은 경전의 말을 활구로 만드는 수단이다. ‘있다’ ‘없다’ 하는 양단(兩端)의 어느 한쪽을 결정해 주는 말이 아닌 것이다. 〈조주록〉에는 또 이렇게 대답한 말도 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집집마다 그 집 문 앞에는 장안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

그런가 하면 유관(惟寬) 선사는 똑같은 질문에 ‘있다’고 대답했다. 〈경덕전등록〉 권7 ‘유관선사전’에 나오는 대화는 이렇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스님에게도 있습니까?” “나는 없다.”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스님만 없습니까?”  “나는 일제중생이 아니다.” “중생이 아니면 부처입니까?” “부처도 아니다.” “그렇다면 마침내 무슨 물건입니까?” “이 또한 물건도 아니다.”
“보거나 생각할 수 있습니까?”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고 말로 얻을 수 없으므로 불가사의라고 한다.”

글자가 지닌 유ㆍ무의 상대적인 의미에 화두가 있는 것이 아니고 ‘무’라 대답하고 ‘유’라 대답한 선사의 알 수 없는 의중이 화두가 되는 것이다. 화두에는 분별이 없다.

〈무문관(無門關)〉 1칙에는 무자(無字)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 놓았다.

“온몸으로 의심덩어리를 일으켜 이 ‘무’자를 참구하여 밤낮으로 들고 있되 허무라고 이해하지 말며, 유·무의 두 견해로 분별하지 말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야(부처다, 조사다 하는 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벗어나야) 이 무자의 관문을 뚫고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

조주의 무자는 이렇게 모든 공안의 표본이 되었다. 중국에서 선법이 번창하게 된 데에는 많은 선사들의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중 선의 보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선사를 두 사람만 고른다면 조주 선사와 임제 선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주와 임제는 같은 시대를 살았다. 모두 당 말기 9세기초반에서 후반까지 활약하였다. 다만 조주는 120세의 생애를 살아 장수를 누렸다.

임제의 출생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열반에 든 해가 867년으로 나와 있다. 두 사람은 또한 산동성(山東省) 남화(南華) 출신으로 동향(同鄕)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질은 달랐다. 후대의 사람들이 임제의 선풍을 남성적인 북방인 기질이라 평했고 조주를 온화한 남방인의 기질에 여성적이라 말하기도 했다. 섬세하고 언설적인 기지가 넘친 조주에 비해 임제는 행동적이고 거칠고 우직한 면을 보여 ‘산채로 파묻는다’는 활매(活埋)의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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