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5-11-26 09:52 (수)

원상(圓相)으로 법을 드러내다

원상(圓相)은 둥근 모양 곧 동그라미(o)를 말한다. 보통 일원상(一圓相)이라고 말하는데 굳이 원상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하자면 모든 상대적 분별이 사라져 원만하게 최후의 절대 진리가 구현된 경지를 나타내는 부호(符號)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원상을 선종에서 활용해 온 사례가 자주 있었다. 일반적으로 원상을 두고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성(佛性), 또는 실상(實相)을 나타내는 수단이라고 말해 오기도 했지만 선종에서는 그런 개념마저도 두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떤 의미의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손가락이나 불자(拂子) 또는 주장자 등으로 허공이나 바닥에 원상을 그려놓고 선기(禪機)를 드러내거나 상대를 점검하는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원상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이 남양혜충(南陽慧忠:?~775) 스님이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마조도일(馬祖道一:709~788) 선사가 먼저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경덕전등록〉에 수록된 〈경산도흠전(徑山道欽)〉에 나오는 이야기다. 마조 선사가 경산 스님에게 편지를 써 보냈는데 편지 안에는 글이 없고 원상 하나만 그려져 있었다. 편지를 뜯어본 경산 선사가 원상 안에 점을 하나 찍어 다시 봉하여 마조 선사에게 보냈다. 이 이야기를 혜충 국사가 전해 듣고 말했다.

“경산이 마조에게 속았구나.”

〈선문염송설화〉 165칙에는 어떤 학인이 찾아왔을 때 마조 선사가 원상 하나를 그려 놓고 말했다.

“들어와도 때리고 들어오지 않아도 때릴 것이다.”

그러자 학인이 원상 안으로 바로 들어왔고 마조 선사는 그를 때렸다. 학인이 말했다.

“스님은 저를 때리시면 안 됩니다.”

마조 선사는 주장자에 기대어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또 남전이 귀종, 마곡 두 스님과 함께 혜충국사를 찾아가던 도중 길바닥에 원상 하나를 그려 놓고 말했다.

“제대로 말하면 함께 가겠다.”

그러자 귀종 선사가 그려놓은 원상 안에 들어가 앉았고, 마곡 선사는 여인의 절을 하였다. 남전 스님이 이렇다면 가지 않겠다고 하자 귀종 선사는 “무슨 속셈인가?”라고 했다. 남전 선사가 두 스님을 불러 되돌아갔다.

〈설화〉에는 길바닥에 원상 하나를 그려놓은 뜻이 무엇인가? 원상의 제작이 혜충 국사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원상을 그려 그를 만나려 한 의도라고 하였다.

〈금강경오가해〉 ‘설의’에도 원상에 대한 이야기가 설해져 있다.

“원상을 만든 것이 남양혜충 국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국사가 탐원(耽源) 스님에게 전해주고 탐원 스님이 앙산(仰山) 스님에게 전해 주었다. 탐원 스님이 어느 날 앙산 스님에게 말했다.


‘국사가 육대조사의 원상 97개를 나에게 주시면서 내가 멸도한 뒤 30년쯤에 한 사미가 남방에서 와 크게 현풍을 드날리게 될 것이니 그때 이 원상을 전하라 하셨는데 내가 이 일을 살펴보니 그대를 두고 말한 것 같아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니 잘 받들어 지니도록 하라.’

그런데 앙산 스님이 원상을 받았다가 불에 태워버렸다고 한다. 탐원 스님이 뒤에 이를 알고 제불 조사가 전한 것인데 어째서 태웠냐고 묻자 한 번 보고 그 뜻을 이미 알아버렸으니 일상에 쓰는 것이 원상이니 견본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고 대답한다. 탐원 스님이 다시 자네는 그렇다 치고 뒤에 사람은 어쩔 것이냐고 하자 앙산 스님이 다시 원상을 그려서 탐원 스님에게 바쳤다고 한다.

원상을 그려서 주고받았다? 도대체 원상의 정체는 무엇인가?

원상송(圓相頌)이라는 게송이 전해진다.

“옛 부처 태어나기 전에 / 한 둥근 모양이 엉켰으니 /  석가도 오히려 알지 못했거늘 /  가섭이 어찌 전할 손가?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법을 전하되 전함이 없는 부전(不傳)의 묘(妙)를 원상을 차용하여 대변시킨 것 같다. 원상의 사용이 인도에서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부법장전(付法藏傳)에 서천 14조 용수보살이 법좌에서 몸을 숨기고 원상(ㅇ)을 나타내자 제자 제바가 말한다.

“존자께서 부처님 몸의 형상을 드러내어 우리에게 보이시는구나.”

때론 원상을 보름달에 비유한다. 무상삼매(無相三昧)가 보름달과 같다 하고, 이는 불성이 막힘없이 트여 텅 비고 밝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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