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모국어 사랑

법정 스님께서 40대에 미리 써놓았던 유서 한 부분이다. 스님께서는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 모국어를 더 사랑하고 출가 사문이 되어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는 말씀을 남겼다. 유서 한 부분이지만 모국어란 살가운 말이 오늘은 내 가슴에 꽂힌다. 문단 말석에 앉은 소설가로서 글을 밥 삼아 일 삼아 써온 사람이어서 더욱 그런지 모른다.

내가 샘터사에 입사했을 때 편집주간이었던 분이 “스님의 두 번째 수필집 제목을 입석자(立席者)로 할 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께서 지은 ‘입석자’를 샘터사 김재순 이사장이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바꾸어 제시하자,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마도 이때부터 스님께서는 우리말에 대한 관심을 더 갖지 않았나 싶다.

일러스트 정윤경.

이후 스님의 책은 실무담당자인 내가 불일암을 오가면서 펴냈던 것 같다. 〈텅 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말과 침묵〉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등등이다. 〈텅 빈 충만〉은 선가의 용어인 진공묘유(眞空妙有)를 푼 우리말이다. 참으로 비었는데 묘하게도 가득 차 있다는 뜻이 진공묘유이다. 〈버리고 떠나기〉도 마찬가지다. 구름처럼 물처럼 떠돈다고 하여 수행자를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 하지 않은가. 〈물소리 바람소리〉도 자연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편하고 쉬운 우리말로 환치한 것이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자연의 훼손을 경고한 제목이고. 다만 〈샘터〉 산방한담 난에 연재된 원고는 별 수 없이 그대로 〈산방한담〉이란 책이름으로 발간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크게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편, 스님의 〈인도기행〉은 나로서는 결코 잊지 못할 책이다. 스님께서 인도로 떠나시기 전이었다. 나는 스님을 을지로 상가로 모시고 가서 작고 가벼운 카메라 한 대를 사드렸던 것이다. 스님께서 고르신 제품은 저가의 올림푸스 자동카메라였다. 당시 〈인도기행〉은 스님 특유의 사유가 밴 글과 스님께서 흥미롭게 찍은 소박한 사진들로 채워진 여행기였는데, 어느 날 어떤 사진가의 강렬한 사진으로 바뀌어 나를 실망시킨 적이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스님의 탐구밀도와 내 작은 정성이 빛을 잃어버린 듯해서였다.

스님께서 한 번은 내게 “무염거사, 박경리 씨가 〈토지〉에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실감나게 한 것처럼 무염거사도 전라도 사투리로 써 봐요”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때까지 나는 소설을 쓸 때 습관적으로 표준말만 구사했는데 스님의 권유 덕분에 영감이 하나 스치는 듯했다.

결국 나는 정약용의 유배생활을 그린 장편소설 〈다산의 사랑〉, 영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그린 대하소설 〈이순신의 7년〉에 전라도는 물론이고 충청도, 경상도 사투리를 소개하면서 토속어가 얼마나 정겨운지를 깨달았다. 모국어의 소중함과 사투리의 가치를 새삼 깨우쳐주신 스님께 감사를 드린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