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스티브 잡스와 禪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에 걸려 56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혁신의 자취는 계량화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는 컴퓨터에 선불교의 옷을 입힌 선(禪) 디자이너이자 애플 회사를 창업한 기업가였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중퇴한 뒤 사과농장에서 히피생활을 하면서 일본인 선승 오토카와 고분 치노를 스승으로 맞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인도여행을 하고나서 선불교에 더욱 심취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선불교 정신을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에 접합시킨 그의 발상이다. 조주 선사가 선불교 정신을 차(茶)로 녹여내 일상으로 끌어낸 혁명과 흡사한 느낌이다! 불교를 중국화한 선불교는 이미 남전, 임제 같은 대선사들에 의해 검증이 끝난 인류의 정신적 자산이다. 좌선을 활용한 ‘집중하기’, 버리고 비우기를 통한 ‘단순해지기’, 창의력을 샘솟게 하는 ‘고정관념 깨기’ 등이 선불교가 강조한 가치들이 아닐까.

일러스트 정윤경.

법정 스님께서도 선은 고정관념 내지는 획일성을 깨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선은 모방과 획일성을 배격한다. 저마다 업을 달리하면서 자기 삶을 살고 있는데, 어째서 남의 흉내나 내면서 범속하게 살려 하는가. 독창적인 자기 세계를 일깨워 개척하지 않고 남이 닦아 놓은 남의 길을 안일하게 가려는가. 선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한한 창조성에 몰입하여 끝없는 빛과 한없는 목숨을 드러내는 일인 것이다.”

특히 법정스님은 버리고 떠나기를 강조하셨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그러므로 차지하고 채우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침체되고 묵은 과거의 늪에 갇히는 것이나 다름없고, 차지하고 채웠다가도 한 생각 돌이켜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비우는 것은 새로운 삶으로 열리는 통로이다.”

선사들이 남긴 가르침은 우리들 주위에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스티브 잡스처럼 물질문명에 결합시킨다거나 조주선사처럼 일상생활에 구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조주선사나 스티브 잡스는 구름 위에 머물러 있던 고고한 선불교를 형이하학적인 세계로 끌어내린 선의 경영자가 아닐까 싶다.

어린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믿던 종교를 버린 것도 극적이다. 스티브 잡스는 열세 살 때까지 다니던 교회를 돌연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가 구독하고 있던 <라이프>잡지 표지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나이지리아의 아이들이 실린 것을 보고는 주일학교 목사를 찾아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니까 이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시겠네요”하고 질문했는데, 목사가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하나님을 다시는 믿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그때부터 스티브 잡스에게는 이미 불연(佛緣)이 있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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