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배우는 길

대현 지음|올리브나무 펴냄|1만 5천원
‘위빠간화선’, 간화선+위빠사나
통합한 수행 바람직하다고 주장
저자, “지도없이 손쉽게 수행 가능”

“간화선 수행법은 남의 나라를 침공할 때 특공대를 보내 수도를 점령하고 왕을 생포해 항복 받은 다음 그 나라의 군대와 백성을 조복 받는 것처럼 속전속결의 법이다. 위빠사나 수행법은 적의 군대를 작전을 펴서 무력으로 점점 섬멸해 수도를 점령하고 왕을 붙잡아 항복시키는 것과 같다.

위빠사나 수행과 간화선 수행을 병행하는 ‘위빠간화선’은, 처음은 적의 군대를 작전을 펴 무력으로 점점 섬멸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특공대를 보내어 수도로 쳐들어가서 왕을 생포해 항복을 받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간화선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실감한 저자는 묵조선과 위빠사나, 간화선이 정상으로 가는 각기 다른 길일 수 있지만 세 길이 하나로 통합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체험해 왔다.

저자는 “깨달음의 길은 결국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본래 태양처럼 밝다는 것을 실감하고서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너와 나의 경계가 일시에 사라져버리는 대자유함, 솟아 오른 해가 천지를 환히 비추는 것 같은 충만한 존재감, 그 길은 결코 멀지 않습니다.”
대현 스님은 ‘고요히 비춤’을 바탕으로 삼고, ‘알아차림’으로 마음이 들뜸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이 뭣고?’하고 화두를 챙김으로써 산란한 마음을 강한 집중으로 삼매에 들게 해 무명 번뇌를 조복시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위빠 간화선’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위빠사나와 간화선 수행의 장점을 잘 살린 ‘위빠 간화선’ 수행은 특별한 수행처를 찾을 것 없이 일 반 가정에서 누구의 지도없이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저자는 “천근만근 짐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 솟아오른 해가 천지를 환히 비추는 것 같은 충만한 존재감, 너와 나의 경계가 일시에 사라져버리는 대자유함을 이 책이 제시하는 ‘위빠 간화선’을 나침반 삼아 나아가노라면, 그 길은 결코 멀지 않다”며 “수행법을 1백일만 읽고 따라하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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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대현 스님은?
1968년 백양사로 출가했다. 강진 백련사서 정일 선사를 은사로 득도했다. 1975년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서 안거 후 제방선원서 50안거를 성만한 스님은, 간화선이야말로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인 것이 분명하지만, 깎아지른 바위산을 단박에 오르는 것과도 같아서 상근기에 적합한 수행법이라는 생각을 품던 중 ‘위빠사나’를 만난 이후 이를 간화선에 접목, 수행의 바르고 빠른 길로서 “위빠간화선”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지리산 정각사 죽림선원에서 정진중이다.


 

책속의 밑줄 긋기


-감각적 욕망에 휘둘리는 삶은 여러 가지 물감을 섞어서 풀어놓은 물과 같다. 이런 물에서는 자신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비춰볼 수 없다. 그래서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히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으로 왜곡시켜 받아들인다. 감각적 욕망은 마치 빚을 진 것과 같게 하고, 이것이 사라지면 빚을 다 갚고 빚에서 벗어난 자유인과 같게 된다.

-실답게 수행하는 방식은 그저 고요히 앉아 묵연히 참구하는 것이다. 깊이 들어가면 도달하는 곳이 있으니, 밖으로는 인연의 흐름에 끄달리지 않아 그 마음은 텅 비어 일체를 용납하고, 그 비춤은 오묘하여 적절하고 균등하며, 안으로는 반연하는 생각이 없고 툭 틔어 홀로 존재하되 흐릿하지 않으며, 신령스럽게 모든 의존을 끊고 편안한 자기로 머무른다. 그 편안한 곳은 감정과 무관하니 거침없이 트여 어떤 것에도 의지함이 없고, 아주 빼어나서 스스로 신령스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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