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마음

선묵혜자 스님 지음|쌤앤파커스 펴냄|1만 5천원
50년 수행지혜 96편 시와 에세이로
삶, 죽음, 행복, 비움 등 다양한 주제
오순환 화백 그림 독서미각 돋워

“하루에 한 번 이라도 나를 내려놓고 마음 비우는 연습을 하세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사랑과 행복, 자비가 내 마음 속에 가득 넘쳐나는 걸 알게 됩니다.”

9년에 걸쳐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 순례기도회’를 이끌며 지난 10월 25일 대장정의 막을 내린 회주 혜자 스님〈사진〉은 불교계 신행 문화를 바꿔 놓는데 큰 공을 세웠다. 사찰 순례에 동원된 버스만 총 1만1664대, 왕복 순례거리 817만㎞(지구를 204바퀴 돈 거리)등 각종 진기록도 수립했다. 사찰 순례가 많지 않았던 시절 선묵혜자 스님의 108산사 순례는 흥행 돌풍을 일이키며 지역 사찰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언제 책을 쓸 시간이 있었을까 의아했지만 선묵혜자 스님은 틈틈이 산사(山寺)의 시인이 되어 시와 에세이를 펴냈다.

이번에 출간한 〈모르는 마음〉도 선묵혜자 스님의 에세이집이다. 50여 년에 걸친 수행의 지혜가 녹아 있는 96편의 시와 에세이는 우리의 잠든 눈을 깨우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통찰로 가득하다.

“내 마음도 모르고 네 마음도 모른다. 모르는 마음끼리 서로서로 부딪치고 서로서로 아파한다. 왜 사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른다. 인생은 모르는 마음으로 떠나는 더디고 안타까운 여행이다.” 라는 잠언 속에 펼쳐지는 주옥같은 글들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긴다. 〈모르는 마음〉은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다면’ ‘지금 그대에게 필요한 사람은’ ‘모르는 마음’ 등 총 7장으로 구성돼 있다. 가족과 자연을 소재로 삶에 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 온 화가 오순환이 그림을 그려 마치 책장을 넘기면 그림 엽서 한편 씩을 읽는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선묵혜자 스님의 에세이에는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러면서도 한 구절 한 구절 곱씹게 만드는 지혜가 번뜩인다. “산다는 것은, 비갠 산사를 걸으면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새와 바람과 나무와 한 몸이 되어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일입니다. 홀로 책을 읽거나 창을 바라보며 그리운 이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좋은 인연을 만나서 안부를 묻고 한 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미소를 짓는 일입니다. 이렇듯 산다는 것은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버리는 일입니다.”

또한 스님은 죽음에 대해서도 말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그대를 기억하던 사람이 곁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아니 내가 기억하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이런 이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 많은 사람이 이 참담한 고통에 무너지고 몸부림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입니다. 생즉필멸(生卽必滅), 만물의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죽음조차도 훌훌 놓아버려야 합니다.”라고 조언한다.

욕망에 대한 선묵혜자 스님의 법문에선 고개가 끄덕여 질 정도로 공감하게 만든다. “인간의 욕망이란 게 이렇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욕망과 행복은 언제나 반비례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나는 가장 적은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행복과 친숙해졌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의 고전 〈회남자(淮南子)〉에서도 ‘대지의 곡식을 다 주고 강물을 다 준다 해도, 배를 채우는 것은 한 줌의 곡식이며 갈증을 달래주는 것은 한 사발의 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숨을 부지할 만큼의 재물과 몸을 누일 집 한 채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이 타는 바닷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한편 청담 스님을 은사로 열네 살 때 동진 출가한 스님은 오십여 년 간 오직 수행에 정진하면서도, 대중 불사에도 앞장서서 실천하는 ‘국민스님’으로 불린다. 특히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를 결성, 2006년부터 9년 동안 한국의 명사찰들을 회원들과 함께 순례했는데, 여기에 동참한 신도만도 무려 60여 만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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