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아름다운 사찰④ 진안 마이산 탑사
이갑용 처사, 1885년부터 30여간 쌓아
현존 80여기 돌탑… 강풍에도 끄떡 없어
다섯개 탑 호위받는 천지탑 한쌍 ‘인기’
틈새없이 짜맞춘 정교함에 탄성 연발
마이산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남쪽 산기슭에 있는 마이산 탑사다. 이곳에는 독특한 돌탑이 있다. 이갑용 처사라는 사람이 1885년부터 30여년간 쌓았다고 하는 돌탑인데 비바람에도 100여년간 무너지지 않아 신비감을 준다. 현재 80여기 돌탑이 있는데 태풍이 강타했을 때 웬만한 나무는 뿌리째 뽑혀도 이 돌탑들은 조금씩 흔들렸을 뿐 쓰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2012년에는 전국을 강타한 강풍에도 끄떡없는 돌탑의 신비함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불공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런 영험함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돌탑 앞에 서면 이곳이 인간세계인가, 불국토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외경심이 든다. 경내에 들어서면 온통 돌 천지다. 크기도 높이도 다른 돌탑들이 마이산 아래 탑사 골짜기를 빼곡하게 채웠다. 마치 야외 돌탑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런 높은 탑을 어떻게 쌓아 올렸을까?’ 답을 들어도 설명을 들어도 알 길이 없다. 돌탑을 쌓은 주인공인 이갑용 처사는 효령대군 16대손으로 부친이 세상을 뜨자 16세 나이에 3년 시묘살이를 마치고 전국 명산을 두루 다니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원주의 치악산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다 꿈속에 두 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여 그 후 산들을 돌아다니다 마이산을 찾게 되었다. 꿈에서 본 그곳이었다.
탑사 대웅전 뒤편에 있는 천지탑 한 쌍. 미얀마의 거대 스투파를 연상케 한다. 아무리 거센 강풍이 불어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니 그 모습은 실제 보고도 믿기 어려운 경이로운 자태다. 절로 두 손이 모인다. 오행을 뜻하는 다섯 개 탑의 호위까지 받는 위엄이 있다. 제일 위쪽에서 아래의 모든 탑들을 호령한다. 다듬지 않은 돌을 하나하나 원형으로 쌓아올라가다가 중간에 합쳐졌다. 틈새하나 없이 짜맞춰 정교하고 완벽하다. 보는 이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러댄다. 반면 대웅전 앞쪽의 돌탑들은 외줄로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자연석을 생긴 모양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올렸을 뿐. 언뜻 보면 한줄기 바람에도 금방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하지만 100여년동안 그 어떤 강풍에도 견뎌왔다.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신비의 돌탑이다. 돌탑을 쌓으면서 수많은 신비와 전설, 역사를 담았기 때문이리라. 자연이 만든 걸작이 마이산이라면 이 돌탑들은 인간이 만든 걸작품이다. 탑사를 한바퀴 돌고 나면 놀라움은 의문으로 바뀐다.
누가 왜 이 많은 돌탑들을 세웠을까. 이 탑들은 나라를 위해 마이산으로 모인 기운을 다스리려고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탑사 왼쪽의 암마이봉 절벽도 신비감을 더해주는 볼거리다. 폭격을 맞은 듯 움푹 팬 자국들이 선명하다. 이색적이다. 4월중순 아직은 꽃잎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능소화 한 그루가 이 절벽에 붙어산다. 능소화가 피는 7월~8월이면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모진 비바람에도 꺾이지않는 능소화는 돌탑의 신비를 그대로 닮았다.
마이산 돌탑은 참 풀기 어려운 숙제와 같았다. 그래서 탑을 둘러싼 이견도 많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갑룡 처사가 혼자서 돌탑을 쌓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했다는 것은 이 처사의 장손 이왕선(혜명스님) 씨도 인정하는 바다. 최규영 진안향토사연구소장(前 진안문화원장)은 “사방 80cm의 돌이라면 1,200kg 즉, 1톤이 넘는 무게에 해당하고 이런 무게라면 지렛대로 굴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 올릴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조성시기에 대해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기법상으로 봐도 돌담식 허튼막돌식 쌓기로 축조하였고 정교한 축조법과 시멘트보강 등으로 보아 1900년대 이후로 보인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마이산탑사는 매년 4월 15일 경이면 항상 장관을 이룬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 터널을 이뤘다. 다. 4월 17일인 평일에 방문했는데도 마이산 탑사는 상춘을 즐기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특히 신비의 돌탑 주변에는 사진에 추억을 담아가려는 이들로 붐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