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 불교, ‘현대’의 옷을 입다
1700년 불교, ‘현대’의 옷을 입다
  • 이나은 기자
  • 승인 2014.10.1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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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현대화
▲ 1970년대 중반 이후 도심포교의 원력을 가진 스님들이 개별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도심포교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광덕 스님을 따르는 불광사 신도들은 최근 신축 법당을 준공하고 제2 불광운동을 펼치고 있다.

도심포교 문화·복지 불사
한글의례·템플스테이 등 성과
찬불가로 누구나 부처님 예찬
SNS 시대 맞은 포교론 대두도

요즘 시대는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려울 정도가 됐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부처님 말씀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시시각각 고정됨 없이 변화하고 있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보·통신·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변화의 압력을 받아왔다.

불교에 ‘현대화’라는 개념이 도입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현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불교의 ‘현대화’를 ‘불교를 어떻게 시대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로 정의 내린다 했을 때 불교는 활발하고 폭 넓은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산중불교에 머물렀던 불교가 도심으로 내려와 대형 도심사찰들이 지역 포교를 선도했으며, 한국의 대표 전통문화관광 콘텐츠로 자리매김한 템플스테이의 경우 10년 동안 그 외연을 꾸준히 확대했고, 웰빙·힐링 트렌드의 한 축으로 발전했다. 한글 의례(한글 대장경 역경불사), 현대적 찬불가의 도입과 SNS시대에 맞는 포교 방법론의 대두 등도 불교의 현대화의 성과다. 

도심 포교로 산중불교 이미지 탈피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불교는 산중사찰을 고집하면서 과거의 전통을 유지하는 데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도심포교의 원력을 가진 스님들이 개별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도심포교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던 광덕 스님(1927~1999)은 1974년 불광회를 시작으로 대중 포교지인 월간 <불광>을 창간해 정법 불교에 목마른 대학생들과 불교학자, 직장인들에게 감로수 역할을 해왔다. <불광> 독자들의 열망은 잠실 불광사를 탄생시켰고, 최근 신축법당을 준공한 불광사는 제2 불광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대구·경북지역을 대표하는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회주 우학)는 1992년에 월세 50만원 건물에서 한국불교대학 제1기생 120명을 배출하면서 포교활동을 시작해, 현재는 불교교양 대학을 중심으로 건평 2000평 7층 규모에 재적신도 8만명이 넘는 대형 사찰로 거듭났다.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도 1985년 종로구 가회동에서 천막법당과 가건물법당을 짓고 어렵게 포교를 시작했다. 이후 양재동으로 옮겨 건평 2200평 지하2층 지상7층 규모의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 15개 지원과 해외 4개 지원에서 10만 명이 넘는 신도가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 1984년 서울 서초동 상가에 있는 28평 작은 공간에서 포교를 시작한 능인선원은 지상 3층, 지하 5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을 갖추고 연건평 4천평에 달하는 현대식 복합건물로 사회복지시설도 갖춘 도량으로 성장했다. 1천여개가 넘는 가정법회와 25만 여명의 신도는 능인선원의 성장 동력 기반이 됐다.

안양 한마음선원도 1972년 경기도 안양시에 본원을 창건한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해와 1991년부터 현재 15개 국내지원과 10개 해외 지원을 개원한 대형 사찰로 거듭났다.

안국선원 또한 1989년부터 약 20여년 동안 선원장 수불 스님이 부살, 서울, 창원 등에 안국선원을 열어 2만여 제자를 지도하면서 대중포교에 성공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도심사찰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산중사찰로 인식되던 불교의 이미지를 벗고 스님들이 직접 도시로 내려와 전력을 다해 포교를 했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신도들을 교육시키고 신도들은 주체적으로 신행단체에 소속돼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또한 사찰들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문화·사회복지활동을 펼침으로써 도심사찰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의식·경전 한글화로 현대화 이정표 세워
과거 한문이 중심이 됐던 시대를 거쳐 오며 대부분의 경전과 불서가 한문으로 만들어져 있어 한국불교는 현대화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동국역경원은 2001년 해인사 대장경의 한문 틀을 벗기고 317권의 한글경전으로 대장경을 탈바꿈시켰다.

모든 경전을 한글로 옮긴 한글완역본 완간은 한국불교 현대화에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한글대장경의 전산화도 이루어져 일반 대중이 인터넷을 통해 한국불교전적을 더 편리하게 검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1994년 종단개혁이 일어나면서 불교의례의식 한글화 작업도 본격 추진됐다.

<통일법요집>과 <한글법요집> 등을 편찬한 조계종은 최근 표준의례로 공포한 한글의례문 <천수경>과 한글반야심경, 칠정례를 책과 CD로 제작해 전국 사찰 및 타종단 사찰에 보급해 불교 현대화를 꾀하고 있다. 그 결과 일상 법회에서 삼귀의와 사홍서원에 이어 <반야심경>까지 한글화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과 단체들이 아직도 한문투의 불교의식, 경전독송을 진행하고 있어 한글 의례가 100% 대중화 됐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이다.

부처님 말씀 쉽게 노래로   
1920년대 초 사찰령이 내려진 뒤 용성 스님과 만해 스님은 조선불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불교개혁운동에 나섰다.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고, 복잡한 전통예불의식을 과감하게 고쳤다. 이 과정에서 누구나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의 필요성을 느껴 용성 스님은 직접 찬불가를 작사·작곡을 했다.

그렇게 해서 1927년 찬불가 운동이 시작됐고, 1960년대 운문 스님이 서울 조계사에 어린이 법회를 창립해 가사를 짓고 작곡가에게 작품을 의뢰하면서 찬불가는 급성장했다. 1970년대는 찬불가의 용어가 일반화되면서 조계종이 주최한 찬불가 공모를 통해 최영철의 ‘삼귀의’와 ‘사홍서원’이 탄생하면서 찬불가가 활성화 된다.

그러나 찬불가가 발전된 것에 비해 소화해줄만한 전문합창단이나 연주단이 부족한 것은 찬불가 발전의 취약점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로 남아있다.

OECD 세계 문화관광 상품 선정
2002년 김천 직지사에서 주한외교사절단 5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사찰체험은 현재 2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체험한 ‘템플스테이’의 첫 행사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도입된 템플스테이는 매년 참가자가 30% 이상 증가하며 성장, 200만 명에 달하는 내·외국인이 체험했다. 2009년 OECD는 ‘성공적인 5대 세계 문화 관광 상품’중 하나로 템플스테이를 선정하기도 했다.

2002년 당시 10여개 뿐이던 참여사찰은 현재 120여 사찰이 한국전통문화를 알리는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지난 9월 UN WTO 관광과 성지순례 국제회의에 종교관광의 우수 사례로 참가해 템플스테이의 국제적 위상을 재확인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스님과 소통
스마트폰의 상용화는 자연스레 불교의 현대화를 가져왔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포교방편으로 활용하는 스님과 불교계 단체들이 늘게 된 것이다. 스님들은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SNS로 신도들에게 맞춤형 법문을 펼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법륜·혜민 스님이다. 혜민 스님은 트위터를 통해 종교와 인종, 가치관을 뛰어넘어 인생의 잠언을 들려주었고, 법륜 스님은 ‘법륜 스님의 희망편지’란 이름으로 125만명이 넘는 카카오스토리 구독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국민 멘토’로 자리잡게 됐다.

부산 혜원정사 주지 원허 스님은 밴드와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아침마다 경전이나 어록, 사진을 올린다. 2000여 명에 달하는 신도들은 스님의 ‘아침편지’를 보고 감사의 댓글을 올린다. 세월호 참사로 최근까지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로해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도 SNS를 통해 현지 소식을 알려주며 불교계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불교의 현대화를 위한 제언
“불교 현대화…스님·사찰이 함께해야”

▲ (사진왼쪽부터) 법현 스님(열린선원장) 김응철 교수(중앙승가대)

도심 불교 및 템플스테이가 폭 넓게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명암도 반드시 있다.

도심의 대형 사찰을 제외하고는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사찰 활성화가 저조한 상황이며, 신도시 포교는 기독교에 잠식돼 거의 손을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는 “신도시 지역에 거점사찰을 건립하는 것이 가장 일차적이고 효과적인 포교방법이다. 그러나 거점 사찰 건립에는 많은 돈이 투입 돼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된다”며 “이런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교문화원 등과 같은 소규모 시설을 바탕으로 지역조직을 활성화 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종단 차원에서 포교발전방향을 수립해 모든 사찰이 도심 포교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은 “대형 사찰의 신도수 확보는 작은 사찰의 신도들이 옮겨간 것일 뿐 무신자나 타종교인들이 옮겨간 것이 아니라는 데서 별 의미가 없다”며 “대신 어린이, 학생, 청년, 가족법회, 문화예술법회 등 계층과 직능법회의 활성화를 목표로 모든 사찰이 법회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템플스테이는 불교 전통문화 컨텐츠를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템플스테이를 제외하고는 불교문화를 대중에게 쉽게 알릴만한 방법이 마땅히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은 불교 전통문화 프로그램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법현 스님은 “우선 스님들이 불교전통문화를 이해하는 교육과정을 도입해야 한다. 청규와 의례집을 중심으로 하고 근래에 나온 불교문화 책자를 중심으로 공통의 교재를 마련하고 교육과정을 통해 기본교육을 실시한 뒤에 보수교육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개신교와 천주교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종교교육의 과반 이상의 퍼센트를 의식과 문화 프로그램이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생통과 의례와 불교의 통과의례를 세분화해서 사찰법회를 중심으로 정착,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응철 교수는 “문화 지도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불교전통 문화는 확산될 수 있다. 전통문화 교육에 필요한 민간자격증제 도입을 통해 전문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글 의례의 대중화·저변화 속도가 더딘 것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한문으로 다 외우고 있는 불자들은 굳이 한글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스님부터 숙지하고 의례 봉행 때 지속하면 언젠가는 해결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법현 스님은 “정립한 의식문과 음성 및 동영상 자료를 사찰과 각급 신행단체에 널리 보급해서 활동하도록 도와주고, 각급 보수교육에서 활용법을 지도해야 한다”며 “법요집에 구분된 역할을 수록해 누구나 법회를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불교텔레비전과 불교방송 등 각 매체들의 활용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법현 스님과 김응철 교수는 법회의 의식을 현대화해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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