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가리지 않고 계맥의 정통성 이어
국적 가리지 않고 계맥의 정통성 이어
  • 조준호 교수
  • 승인 2013.06.0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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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미얀마의 상좌불교 전래

버강은 ‘파고다의 도시’로 알려질 만큼 수많은 불탑들이 있다. 버강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드르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유적지로 꼽힌다. 버강 왕조 당시 상좌불교가 중흥하며 미얀마에 자리 잡혔다.
고대 미얀마의 불교 전래에 대한 역사적 사실로 논의될 수 있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아소카 왕의 포교사 파견을 들 수 있다.

아소카 비문과 빠알리어로 된 여러 스리랑카 불교역사서에 의하면 인도 아소카 왕은 인도 아대륙과 인도 외 여러 지역에 포교사를 파견했다. 아소카 왕의 즉위연대는 B.C.E. 268년으로 정확한 연대가 밝혀진 것은 인도 고대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스리랑카 불교역사서에는 아소카 왕이 포교사를 파견한 곳 중 수반나부미(Suvannabhumi)라는 지역을 표기하고 있다. 수반나부미는 ‘황금의 땅’이란 의미이다. 후대 ‘황금불탑의 나라’로 불린 미얀마와도 부합된다.
그동안 이 지역이 어디인지에 대해 학계에서는 여러 주장이 있었다. 최근 이 지역이 바로 현재 양곤 등이 포함된 남부 미얀마 일대라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이 당시 남부 미얀마를 지배하던 종족은 ‘버마족’이 아니라 ‘몬(Mon)족’이었다. 현재 남부 미얀마에 몬 주(Mon State)가 있는 것도 그 이유다. ‘몬족’은 ‘버마족’과는 여러 신체적인 특징과 문화적 배경이 달랐다. 이들은 라만나데사(Ramannadesa)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수도 이름이 타통(Thaton)이었다. 이 타통이 바로 아소카왕이 포교사를 파견한 수반나부미라는 것이다.

몬족은 미얀마 지역을 넘어 태국 등 동남아 여러 지역에 분포해 있었으며 오래전부터 국제교류를 진행한 수준 높은 문화민족이었다. 몬족은 동인도나 남인도 그리고 스리랑카와 해로를 통한 교류를 진행했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아대륙과 맞닿아 있는 미얀마는 일찍부터 불교가 전해졌다. 미얀마의 불교 전래는 석가족과 따뿟사와 발리까의 이야기 등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육로를 통해 진행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육로보다는 해로가 여러 가지로 더 용이했다. 이러한 해로로 인도와 동남아가 이미 기원전부터 무역과 함께 민족의 이동 그리고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행해져 왔다. 인도의 영향은 미얀마를 넘어 라오스나 캄보디아 그리고 태국 등 광범위한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상좌ㆍ대승ㆍ밀교 섞여 전해져

인도문화에는 바라문 힌두교를 비롯해 초기불교의 여러 부파, 대승불교 그리고 밀교 등이 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여러 종교 문화가 혼재돼 전래된 상황은 미얀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남아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남아있는 동남아의 유적과 유물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여실히 증명된다.

특히 고대 미얀마에서는 상좌불교가 주요종교로 공인되기 전 대승불교와 밀교가 함께 신봉됐다. 고대 미얀마 유적에서는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의 여러 보살상과 밀교의 따라(Tara)상이 함께 출토되고 있다. 나아가 힌두교 등 여러 종교문화도 공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다문화 상황은 11세기경까지 계속된다. 그러던 것이 점차 상좌불교가 선택됐다. 이는 불교역사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왜, 그리고 어떻게 상좌불교가 대승불교보다 경쟁력을 가지고 현재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이는 미얀마 뿐만이 아니다. 중국 영향이 강력한 베트남을 제외한 동남아 대부분 나라들이 대승불교가 함께 전래됐지만 최종적으로 상좌불교를 선택했고 약 10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일반사회에 매우 뿌리깊이 정착됐다.

현 버마계의 또 다른 선주민으로는 몬족 외에도 ‘퓨(Pyu)족’이 꼽힌다. 중국에서 퓨는 ‘표(驃)’라는 말로도 알려져 있다. 퓨족은 몬족과 함께 에야워디 강 하류에 나라를 세웠다.

대략 B.C.E. 200년에서 C.E. 900년 정도의 기간으로 본다. 7~8세기경에 이 나라를 방문했던 중국인들의 문헌에는 국왕이 적극적으로 불교를 보호하고 장려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문헌들은 성의 네 모퉁이마다의 불탑, 금은으로 장엄했으며 수많은 사찰에 사람들은 두터운 불심을 지녔다고 전하고 있다. 또 불교 영향으로 퓨족이 온화한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생명을 귀히 여겨 함부로 살생하지 않는다고도 전하고 있다.

당시 퓨족은 남녀 모두 7~10살 가량에 모두 삭발하고 절에 들어가 불교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은 현재 미얀마 불교문화인 신쀼의식과도 닮았다.

당시 미얀마 곳곳에는 이미 인도 등과의 교역으로 불교문화가 형성되어 내려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버강에 위치한 마누하 사원의 거대한 와불상.
버강왕조 거치며 상좌불교 중흥

미얀마에 상좌불교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1세기 경 버강(Bagan)왕조를 거치면서다. 버강왕조는 미얀마 최초의 통일국가로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성세를 누렸다. 버강왕조의 수도였던 버강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드르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꼽힐 정도로 수많은 불탑들이 있다. 버강은 ‘파고다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는데 파고다는 약 2500여 개로 추산된다. 지금도 수많은 파고다가 도시 전체에 산재해 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마치 숲과 같은 버강의 파고다를 둘러보면 절로 미얀마인들의 지극한 불심이 느껴진다. 국토를 불국토화하려는 신앙심은 신라시대 불국토 사상의 상징이 된 경주 남산을 떠오르게 한다. 안타깝게도 버강왕조는 1287년 몽고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하지만 당시 주요 불교문화유적은 현재도 우리를 친절하게 맞이하며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버강왕조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아노라타 왕이 몬족 나라의 수도인 타통을 공격해 함락시킨 것이 계기다. 통일을 꿈꾸던 버강왕조에는 국가 기틀에 구심점이 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버강왕조의 아노라타 왕은 불교로 국가 구심점을 삼고자 했다. 아노라타 왕은 몬족 마누하 왕에게 불교경전과 승려의 파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마누하 왕은 이를 거절하고 아노라타 왕은 타통을 침공해 함락시킨다.

이 때 버강왕조는 정책적으로 몬족 승려를 데려오고 빠알리 경전 등을 보급했다. 버강왕조 자문을 몬족 출신 ‘신 아라한(Shin Arahan)’ 스님이 맡을 정도였다.

‘버마계’의 버강왕조가 처음 상좌불교를 수용하였던 것은 전적으로 몬족의 불교문화였던 것이다. 다시 왕은 적극적으로 스리랑카에 몬족 출신 불교 사절단을 파견해 불교 경전과 주석서 등을 구해 오게 하여 연구하도록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버강왕조 당시 빠알리어 공부와 경전 연구 등 교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현재 미얀마 불교의 특징은 같은 상좌불교권에서도 비교적 아비달마 공부와 경전어인 빠알리 문법학 연구의 비중이 높다. 이는 인도에 유학 온 같은 상좌불교국 스님들 간에도 미얀마 출신 스님들이 아비달마와 빠알리 문법학에 특출한 데서 드러난다. 이러한 미얀마 불교전통은 이미 12세기 때 확립된 것이다. 800년이라는 불교 공부 전통이 현재까지 살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까리야니(Kalyani) 시마(sima : 界) 비문이 있는 사원에서 아상가 교수
버고왕조 당시 스리랑카와 불교 교류

미얀마 불교사에 있어 주목할 만한 일은 15세기 경 버고(Bugo) 왕조 시대의 담마제디(dhammazedi)왕 때다. 담마제디 왕은 스리랑카로 비구 장로들을 파견해 스리랑카 대사파(大寺派 : Mahavihara)로부터 수계법을 배워오게 했다. 이는 승단을 다시 쇄신시키기 위함이었다. 1476년에 미얀마 비구와 사미들이 해로로 스리랑카에 도착해 수계를 받게 된다. 이는 당시에 잘못 행해지고 있던 미얀마 수계법과 계율 수지를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한다. 이로 인해 미얀마에서는 사적인 수계나 비밀수계 등이 엄하게 금해졌으며 율장에 기반한 구족계 수계가 이뤄지게 된다. 이 때 스리랑카에서 들여온 수계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은 비문으로도 남아 있다. 까리야니(Kalyani) 시마(sima : 界) 비문이 그것이다.

2012년 12월에 미얀마에서 개최한 ‘국제불교문화유산 학술대회’ 참석 차 이 유적지를 방문했다. 마침 스리랑카 출신 초기불교 전공자인 아상가 교수가 유적지 탐방을 함께 했다. 이른 새벽 택시를 대절해 까리야니에 도착했다. 아상가 교수의 설명으로 이 비문의 역사적 의미를 알게 됐지만 이런 중요한 유적이 거의 방치돼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도굴꾼에 의해 파손이 돼 비문이 쓰인 큰 규모의 반석이 여러덩이로 여기저기 깨져 마치 돌무더기처럼 쌓여 있었다. 녹슨 철조망 너머로 깨진 비석에 쓰인 비문은 지금도 역력하게 보였다. 한참을 철조망 주위를 돌면서 엄청난 규모에 대한 놀라움과 열악한 보존상태에 대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필자는 아상가 교수에게 이곳을 스리랑카와 미얀마 정부가 공동으로 보존대책을 세워 양국이 불교 교류 전통의 의미를 기념하는 유적지로 가꿀 수 있도록 제안했다.

아난다 사원에서의 보수작업 모습
법난 때 서로 도와가며 승가 계맥 이어

스리랑카와 동남아 상좌부 불교권의 역사적인 교섭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도로부터 유래하는 계맥을 중히 여기며 상호 소통해왔다는 점이다. 상좌불교에서는 계맥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하는 것이 바로 불교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좌불교는 사방승가(四方僧伽) 의식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상호교류하며 스스로 계맥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이 점은 고대 한국불교와 중국불교에서 계맥이 불분명한 점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미얀마 상좌불교의 계율 전통을 보면 1192년 미얀마 사빠다 스님이 스리랑카에서 계를 받고 미얀마에 스리랑카 상가를 형성했다. 19세기 초에는 스리랑카 스님 일군이 미얀마에서 계를 받고 되돌아가기도 했다.
이후 외침이나 내분 등으로 자국 불교가 쇠퇴하거나 타락해 정화시키려 할 때는 다른 상좌불교국으로 지원받거나, 불교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활동을 전개해 불법이 끊이지 않고 계승되도록 서로 도왔다.

이런 상좌불교권의 상호 소통은 교리와 계율 그리고 실천의 문제에서 나라가 다르더라도 같은 교단이라는 단일성을 지니게 했다. 지금도 미얀마나 스리랑카 사찰이나 수행처에서는 국적이 다른 스님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되어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제는 대승불교권 스님들은 같이 포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승불교권 스님들은 뒷켠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같은 불교이지만 현전승가로 포살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일이 불교사에 있어 그리고 교단사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대승불교 흥기 이래 초기불교권과 아직도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상존하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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