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상좌불교 경시 풍조 개선돼야 동남아·동아시아 불교 소통 필요 미얀마 불교정체성 지키는데 도움줘야 불교공부를 하면서 늘 생각해 본다. 역사적으로 불교국가의 롤 모델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였는가? 마찬가지로 현재 살아있는 불교국가로서의 롤 모델을 찾는다면 어느 나라인가? 한국인가? 일본 또는 중국인가? 아니면 인도나 스리랑카 아니면 태국인가? 정치적인 상황과 별개로 현재로선 미얀마를 들고 싶다. 일반적으로 상좌불교권에서도 미얀마는 인도불교의 옛 전통을 오늘날까지 잘 간직하고 있는 순수성과 전통적 보수성이 많이 거론된다. 미얀마의 양곤대학에 객원교수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이은구 교수는 미얀마는 “아직도 초기불교의 순수한 모습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나라”로 평가하고 있다. 필자 또한 초기불교전공자
지리적으로 인도가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는 루트의 초입이 바로 미얀마이다. 불교 발상지인 인도 아대륙과 맞닿아 있는 미얀마는 일찍부터 불교를 포함한 인도문화가 전해졌다. 인도와 미얀마 간의 내왕은 석가족의 미얀마 이주전설과 쉐다곤 파고다 건립 전설 등에서 시사하듯 육로를 통해 서로 내왕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과거에는 육로보다는 해로가 여러 가지로 더 용이했다. 인도 아대륙과 미얀마 사이에는 벵골만이라는 바다를 통해서이다. 이러한 해로로 인도와 동남아가 이미 기원전부터 무역과 함께 민족의 이동 그리고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있어왔다. 인도의 영향은 미얀마를 거쳐 라오스나 캄보디아 그리고 태국 등 광범위한 지역에까지 이르렀다. 미얀마는 몬순의 열대지방으로 동아시아보다는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와 자연환경적으로
인도, ‘불교코드’로 중국 견제 정부지원 하에 국제불교대회 열어 티벳 달라이라마 위상 강화 개입 불교기원 활용해 ‘동방정책’ 펼쳐 중국 대응 동남아 공략에 사활 중국의 외교전략은 미얀마 등지의 인접국에 대한 종교적 문화적 정서에 바탕한 실용주의 전략(diplomatic pragmatism) 구사로 볼 수 있다. 중국의 불교인구는 많게는 4억 명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세계 불교인구에 포함되지 않은 인구집계다. 중국은 문화혁명 당시 파괴됐던 유교와 불교 등 종교문화를 부흥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처음 중국은 자국에서 기원한 유교를 중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교를 중흥하려는 움직임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유교보다는 불교가 아시아 국가에서
인도행 구법길에 미얀마 거론 불교문화 통해 우방국 관계 1789년부터 교류, ‘종교 결연’ 미얀마 화교 경제적 영향 막대 중국도 ‘상좌불교’ 배우기 열풍 수행센터 내 중국인 비중 1,2위 미얀마에는 중국계 사람들이 많다. 미얀마와 중국은 인접국가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미얀마로의 이민은 시작되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 한 때 중국의 구법승들이 인도로 내왕하는 통로로 미얀마를 이용했다. 중국의 구법승들은 사천성과 운남성 그리고 벵골만을 거쳐 북인도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옛 선지식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현재 유용한데 북벵골만과 미얀마 그리고 중국을 연결하는 약 1100km의 송유관이 설치돼있다. 현재 미얀마에는 어디에나 중국계
1950년 종교성 설립하며 불교 중흥책 펼쳐 전통계승·불교 진흥과 정화 주목적 정부지원액 등 다른종교에 비해 압도적 경전 번역과 서적편찬 등 정부가 담당 기독교는 제국주의 동일인식, 선교효과 미미 늘어나는 이슬람에 불교도 압박취해… 갈등 미얀마족 기독교 개종 소수민족 멸시 승가는 군부 외 전국조직망 지닌 유일 단체 1. 정부 기구로서 종교성 정부 기구로서 종교성(宗敎省 : Ministry of Religious Affairs)이 설치된 나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 국가들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터키, 오만 그리고 미얀마와 인접한 방글라데시이다. 또한 이슬람 국가들과 긴장 속에 있는 이스라엘도 종교성이 있다. 불교국 가운데는 미얀마와 스리랑카를 들 수 있다. 태국의 경우는 문
네 윈, 쿠테타 이후 26년 군부통치 불교국교화 철폐 및 불교지원 중단 정부 주도의 불교통치 진행에 승단 반발 회유책으로 국립 불교대학 건립하기도 수치 여사, 1988년 대중연설로 민주화 앞장 가택연금시 위빠사나 수행하며 마음다스려 위나야 스님 가르침 하에 자비실천 서원 채식 등 불교적 삶 국민들에게 몸소 보여줘 1962년 쿠테타로 인하여 우 누의 시대는 마감하고 네 윈의 시대가 시작됐다. 네 윈(Ne Win :1911~2002)은 이후 1988년 7월 77세의 나이로 퇴진하기까지 26년간에 걸쳐 미얀마에 군부 통치했다. 네 윈은 우 누와 함께 미얀마의 현대 정치사에 있어 가장 유명한 두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미얀마 중부의 프롬 지방 출신으로 1941년 그의 나이 30세에 아웅
1947년 불교 국교화 첫 논의 아웅산 사회혼란 이유로 반대 1948년 기독교인 군인 반란 발생 불교도 주축으로 국교화운동 일어나 우누 수상 초기 유보입장 견지 1960년 총선에서 불교국교화 공약 타종교 역배려에 불교도 반발 불안 정세 속에 1962년 네윈 쿠데타 일으켜 인류사에서 근현대는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종교국가에서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세속주의(secularism) 사회로 나아간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에서는 종교국가 체제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특히 중동의 많은 나라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종교국가로 남아있다. 물론 터키, 시리아, 이집트, 튀니지 그리고 모로코 등은 이슬람 종교가 지배적이지만 세속주의를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한 나라에서 특정종교가 지배적일 경우 헌
1954년부터 1956년까지 2년간 진행 반열반 2500년 맞아 2500명 운집 인도·네팔·베트남·일본 스님들 참여 30여 개국 재가자 동참·25개국 지원 2005년 6차 결집 결과물 로마자화 등 미얀마·스리랑카·태국·몽골어로 번역 2007년 40권 문헌으로 정리해 전세계 배포 전세계 불교계에 중요 근간으로 영향 우누 정부 체제에서의 치적 중 하나는 제6차 결집(The Sixth Great Council)이다. 제6차 결집은 미얀마 뿐만이 아니라 세계 불교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전의 불교 삼장의 결집이 인도나 스리랑카에 한정하여 이루어졌던 것에 반해 제6차 결집은 미얀마를 중심으로 세계불교권이 참여한 대불사(大佛事)이기 때문이다. 이 결집의 성과는 미얀마를 넘어 현재까지 전
독립 이후 초대수상으로 선출된 우누는 미얀마를 불교와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가 조화를 이룬 국가로 이끌려고 하였다. 그는 특히 불교를 중심으로 자유와 평화 그리고 행복이 넘치는 사회를 추구하려는 정책을 펼치려 하였다. 그는 국가차원에서 다방면으로 불교 진흥책을 추진했는데 그 중 종교성의 설치와 불교의 국교화는 세계불교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업적으로 꼽을 수 있다. #정부공인 기관 종교성 설치 우누 정부는 1950년 정부기관으로 종교성(宗敎省: Ministry of Religious Affairs)을 설치한다. 미얀마 헌법 제21조 1항에는 ‘국가는 연방의 최대 다수가 신봉하는 종교로서 불교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러한 헌법정신에 걸맞게 불교를 진흥시키기 위한 기구가 필요했다. 미얀
英·日 틈바구니서 독립 이뤄 아웅 산 ‘정교분리가 종교 순수 지켜’ 초대 수상 우 누, 불교 사회주의 주창 불교 기반한 평화 및 화합 연대 강조 미얀마 청년불교도연맹(YMBA)은 1917년과 1919년 미얀마의 자치권을 얻기 위해 인도와 영국에 가서 활동하였으나 주목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인도에 자치제를 허용한 반면에 미얀마에 허용하지 않은 영국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불만은 더욱 고조됐다. 미얀마 민족주의 운동은 불교가 앞장 선 종교적 투쟁보다는 종교와 분리된 정치적 투쟁으로 점차 선회했다. 1930년대 말기에 이르면 스님들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운동이 점차 젊은 학생들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옮겨간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웅 산’을 비롯한 미얀마 독립운동가들은 영국식
영국식민정부, 조직체로서 승가 견제 불교 주축 독립 운동 민족주의 발전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의 선례로 남아 최근 미얀마 서부에 이어 중부지역에서도 불교와 무슬림 간의 폭동이 일어나 세계 주요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미얀마 서부에서는 200여 명이 죽고 14만 명의 무슬림이 거주지를 잃었다. 최근 중부에서는 약 44명이 사망했다. 중부는 영국지배기간에 인도로부터 이주한 무슬림들이 많다. 미얀마에서 반무슬림 현상은 영국식민지배 기간 동안에 배양된 불교 중심의 민족주의와 관련이 있다. 미얀마를 여행하는 사람이나 연구하는 학자들은 불교와 미얀마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특히 학자들은 불교가 깊이 생활화돼 있는 미얀마에 대해 놀라움을 표한다. 저명한 미얀마 연구자인 실버스타인 교수는 “미얀
영국 지배로 불교 교단 분열 1895년 종정 입적후 9년간 공백 승가연합총회 발족해 자체 교육 사찰에서 대중교육 토대 만들어 2012년 12월 중순 미얀마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미얀마 원로인 Myo Myint 박사의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영국식민기간의 불교’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번 호에서는 그의 발표논문을 부분적으로 번역하고 발췌해 소개한다. Myo Myint 박사는 미얀마에서 저명한 원로학자다. 미얀마 정부 종교성의 중요 직책을 역임했으며 세계불교학술대회를 조직하고 이끌기도 한 이다. 필자는 2012년 9월 말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에서 열린 인도 국제불교학술대회에서 미얀마 대표로 참가한 그를 만났다. 사르나트의 호텔에서 한 노인이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긴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영국 식민 통치 전략은 민족분열 선교사 동원 소수부족 기독교 개종 공공교육서 불교 교육 금지 시켜 불교지도자 나서 반영투쟁운동 전개 스님들 옥고에 미얀마 국민 한마음 현대 상좌불교 사회 영향력 여기서 기인 세 번에 걸친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미얀마는 1886년 1월 1일 영국령으로 정식 편입된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미얀마는 다시 당시 영국령이었던 인도의 한 주(州)에 속하게 됐다. 영국의 전형적인 식민지배 전략은 ‘분할통치(divide &rule)’다. 미얀마에서는 이런 통치 전략이 지배민족이었던 ‘버마’족과 산간 및 주변부 부족들을 나누어 통치하는 방법으로 전개됐다. 영국은 다수인 ‘버마’족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주변부의 친(Chin)족, 까친(Kachin)족, 꺼인(Kayin 또
몽고군이 1310년 경 물러간 후 미얀마는 중북부 샨족(Shan)의 잉야(Innwa)왕조와 남부 버고 왕조의 두 개 왕조가 대립한다. 샨족은 현재도 미얀마 인구의 9%를 차지하고 있다. 잉야 왕조는 수계작법을 확립한 버고 왕조와 마찬가지로 불교를 수용하고 보호와 진흥에 열심히 나섰다. 잉야왕조의 불교수용은 상좌불교가 미얀마 북부 산악지대까지 멀리 전파되는 계기가 됐다. 잉야 왕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미얀마인에 의한 불교 저작활동이 활발히 이뤄진 것이다. 초기불교 전통의 경전에 바탕한 이야기나 논서에 대한 주석서, 그리고 초기경전어인 빠알리어에 대한 문법서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논서에 대한 주석서로는 마하아리야왐사(Maharyavamsa) 스님에 의한 ‘Abhidhammatt havibhav
고대 미얀마의 불교 전래에 대한 역사적 사실로 논의될 수 있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아소카 왕의 포교사 파견을 들 수 있다. 아소카 비문과 빠알리어로 된 여러 스리랑카 불교역사서에 의하면 인도 아소카 왕은 인도 아대륙과 인도 외 여러 지역에 포교사를 파견했다. 아소카 왕의 즉위연대는 B.C.E. 268년으로 정확한 연대가 밝혀진 것은 인도 고대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스리랑카 불교역사서에는 아소카 왕이 포교사를 파견한 곳 중 수반나부미(Suvannabhumi)라는 지역을 표기하고 있다. 수반나부미는 ‘황금의 땅’이란 의미이다. 후대 ‘황금불탑의 나라’로 불린 미얀마와도 부합된다. 그동안 이 지역이 어디인지에 대해 학계에서는 여러 주장이 있었다. 최근 이 지역이 바로 현재 양곤 등이 포함된 남부 미얀마
인도력 두번째 달로 음력 4월 굳어져 연등불 수기일 의미로 봉축 연등 달아 탄생보다 성도 의미 기려 ‘보리수 의식’ 보리수 물주며 불법 번창 기원 불교가 전해진 모든 나라에서는 우리와 같이 ‘부처님 오신날’을 축제로 지낸다. 특히 불교인구가 많은 스리랑카와 미얀마, 태국 등은 부처님오신날을 연중 가장 큰 축제일로 맞이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부처님오신날을 ‘사월초파일’이라 했다. 음력의 달과 날로 부처님오신날을 명시한 것이다. 이는 인도에서도 그리고 미얀마를 포함한 동남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얀마의 경우 미얀마력(歷)으로 두 번째 달의 보름이 부처님오신날이다. 양력으로 5월 24일에 해당한다. 미얀마력으로 두 번째 달은 ‘거손’(Kason)이라 불린다. 그래서 두 번째 달의 이름인 ‘거손’은 우리
미얀마족은 ‘티벳-버마계’ 인종 다민족 국가 통합에 불교 큰 힘 구법승 미얀마 거쳐 인도로 2005년 양곤서 내삐도로 수도 옮겨 1) 티벳-버마계 미얀마 사람들 인도 수도인 델리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델리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차츰 이들의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 그리고 신체구조를 통해 출신국을 구별할 수 있게 됐다. 미얀마에서 지내는 동안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미얀마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먼저 든 생각은 미얀마 사람들이 티벳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점심공양을 위해 줄을 맞춰 서있는 스님들의 골격이나 걷는 모습에서 인도에 있는 티벳 스님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미얀마 사람들과 티벳 사람들은 기질 또한 강건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인종 계통을 살펴보니 이러한 느낌이 맞아
지계와 교학 공부에 스님들 자부심 가져 불교가 삶 깊숙이 문화로 살아 있는 나라 미얀마 최고의 해외수출품은 ‘위빠사나’ ‘초기불교 지관 문제’ 논문발표 계기 미얀마 선원서 100여일 수행 정진 “양국 불교 비교진단·발전 모색을” ? 필자가 처음 미얀마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미얀마가 아니라 인도였다. 1990년도 델리대의 석사과정에서 미얀마로부터 유학 온 두 스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를 통해서이다. 이후 계속해서 여러 미얀마스님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 보드가야의 미얀마 절에도 머물러 보고 미얀마 스님들과 여행도 해 보았다. 그러면서 차츰 알게 된 점이 있었다. 다른 나라 스님들에 비해 미얀마 스님들은 자긍심 또는 자부심이 강하다는 점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자부심이 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