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북한산 우이령길 그리고 석굴암

가을꽃과 봄꽃은 분명 달랐다. 봄꽃은 햇살 속에서 보았고, 가을꽃은 바람 속에서 본다. 봄꽃은 이름을 불렀고, 가을꽃은 이름을 찾아야 한다. 봄꽃은 피어났고, 가을꽃은 나타났다. 철새처럼 나타난 가을꽃들이 길을 알리고 있다. 10월 15일 북한산 둘레길 21구간 우이령길을 걸었다. 그 길엔 쉽게 갈 수 없는 절, 석굴암이 있다.

오봉산 관음암 중턱에 자리잡은 석굴암, 10월 20일 예정된 단풍음악제 준비로 도량이 분주하다. 인근 군부대 장병들이 울력을 나와 음악제 준비를 돕고 있다.
우이령(소귀고개)길은 교현탐방지원센터에서 우이탐방지원센터까지 걷는 길로 총 길이는 6.8km이고 모두 걷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시간 30분이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1번 출구)에서 버스 34번, 704번을 타고 석굴암 입구에서 내리면 길을 시작할 수 있다. 우이령길은 1968년 북한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사건으로 인해 민간인의 출입이 전면 금지 되었다가 2009년 7월 탐방 예약제를 실시하면서 개방된 길로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길이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일일 예약 인원을 10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65세 이상은 전화로 예약할 수 있다. 예약확인증과 신분증을 가지고 가야 한다. 1일 전까지 예약을 실시한 탐방객을 대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출입이 허용되고, 탐방객은 오후 4시까지 하산해야 한다.

“탕탕, 탕탕탕….” 우이령길엔 군부대가 많다. 가을을 머금기 시작한 숲이 차가운 총탄을 받아내고 있다. 길은 잘 다진 흙길이어서 보행감이 좋다. 길의 한 쪽은 군부대의 담장이 따라오고, 또 한 쪽은 숲이 따라온다. 길에 들어서서 한 동안은 총성을 들으며 걸어야 한다. 산새소리를 밀어내고 들려오는 총성이 멀리 또 하나의 국토가 있음을 알린다. 약 3km쯤 걸으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둘레길을 벗어나 왼쪽으로 석굴암 가는 길이다. 석굴암까지 오르는 약 200m 길은 경사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총성이 멀어져 있었다. 산새소리가 들려온다. 풍경소리도 들려온다. 석굴암이다. 관음봉이 흰 구름을 이고, 일주문은 관음봉을 이고 있다.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는 도봉산. 서쪽 다섯 봉우리, 오봉(五峰)의 서남쪽에 있는 관음봉 중턱에 자리잡은 석굴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공민왕 당시 왕사였던 나옹 화상이 3년 간 머물던 곳이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도량을 1954년부터 초안 스님이 수습했다. 복원불사는 기와 한 장 쌀 한 말을 일일이 걸어서 지고 날라야 했다. 불사를 이어받은 현 주지 도일 스님과 신도들의 지극정성으로 지금의 석굴암이 섰다. 산기슭엔 서로의 어깨를 짚은 당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연등을 두르고 한 쪽에 물러서 있는 대웅전. 전쟁의 화마를 견디며 살아남은 나한전(석굴). 나한전 바위 지붕 위에 핀 넝쿨 단풍. 가을 햇빛에 나와 있는 장독들. 장독대 위에 범종각. 범종각 어깨를 짚고 선 삼성각. 그 위에 오봉산. 파란 가을 하늘. 그 넓은 하늘을 품은 작은 마당. 주지 스님(도일)이 마당을 거닌다. 석굴암은 10월 20일 단풍음악제를 연다. 주지 스님은 음악제 준비로 분주하다. 준비가 잘 되어가는 지 여쭙자 환하게 웃으신다. 꺼진 도량을 살려낸 스님에겐 큰일도 아닐 것이다. 손수 음악제 무대를 점검한다. 군부대 장병들이 울력을 나왔다. 손을 놓고 잠시 쉬는 시간. 석굴암에서 20년이 넘었다는 공양주가 초코파이 두 상자를 들고 나온다. “아가! 아가! 이거 먹고.” 석굴암은 군사보호지역 안에 있다. 주위가 모두 군부대다. “잘 먹겠습니다.” 역시 초코파이다. 군사보호지역 안에 있음으로 해서 겪는 어려움을 묻자. 공양주는 처음엔 별로 없다고 하다가 얼굴을 슬쩍 바꾼다. “왜 없었겠어요.” 석굴암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 많았다. 지금도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석굴암은 ‘신도’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다녀야 할 길이 우이령길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절로 가는 길 자체가 ‘통제’ 속에 있어야 했던 석굴암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주지 스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것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오히려 석굴암이 군인들 불자 만들기 좋은 절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제 열리면 군부대에서 많이 옵니다. 도량 구석구석 꽉 찹니다.” 올 해로 5회째를 맞는 석굴암 단풍음악제는 하루 방문객이 몇 안 되는 석굴암으로서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면서 그야말로 포교의 기회다. “잘 먹었습니다.” 장병들이 다시 목장갑을 끼고 울력을 시작한다. 석굴암표 초코파이는 포교였다.

2009년부터 개방된 우이령길
석굴암을 나와 다시 우이령길에 선다. 왼쪽으로 저수지를 끼고 잠시 오르막을 오르면 폭신폭신한 흙길이 이어진다. 1km 쯤 걸으면 우이령 정상부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엔 여러 종의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우이령길은 긴 구간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예약을 해야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석굴암은 그 길에 있다. 신경숙의 단편 소설 ‘부석사’에서 저자는 부석사를 아무나 갈 수 없는 절로 묘사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결국 부석사를 보지 못한다. 소설은 부석사를 보여주지 않는다. 갈 수 있는 길이지만 지금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석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만을 들려주며 저자는 소설을 맺는다. 현실 속의 저자는 부석사를 다녀왔지만 “소설 속에서는 아무나 그 곳에 가게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생각을 더하면 저자는 부석사를 가고 싶은 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길은 가고 싶은 길이 되는 것이다. 석굴암 가는 길은 가고 싶은 길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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