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공함 깨닫고 부처님 법신 최초로 만나다
법의 공함 깨닫고 부처님 법신 최초로 만나다
  • 이나은 기자
  • 승인 2012.10.0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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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_ <중>깨달음

영취산 토굴서 용맹정진
마음의 작용원리 깨달아
무쟁도 행한 모범 수행자

 

▲ 거조암 수보리 나한상

수보리는 죽림정사에서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를 떠올렸다.
“수보리야, 포악한 성품에서 저지르는 나쁜 허물과 번뇌는 선근(善根)을 소멸시키고 악(惡)을 키우느니라. 설령 그 고통에서 벗어나더라도 용, 뱀, 귀신 따위로 태어나 악한 마음을 품고 서로 살해하게 되는 과보를 얻게 되느니라.”
수보리는 부처님이 설한 진실한 도리를 되새기며 지난 일을 참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는 일만이 참회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작용을 깨닫다
수보리가 수행하러 떠나기 전 어느 날이었다. 한 수행자가 부처님께 말했다.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닦아 성취하고자 하옵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불러놓고 수행자가 어떤 원을 세우고 수행해야 하는지 일러주셨다.
“수행자들이여, 그대들은 마땅히 이와 같은 서원을 세워야 한다. 부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해 깨달음을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그대들에게 음식과 의복과 모든 생활도구를 보시하는 사람에게 큰 공덕이 있도록 하기 위해 관법을 수행해 깨달음을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모기와 등에의 괴롭힘을 참으며 몸에 병이 들어 목숨이 끊어지려 한다 하더라도 수행해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즐겁지 않은 일을 견디고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집착하지 않기 위해 구족계를 받고 고요한 곳에서 관법을 수행해 깨달음을 성취하리라는 원을 세워야 한다.”
출가 전 남의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던 수보리였지만 부처님을 만나면서 상대의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귀중하게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부처님 말씀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소중한 보물과도 같았다. 수보리는 부처님 설법을 기억하며 영취산 토굴에서 수행정진에 들어갔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부처님의 수승한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새겼다.
“수보리여, 마음을 청정하게 챙겨서 형상을 비롯해 소리나 냄새, 맛이나 감촉, 그리고 정신적인 대상에도 결코 휘둘려서는 안 되며,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수보리는 생각했다.
‘그래, 마음은 안과 밖에도, 또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마음은 허공과 같아 뜻밖의 문제들로 더럽혀지지만 번개와도 같아 잠시도 머물지 않고 순간 소멸해버린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그렇다. 마음의 정체는 분명 알 수도, 찾을 수도 없기에 얻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얻을 수 없는 것은 생기는 일이 없고, 생기지 않는 것은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이 일어나는 일이 없는 것은 사라지는 일 또한 없으며, 허공이 어디에서 보아도 평등하듯 마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아! 바로 이것이구나.”
수보리는 무릎을 쳤다. 자신의 인생을 시정잡배로 몰아넣은 것은 가족들이 아니라 내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밖으로만 찾아 헤맸다. 좋다 싫다를 늘 입에 달고 살았다. 누군가 나에게 성을 내고 비난하면, 나는 그들을 일일이 상대하고 성질내는데 급급했어. 난 왜 그리도 어리석었을까.’
수보리는 크게 뉘우쳤다. 모든 것에 분별하는 마음을 내며 상대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화를 내면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잘못 살아온 자신을 보게 된 수보리는 밤낮이 가는 줄 모르고 환골탈태를 위한 수행 정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음의 본성을 통해 공(空)의 이치에 접근해 가고 있었다.

부처님 법신을 맞이한 수보리
수행정진하는 동안 수보리는 부처님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죽림정사에 들러 사리불에게 부처님의 거처를 물었고, 사리불은 아나율에게 부처님의 안부를 물었다.
천안(天眼) 제일로 인정을 받은 아나율은 잠시 우주의 법계를 살핀 뒤 대답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 도리천에 올라 당신을 낳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신 생모 마야왕비님을 위해 설법을 하고 계십니다.”
“그럼 언제쯤 뵐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석 달 후, 보름날입니다, 사리불 장로님.”
예전의 수보리였다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소린가 하고 반박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수보리는 그 순간 또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하고 있었다.
‘아, 내가 지금 찾아가려던 부처님은 누구인가? 부처님의 참다운 모습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법신(法身)인 것을, 내가 맞이하려던 부처님은 덧없는 ‘육신’이 아닌가? 법신의 참다운 모습은 공한 것이어서, 가고 오는 곳이 없으며, 바로 지금 여기에도 계신 데 굳이 부처님의 육신을 맞으러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보리는 이미 출가하기 전에 살인자의 칼날 앞에서도 허공과 같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았다. 다만 그때는 불가사의한 현실 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부처님이 그저 신비롭게만 보였었다.
그러나 이제 수보리에게 부처님은 신비에 쌓인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부처님이 우주 법계에서 인간과 같은 육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은 진리에 대한 하나의 비유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부처님은 분명히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품고 있는 부처의 씨앗을, 마음처럼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불성을 육신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통해 드러내고 일깨우기 위하는 것이 아닐까.’
수보리는 그 의문을 화두로 삼고 다시 영취산 토굴로 돌아와 용맹 정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나율이 말한 보름날이 왔다.
죽림정사의 모든 제자들은 도리천에서 내려오시는 부처님을 먼저 맞이하기 위해 다투어 마중을 나갔다.
영취산 토굴에서 화두와 씨름하던 수보리는 토굴을 빠져나가다 말고 멈추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법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수보리야, 진정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아라….”
출가할 때 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거듭 수보리의 뇌리를 스쳤다. 수보리는 생각했다. 부처님의 참모습은 마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법신(法身)이다. 그런데 지ㆍ수ㆍ화ㆍ풍 4대의 가합일 뿐인 육신을 맞이하러 그토록 절박하게 찾아나서려 했다니….
‘육신은 참다운 진리 그 자체인 공(空)이 아니므로 법신이 될 수가 없다. 법신의 참모습은 공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고 오는 곳 없이 항상 우주 법계에 머물고 있다. 지금 이 토굴 속에도, 내 마음속에도 볼 수 있는 법신을 두고 무엇을 찾아 나간다는 말인가.’
비로소 깨달음을 얻은 수보리는 토굴에서 나가려던 발길을 돌렸다.
이윽고 제자들은 도리천에서 내려오는 부처님을 맞이하게 됐다. 이때 연화색 비구니 스님이 신통력으로 제일 먼저 부처님께 환영 예배를 올렸다. 그러나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다들 마중을 나와 줘서 고맙다. 하지만 나를 가장 먼저 마중한 사람은 수보리다.”
모두들 말도 안 되는 말씀이라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부처님이 말을 이었다.
“수보리는 모든 법이 공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나의 육신을 만나기 전에 이미 내 법신을 만났으며, 내 제자들 가운데 나의 법신을 최초로 보고 맞이한 제자는 수보리이니라.”

▲ 그림 김흥인

무쟁제일의 수보리
수보리는 이제 더 이상 출가 전의 수보리가 아니었다. 조용히 수행에만 정진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다투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무쟁(無諍)과 팔정도의 삶에 대해 설법했다. 그것은 달라진 수보리를 이야기 하기 위함이었다.
“싸워서 이기면 원수와 적만 더 늘어나고, 패하면 괴로워서 누워도 편치 않다. 이기고 지는 것을 다 버리면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편안하리라. 싸워서 능히 이긴다 한들 끝내는 원한만 더욱 커져서 이익이 없다. 서로 놓아주면 편안하고 안락해질 것이다.”
이어서 강가로 간 부처님은 강 가운데로 큰 나무가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만일 저 나무가 바다에 이르고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이쪽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아야 하며, 중간에 가라앉거나 언덕 위로 오르지도 않아야 하며,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에 붙잡히지 말아야 하며, 물길을 거스르지도 썩지도 않아야 무사히 바다에 이를 수 있다. 수행자들이 수행하여 열반의 바다에 이르는 것도 이와 같다. 이쪽 저쪽 언덕에도 닿지 않아야 하며, 중간에 가라앉거나 언덕 위로 오르지도 않아야 하며, 사람이나 또는 사람 아닌 것에 붙잡히지 말아야 하며, 물길을 거스르지도 썩지도 않아야 열반의 바다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열반이란 바른 소견, 바른 다스림, 바른 말, 바른 업, 바른 생활, 바른 방편, 바른 사념, 바른 선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괴로움의 무더기를 없애지 못한 채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짓는 잘못된 행을 끊고 팔정도를 열심히 닦으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설법의 마지막에 “비구들이여, 수보리는 무쟁도(無諍道)를 행하는 이다”라며 수보리를 무쟁의 삶을 사는 최고의 모범으로 칭송했다.

 

참고문헌
〈부처님의 십대제자(성각 스님 편저)〉 〈부처님의 십대제자(성법 스님 편저)〉 〈붓다를 만난 사람들(조계종 출판사)〉 〈금강경〉 〈아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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