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새나라’꿈꾼 석굴암에 ‘金九’친필이…
이성계가 ‘새나라’꿈꾼 석굴암에 ‘金九’친필이…
  • 글ㆍ사진=박재완 기자
  • 승인 2012.07.2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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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있는둘레길-⑥ 북한산 사패능선길 그리고 회룡사, 석굴암

무학대사 손수 관음보살 모시고
개국염원하는 이성계 위해 기도
김구 머물던 석굴암엔 총성과 들꽃이

갈림길이다. 두 개의 이정표 사이에 섰다. 누군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아름다운 길을 남겨두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길을 가기로 했다. 아름답게 남은 길은 북한산 둘레길의 16구간 ‘보루길’이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길은 사패능선길이다.

무학대사는 전장에 나간 이성계를 위해 기도했다. 왕이 되어 돌아온 이성계는 절 이름 법성사를 회룡사라 했다.
숲 앞에 섰다. 모든 산들이 다자란 아이 같다. 신록을 기다리던 때가 얼마 안 되었는데, 언제 저렇게 숲이 되었을까. 생사(生死)가 산 아래 지붕 밑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보루길’과 ‘사패능선길’이 한 곳에서 시작된다. 의정부시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 200m 지난 곳에서 보루길이 시작된다. 보루길 시작점에서 사패능선길과 갈라진다. 회룡탐방지원센터까지는 전철 1호선 회령역에서 하차 후 3번 출구로 나와 호원동 한국개나리아파트까지 15정도 걸으면 된다.

두 개의 길을 놓고 망설인 이유는 회룡사 때문이다. 원래 가려고 했던 길은 보루길이었다. 회룡사에 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장에 와보니 회룡사는 보루길에 가까이 있을 뿐 보루길로는 갈 수 없었다. 회룡사는 사패능선길에 있었다. 사패능선길은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 사패능선까지 약 2.5km 길이다. ‘둘레길’은 아니지만 절이 있는 길이다. 1km 정도 오르면 회룡사와 회룡사 암자인 석굴암이 있다.

가파른 길이다. 길옆으로는 계곡이다. 가뭄을 견딘 계곡엔 세찬 물줄기가 흘렀다. 물소리가 잦아들고 도량이 나타났다. 회룡사다. 조계종 봉선사의 말사다. 1977년 봉선사에서 발행한 <봉선사본말사약지>에는 681년(신라 신문왕 1) 의상(625~702) 스님이 창건했으며, 법성사라 불렀다고 창건에 대해 적고 있으나, 다른 기록에서는 그와 일치하는 내용을 찾을 수 없어 조선 초 창건설도 무시할 수 없다. 회룡사를 이야기할 때, 무학 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몇 가지 이야기 중 하나다. 1384년 이성계는 무학 대사와 함께 지금의 회룡사 자리에서 개국성취를 위한 기도를 올렸는데, 이성계는 옆 석굴암에서, 무학 대사는 지금의 회룡사 자리에서 각각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라는 직책을 받고, 요동으로 출전하자 스님은 홀로 남아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며 그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돌아와 임금이 돌아왔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회룡사라 했다는 것이다. 1630년(인조 8) 예순 스님이 중건했고, 1881년(고종 18)에는 최성 스님이 중수했다. 1938년 순악 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9년 전, 북한산은 시끄러웠다. 최소한 60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회룡사도 편할 수 없었다. 회룡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망루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철마선원에 세워진 망루였다. 그 망루 꼭대기에는 ‘NO TUNNEL’이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산을 뚫어 터널을 내느냐 마느냐로 내겠다는 쪽과 내지 말라는 쪽이 대립하고 있을 때였다. 철마선원은 터널을 반대하는 스님들이 세운 선원이었다. 결국 망루는 스러지고 터널은 뚫렸다. ‘사패산터널’, 그 터널은 지금 회룡사 옆을 지나간다. 세월만한 약도 없다. 북한산은 이제 시끄럽지 않다. 누구도 ‘북한산’을, ‘터널’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땅 속 4km의 터널 속으로 쉴 새 없이 자동차들이 달릴 뿐이다. 마당 한 켠에서 관세음보살이 북한산을 내려다본다. 스님 두 분이 어딘가 다녀오는 길인 것 같다. 어딜 다녀오시는 걸까. 밀짚모자 위로 구름이 걷힌다.

백범 김구 선생은 석굴암을 찾아 많은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구름이 물러가고 뙤약볕이 쏟아진다. 회룡사 옆에는 산내 암자인 석굴암이 있다. 100m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지만 무슨 이유인지 회룡사와 석굴암 사이엔 길이 없다. 길 대신 작은 숲이 들어서 있다. 석굴암을 가려면 회룡사를 나와 왔던 길로 500m 정도 내려가서 왼쪽 길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길은 더 가파르다. 온갖 벌레들이 가파른 길에 매달려 울어댔다. 긴 잉태의 시간을 마치고 세상에 나온 그들은 이 여름의 며칠만을 울다가 이내 별처럼 사라진다. 그들의 죽음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뙤약볕 속으로 증발하듯 그들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석굴암이 보였다. 석굴암은 입구가 특이하다.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담장과 문을 이루고 있다. 바위 울타리 앞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깃발처럼 서있다. 깃발 위로 수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멀리서 작은 새들도 날았다. 작은 새는 자주 날았고, 큰 새는 자주 날지 않았다. 그 때 어디선가 총성이 들려왔다. 소나무에 한참을 앉아있던 수리가 날아갔다. 인근 군부대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석굴암은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무학 대사와 함께 3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며,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해로 망명하기 전에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해방 후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어 돌아온 김구 선생은 석굴암에 자주 들렀다. 북한산의 자연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석굴암 법당을 이루는 바위에는 ‘石窟庵’, ‘佛’, ‘金九’ 등 그 때 남긴 김구 선생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친필 ‘金九’ 위로 다시 수십 발의 총성이 지나간다. 총성이 지나간 산기슭을 따라 꽃들이 돋아있다. 무겁고 차갑고 막연한 총성이 그토록 가까이서 매일 ‘金九’ 위를 날았고, 숲은 무겁고 차갑고 막연한 그 총성의 궤적을 노란 들꽃으로 지우고 있었다.

북한산 사패능선길
허리 굽은 공양주가 절을 나선다. 내리막길을 이슬비처럼 내려간다. 안 걷는 듯 멀어져간다. 북한산 사패능선길에는 ‘새나라’를 꿈꿨던 두 사람의 도량이 있다. 한 사람은 나라를 가졌고, 또 한 사람은 가지지 못했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누군가 말했다.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누구나, 가고 싶었지만 못가본 길이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씩 있다. 길 하나를 남겨두고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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