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가듯 걷는 짤막한 길엔 천년불심 도량이…
마실가듯 걷는 짤막한 길엔 천년불심 도량이…
  • 박재완 기자
  • 승인 2012.07.0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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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북한산 ‘마실길’ 그리고 진관사, 삼천사

‘길’도 운명이 있을까. 숲을 가지고 태어난 길이 있고, 하늘을 가지고 태어난 길이 있고, 강물을 가지고 태어난 길이 있고, 도량을 가지고 태어난 길이 있고, 그렇게 길이 놓인 곳엔 길을 따라온 것들이 있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길을 적시고 있다. 길은 ‘마실길’이란 이름이 붙은 북한산 둘레길(9구간)이다. 마실길은 진관생태다리에서 방패교육대까지의 길로 전체 거리가 1.5km인 북한산 둘레길 구간 중 가장 짧은 길이다. 왠지 이 짤막한 길이 운명이란 말을 떠오르게 한다.

마실길은 8구간 구름정원길이 끝나는 진관생태다리에서 시작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진관동 하나고등학교(진관사 입구)까지 간다. 하나고등학교에서 약 200m 거리에 사회복지법인 인덕원이 있고 건너편에 진관생태다리가 있다. 마실길은 이 구간만 따로 떼어내서 걷는 것보다는 다른 구간과 함께 걷는 것이 좋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길의 대부분이 산길이 아니라 대로변의 블록길이다. 그야말로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녀오는’ 길이다. 길이 짧아서 부담은 없지만 산길을 느끼기 어렵다. 8구간이나 10구간을 묶어서 걷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마실길은 깊은 산맛을 느낄 수 없는 대신 유서 깊은 두 도량을 만날 수 있다. 진관사와 삼천사가 둘레길 가까이에 있다. 먼저 마실길 3분의 1지점에서 둘레길을 벗어나 진관사로 오르면 된다.

북한산 둘레길 중 가장 짧은 길
가까이에 유서깊은 도량 있어
임금의 보은 진관사
아쇼카왕 서원 옮겨온 삼천사
 

북한산 둘레길 ‘마실길’을 걷다보면 고려 현종이 목숨을 건져준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세운 진관사가 나온다. 스님이 부처님께 마지를 올리고 있다.
진관사로 오르는 길에는 조선왕조 화의군의 묘가 있다. 묘비에는 세조의 여섯 째 아들이었던 화의군이 단종복위사건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고 이곳에 묻혔다는 짧은 글이 적혀있다. 화의군의 묘를 뒤로 하고 약 200m 정도 오르면 진관사다. 지난 해 개산 천년을 맞은 진관사는 왕실과의 인연으로 생긴 도량이다. 고려 현종은 보위에 오르기 전인 대량원군 시절에 진관대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임금의 자리 오른다. 왕위에 오른 현종이 그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스님께 절을 지어드리고 진관사라 했다. 비켜갈 수 없는 일을 운명이라고 하지만 불교 가르침에 운명은 없다. 진관대사도 현종도 진관사도 하루하루가 모두가 인과일뿐이다. 진관사는 그렇게 산문을 열었다. 그쳤던 비가 제법 굵게 다시 내린다. 도량에서 행사가 있는 것 같다. 총무 스님(법해)이 바쁘시다. 외국인들이 도량을 찾았다. 한국문화체험을 위해 진관사를 찾았다고 한다. 손님을 치르고 나서 법해 스님이 한 숨 돌리자며 차 한 잔을 내어오셨다. 들어와 앉으니 빗물에 젖던 도량이 이제는 빗소리에 젖는다. 마당엔 우산 속의 스님이 부처님 마지를 들고 빗속을 걸어간다. 녹차 한잔을 입에 물고 비 내리는 도량을 바라본다. 나도 젖고 도량도 젖는다. 마실길과 진관사는 길도 쉽고 도량도 깊지 않아서 비오는 날 가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마음 적실만큼 비오는 날 마실길 걸어 발 적시고 진관사 홍제루 회랑에 걸터앉아 젖고 싶은 만큼 비 바라보다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빗속을 걸어간 스님이 부처님께 마지를 올린다. 차 한 잔 다시 물고 비 내리는 도량을 나섰다.

한국탑 최초로 아쇼카왕 석주 4사자상을 상륜부에 올린 삼천사 ‘세존진신사리 9층탑’
비가 그치고 햇살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진관사를 나와 다시 둘레길을 200m 정도를 걸으면 삼천사 입구다. 입구에서 약 1km정도 올라가야 한다. 삼천사는 661년 신라 문무왕 1년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 이후 사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를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한 때 3000명의 대중이 살았을 정도로 번창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집합소였으나 화재로 인해 도량이 소실됐다. 훗날 진영 스님이 중창했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때 다시 화재로 인해 소실된 도량은 1978년 성운 스님이 중수해 오늘에 이루고 있다.
보물 657호 삼천사 마애여래입상
주지 성운 스님은 지난 5월 세존 진신사리 3과를 봉안한 ‘세존진신사리 9층 석탑’을 세웠다. 탑에는 한국탑 최초로 아쇼카왕 석주의 ‘4사자상’을 상륜부에 올렸다. 아쇼카왕의 석주는 아쇼카왕(재위 기원전272~232)이 불법을 널리 펴기 위해 세운 탑으로, 평화와 생명존중의 정신이 담겨있으며, 상륜부에 올린 4사자상은 아쇼카왕을 상징한다. 성운 스님은 그 옛날 아쇼카왕의 마음을 그대로 도량에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한국의 삼천사라는 도량에 인도 아쇼카왕의 4사자상이 세워질 것을 누가 알았을까. 삼천사에는 보물(657호)이 있다. 삼천사 마애여래입상이다. 대웅보전 뒤쪽으로 둘러진 계곡의 병풍바위에 모셔져 있다. 천 년이 넘은 불상이다. 마애불은 법당의 불상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산새가 날아와 앉고, 솔바람도 스쳐가고, 중생들 옷깃도 끊임없이 스쳐간다. 진관사와 삼천사 모두 왕이 지키고 있는 도량인 셈이 됐다. 삼
‘마실길’은 블록길이나 진관사 입구부터는 숲길이다.
천사를 뒤로 하고 다시 둘레길에 들어섰다.
다시 비가 오락가락한다. 삼천사는 진관사보다 좀 더 산 속으로 들어가 있는 도량이다. 진관사가 산 속 깊이 있지 않아서 시원하고 정갈한 느낌의 도량이라면, 삼천사는 산세에 맞춰진, 풍광을 느낄 수 있는 도량이다. 단비 내리는 어느 여름날, 마실 나온 짤막한 길에는 불심깊은 왕들의 도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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