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식 교수 ‘가야사 학술회의’서 주장

서북한 지역서 김해이주 가능성
기록상 문물 평안도 등 漢계통 확인

금관가야(가락국, 김해지역)를 세운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후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평안도나 황해도에서 김해로 이주해 왔다는 주장이 나왔다.
4월 30일 열린 제8회 가야사 학술회의에서 ‘대가락과 대가야의 건국 신화’라는 주제 발표를 한 인제대 이영식(사진) 교수는 “‘<삼국유사> 가락국기’는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고 전하지만 현재까지 김해지역의 고고학 조사에서 인도 계통의 유물이나 유적이 확인된 적이 없고, 이를 보완할 만한 문헌자료적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대신 이 교수는 허왕후가 중국 한(漢) 문화의 영향을 받은 서북한 지역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즉 ‘가락국기’에서는 허왕후가 배에 싣고 들어왔던 물건들을 한(漢)의 호화로운 여러 가지 문물, 즉 한사잡물(漢肆雜物)이라 기록하고 있는데, 김해의 회현리 패총, 양동리와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한 나라 양식의 중국식 거울, 세 발 달린 청동솥, 통용되던 화폐 등에서 한 나라 계통의 문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허왕후가 가지고 돌어왔던 문물은 낙랑 등 한4군이 설치된 서북한 지역인 평안도나 황해도 지역의 선진문물로 추정되며 허왕후 역시 이 지역의 지배계급 출신으로 김해로 이주해 왔다”고 주장했다. 금관가야가 건국된 서기 42년 당시 평안도 지역에 한4군이 있었고, 한 나라 화폐가 서기 40년까지 통용된 점, 김해가 서기 3세기까지 동북아시아 교통로의 중심지로서 북방민족의 이주가 많았다는 점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이 교수는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불교가 가장 성행했던 1076년(고려 문종)에 편찬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교 발생지인 인도에서 허왕후가 출발한 것으로 윤색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