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들에게 일엽 스님(1896~1971·사진)은 근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비구니스님이다. 하지만 스님은 출가 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신여성으로서 자유주의 페미니즘 운동을 펼치며 근대기 여성계몽운동에 앞장선 사상가였다. 그러면서 문인이자 언론인으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하지만, 가부장제라는 구습으로 인한 성차별과 존재의 아픔 등은 구도의 길로 이끌었고, 결국 불문(佛門)에 들어 수행자가 됐다. 출가로 이끈 만공 선사는 일엽 스님에게 글을 쓰지 말고 수행할 것을 강조했고, 일엽 스님은 이를 27년동안 지키며 오롯이 수행정진했다.

27년 만에 절필을 깨고 법문과 에세이를 모은 일엽 스님의 첫 저서가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이다. 

이후 일엽 스님은 수필집 〈청춘을 불사르고〉(1962)와 수상록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를 잇달아 발간했다. 일엽 스님이 원적한 뒤에도 스님의 저서는 여러 출판사에서 지속적으로 발간했지만, 전집이 나온 적은 없었다. 

김일엽문화재단(이사장 월중 스님)은 3월 2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일엽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오롯이 담아낸 ‘김일엽 전집’을 김영사에서 펴냈다”고 밝혔다.

총 4권으로 이뤄진 ‘김일엽 전집’은 스님의 문집 △〈어느 수도인의 회상〉 △〈청춘을 불사르고〉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와 박진영 미국 아메리칸대학 교수가 저술한 평전 〈김일엽, 한 여성의 실존적 삶과 불교철학〉으로 구성됐다. 

〈어느 수도인의 회상〉은 ‘실성(失性)한 인간’으로 살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그것은 나를 알아 얻어야 한다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일엽 스님은 종교 교육을 위한 글이자 포교문인 이 책을 통해 “생(生)의 채비가 곧 사(死)의 대비”라고 말하고 있다. 

〈청춘을 불사르고〉는 생사를 초월해 영원한 청춘을 얻고자 했던 구도자 일엽 스님의 치열한 구도기다. 이 책은 전작인 〈어느 수도인의 회상〉에 속한 법문과 글을 갈무리하고 보완해 새로이 엮은 것으로, 출간 당시 수많은 이들을 구도의 길로 이끌었다. 김일엽 문집의 마지막 책인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는 사랑이라는 절벽, 행복과 불행의 갈피를 헤맨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일엽문화재단 부이사장 경완 스님(동국대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은 일엽 스님의 저서를 ‘서사와 은유로 풀어낸 생명과 깨달음의 법문’이라고 한줄로 평했다. 

일엽문중 4세손인 경완 스님은 “생명사상은 현대에 들어와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스님은 이미 1960년대 저서에서 사용하고 있다”면서 “생명을 경시하고 갈등을 반복하는 현대사회에 스님의 글은 여러 가르침을 남긴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일엽문화재단은 완간된 전집을 조계종을 비롯한 주요 종단의 승가교육기관과 4년제 대학 도서관, 국공립도서관에 증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