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미래본부 공동기획]
<출가를 말하다> 한산 스님&무여 스님

출판사 편집자로서 성공했지만
행복함 느끼지 못한 한산 스님
모친과 함께 템플스테이 참가해
스님들 모습에서 행복함 느껴
동생 무여 스님에게 출가 제안
출판경력으로 대중에 행복 전해

3월 17일은 부처님 출가절이다. 한 나라의 왕자로서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뒤로 하고 진리를 체득하기 위해 ‘위대한 포기’를 시작한 날. 그 뒤로 불교는 전 세계로 뻗어나갔지만 1700년 역사의 한국불교는 출가자 급감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속세와의 연을 끊어야 한다든지 또는 난해한 교리 공부와 수행이라는 인식이 출가를 더 멀게만 느끼게 하는 건 아닐까. 이에 본지와 조계종 미래본부는 출가를 더 현실적이고 대중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공동기획 ‘출가를 말하다’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두 번째 순서로 한날한시에 출가한 속가 자매이자 출판이라는 사회 경력을 살려 많은 이들의 행복을 서원하는 한산·무여 스님을 출가절을 맞아 울산시립미술관 북카페에서 만났다. <편집자 주>

울산시립미술관 내 북카페에서 만난 한산 스님(사진 왼쪽)과 무여 스님. 행복한 삶을 위해 출가했고, 출가의 결과로 마주한 행복을 감사한 마음에 담아 회향하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 내 북카페에서 만난 한산 스님(사진 왼쪽)과 무여 스님. 행복한 삶을 위해 출가했고, 출가의 결과로 마주한 행복을 감사한 마음에 담아 회향하고 있다.

20대 나이에 제법 성공한 출판사 편집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하는 일도 잘 풀리니 어느샌가 콧대가 높아졌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른 성공을 만끽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느낌이 늘 남아있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렇게 2008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어머니를 모시고 대구 유가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다. 평생을 불자로 살아온 어머니와 달리 불교가 낯설었던 20대 젊은 여성은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의 마음과 마주하는 기회를 가졌다. ‘내가 평소에 이렇게 많은 생각을 했었나?’

길지 않은 템플스테이를 마친 그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봉사를 하면서도 그 후 1년 동안 꾸준히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스님들과 만남을 유지했다. 연년생 동생은 이런 언니의 모습이 그저 생경하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막역하게 많은 것을 나누며 살아온 자매. 편집디자이너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동생도 어느새 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스님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0년, 자매는 한날한시에 같은 은사스님을 모시고 양산 내원사에서 출가해 각각 한산·무여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이비에 홀린 게 아닌가 의심했다니까요.”

3월 17일 출가재일을 맞아 울산시립미술관 북카페에서 만난 한산 스님과 무여 스님. 출가인연을 읊어가던 동생 무여 스님의 한마디에 한산 스님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종교라고는 관심도 없던 둘째 언니가 직장까지 관두고 스님들을 만나는 모습이 동생으로서 보기에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나보다.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출가한 스님들을 뵙게 되잖아요? 그 모습이 제 눈에 너무나 행복해보였습니다. 저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거든요. 스님들의 모습을 꾸준히 보면서 자연스럽게 출가를 결심했어요.”

행복하기 위해 출가했다는 한산 스님. 그 말에 중생구제라는 대발심과 진리를 향한 정진을 다지는 거룩한 결의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고정된 출가 관념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행복을 목표로 출가를 꿈꿔도 되는 걸까?’라는 물음이 뒤따랐다. 이런 기자의 표정이라도 읽은 듯 한산 스님은 미소 지으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을 설명했다.

“스스로 먼저 행복해야 해요. 자신이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의미가 있는 일일까요? 내가 행복해야 또 다른 사람을 행복의 길로 안내할 수 있잖아요.”

'지금 여기 감사 일기'를 펴낸 한산 스님이 저자와의 북토크를 하는 모습.
'지금 여기 감사 일기'를 펴낸 한산 스님이 저자와의 북토크를 하는 모습.

사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공’을 위해 청춘을 밤낮으로 내던졌던 한산 스님이 내뱉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평소와 달리 조금 더 진하게 다가왔다. 돈이야말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열쇠라고 생각했던 시절,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던 모습. 그 뒤에 찾아온 건 행복이 아니라 마음 깊은 울화통과 분노, 원망이었다.

매일 밥 먹듯이 야근하고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를 타고 퇴근하는 삶을 살던 무여 스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그저 많은 직장인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괜찮다는 생각으로 지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버틴 것이었다. 그래서 언니가 제안한 출가 권유도 저항보다는 수긍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는 정말 수많은, 평범한 직장인 중의 한 명이었어요. 야근은 당연한 일이고 내 삶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볼 여유도 없었죠. 한산 스님에게 출가 권유를 받았을 때 ‘지금이 아니면’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어요.”

두 눈으로만 보던 스님들의 삶을 시작한 한산 스님과 무여 스님. 중앙승가대에 들어간 두 스님은 우연한 인연으로 출가 전 경력인 출판 경험을 살릴 기회를 맞았다. 출가 인연이 된 스님과 함께 대중 생활을 하면서 직접 책을 만들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였고 출판사 편집자였던 한산 스님, 편집디자이너였던 무여 스님의 재능기부가 만나 빛을 발했다. 책 자체도 판매용보다는 법보시에 중점을 두고 제작하면서 복잡한 절차도 거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출판사 ‘이층버스’다. 대승(大乘)의 의미를 담아낸 표현이다.

“출가 전 출판은 저에게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하지만 출가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드리는 방향으로 능력을 회향하게 되니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많은 분께서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고, 저로서도 저의 재능을 다시 펼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출가 전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던 재능이 새로운 변신을 맞이한 순간이었다. 한산, 무여 스님의 삶이 참된 행복의 길을 걷기 시작하자 재능도 함께 변해 가치를 더했다.

컬러링북 '날마다 부처님' 도안을 손수 그린 무여 스님.
컬러링북 '날마다 부처님' 도안을 손수 그린 무여 스님.

이후 스님들의 행보에는 편집과 출판이 당연한 듯 뒤를 따랐다. 그 자체가 행복 법문의 소통 도구가 된 것. 스님들은 많은 이들의 행복을 서원하며 ‘창작집단 일상다감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네이버 카페에 100일 동안 일상을 함께 나누는 공감의 장을 운영하고, 그 결과로 나온 책이 <지금 여기 감사 일기>다. 종교 불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의 메시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으로 채워졌다.

<지금 여기 감사 일기>는 모두와 함께 나눈 감사일기 수행법을 정리해 낸 책이다. 이어 무여 스님은 불교 컬러링북 <날마다 부처님>을 출판했다. <날마다 부처님>은 사경과 사불을 함께 할 수 있는 컬러링북이다. 부처님을 생각하며 무여 스님이 평소 그린 그림을 모은 것이다. 자칫 고답적일 수 있는 불교문화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산뜻한 캐릭터가 곳곳에 보인다.

이 책들은 2022년 스님들이 정식으로 만든 출판사 ‘그봄’에서 출간했다. ‘그대로 봄’, 지관(止觀)을 의미하는 출판사를 통해 스님들은 이제 더 많은 이들과 행복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 책들과 함께하면서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고, 그로 인해 출가의 길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가를 너무 어렵고 힘든 것으로만 여기지 마시고, 한번쯤 나를 진심으로 돌아보는 기회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행복 찾아 떠나는 여행, 그것이 바로 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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