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정경〉에 남천축국 철탑은
수행자 자신의 몸과 마음 상징해
중생으로 살지 말고 보살로 살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이후에 무량한 게송이 밀교 경전에 수록돼 남천축국 철탑 안에 봉안됐다. 그러나 철문은 굳게 닫히고 쇠사슬로 겹겹이 봉쇄돼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이 문을 열 수 없었다. 천축의 불법이 쇠퇴해갈 무렵, 덕 높은 아사리 한 분이 이 탑에 이르러 진언을 외우자 비로자나불이 비로소 그 몸을 드러내었고, 이윽고 허공 중에 문자로서 설법을 나투었다. 범상치 않은 법문임을 알아차린 그는 차례로 그것을 종이에 옮겨 적었는데, 서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의 문자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사리는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염송해 탑문이 열리기를 서원했고, 7일 동안 탑을 돌며 염송한 후에 흰 겨자씨 일곱 알을 던졌는데 놀랍게도 문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어두컴컴한 탑 안에 갇혀있던 여러 신()들은 이리저리 날뛰며 노여워했다. 진귀한 꽃들이 탑의 덮개 부분에 그득히 줄지어 걸려 있었는데 조심스레 탑 안으로 발을 옮기자 탑문은 곧바로 닫혀버렸다. 그윽한 향기가 진동했고, 갖가지 등(燈)에서 뿜어져 나온 광명으로 사방이 환하게 밝혀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자, 갑자기 어디선가 경전을 독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들어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여러 대중이 찬탄하는 듯한 음성이었다. 환청과도 같은 이 소리는 며칠이 지나도록 끊이지 않고 계속됐는데, 이상하게도 마치 밥 먹는 동안의 잠깐 사이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사리는 제불보살이 깨우쳐주신 우주와 인생의 지혜를 기억해 잊지 않았는데, 문득 탑에서 나오니 예전처럼 도로 문이 닫혀버렸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여러 게송을 서사한 경전이 들려져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밀교의 소의경전인 〈금강정경〉이었다. 


〈금강정경의결〉이라는 문헌에서 밝히고 있는 전설과도 같은 이 남천축국의 철탑은, 어쩌면 수행자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상징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만법을 섭수하는 공덕의 그릇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불법을 체(體)로 하고 세간법을 그림자로 해 항상 진리와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고자 하는 우리가 아닌가. 7일간의 탑돌이 끝에 일곱 알의 겨자씨를 던져 탑문을 연 순간 향화(香華)·등명(燈明)이 눈 앞에 펼쳐지고 진리를 찬탄하는 음성이 들려왔듯이, 일주간을 불공하는 마음으로 용맹정진한 끝에 찾아오게 될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장원하리라. 


어두운 곳을 밝히고, 닫힌 문을 여는 것은 비단 아사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진리의 불모지에 사찰이나 전당을 신설해 현대인의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인연을 짓는 일은 스승·신교도를 막론하고 불자라면 누구나 동참해야 할 종교적 사명이 아닐까.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단 3.5%의 염분 덕분이라고 한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100명 중 97명이 어리석은 중생일지라도, 단 3~4명만이라도 지혜로운 이가 있다면 이 세상은 그런대로 유지가 된다는 뜻이리라. 귀한 인간의 몸을 받고 태어나 중생으로 살지 말고, 이왕이면 지혜로운 보살로 사는 길을 인연하도록 서원하고 정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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