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록만공법어편찬위 조사로 확인
비문 연기 현재까지 알려지지 않아
지난해 6월부터 조사·연구 진행해
1931년 매일신보 기사 내용과 동일
덕산면 주민들에 의해 비문 세워져

수덕사 만공기념관 옆에 있는 ‘송만공대선사구휼송덕비’의 모습. 그동안 송덕비 조성 연원을 알 수 없었으나 최근 조사와 연구로 1931년 덕산면 주민들이 중심이 돼 세워졌다는 게 확인됐다.
수덕사 만공기념관 옆에 있는 ‘송만공대선사구휼송덕비’의 모습. 그동안 송덕비 조성 연원을 알 수 없었으나 최근 조사와 연구로 1931년 덕산면 주민들이 중심이 돼 세워졌다는 게 확인됐다.

그동안 언제 조성된지 알 수 없었던 ‘송만공대선사구휼송덕비(宋滿空大禪師救恤頌德碑)’의 연원이 1931년으로 확인됐다. 

경허록만공법어편찬위원회(상임위원장 도신 스님)는 “현재 수덕사 만공기념관 옆에 위치한 ‘송만공대선사구휼송덕비(이하 만공선사송덕비)’가 1931년 덕산면 주민들이 중심이 돼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고 3월 19일 밝혔다. 

만공선사송덕비는 1999년 수덕사 인근 마을 주민들의 제보를 받아 정묵 스님(동국대 불교학술원장)과 주경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장)이 마을에 묻혀있던 비석을 발굴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하지만, 만공 선사의 공덕을 기리는 이 비석이 어떤 연유로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후 동국대 불교학술원과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 수덕사가 협약을 맺고 경허록만공법어편찬위원회를 출범하면서 지난해 6월부터 만공선사송덕비와 관련된 조사와 연구들이 빠르게 이뤄졌다. 

편찬위는 고신문아카이브에서 확보한 신문기사 중 1931년 5월 27일자 매일신보 기사에서 “정혜사 만공 선사가 덕산면 8개 리의 우박으로 인한 재난구제를 위하여 백미 17석(260원)을 베풀었으며 이에 대한 고마움으로 덕산면 8개 리 수백호의 가구들이 12전(100전=1원)씩 모아서 선사의 송덕비를 ‘덕산면 대동리 홍성통로’에 건립하는 중”이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에 편찬위 실무진이 현장 조사를 진행한 결과 만공선사송덕비의 내용과 당시 기사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김민규 동국대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일부 파손이 됐지만, 비석의 뒷면에 새겨진 신미년은 1931년이고, 비석을 보수한 부분에 가려진 글자와 마지막 6자는 소화 6년(1931)으로 볼 수 있다”며 “고휘도(HDR) 촬영을 통해 탁본하지 않고도 글자를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은 “수덕사에는 만공 선사의 유훈을 받들어 사리를 수습하지 않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며 “이러한 비석에 대해 만공 선사 당신은 부끄럽다 하실 것이나, 후손들에게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으므로, 제대로 된 정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경허록만공법어편찬위원회는 경허·만공 문도 사찰들의 지원 아래 2023년부터 2024년까지 <경허록>, <만공법어>를 편찬·간행하고, 경허·만공 선사와 관련된 자료들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자료집 출간 등의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편찬위 실무위원장 주경 스님(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장)은 “경허 선사께서 남긴 말씀 가운데 선과 관련된 내용을 별도로 뽑아 <경허록>으로 간행하고, 만공 선사의 법어집은 기존의 번역을 다듬고 새로운 자료를 추가해 <만공법어>를 간행하는 것이 1차적 목표”라며 “더불어 경허·만공 선사와 관련된 제반 자료를 모아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그 가운데 중요한 내용들을 뽑아 자료집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편찬위 상임위원장 도신 스님(수덕사 주지) 은 “<경허록>과 <만공법어>의 편찬에 있어 현대적인 번역과 더불어 옛 스님들께서 남긴 시대적 분위기와 철학을 잘 보존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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