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진감선사탑비 내용 강의
쌍계사 창건주 혜소 공덕 담겨
덕민스님, 국내 최초 비문 완역
“창건주, 중창조 예불 포함돼야”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 일해 덕민 지음/ 반야샘/ 1만9800원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 일해 덕민 지음/ 반야샘/ 1만9800원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인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는 쌍계사 창건주 진감 혜소(慧昭) 선사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로 887년(진성여왕 1)에 세워졌다. 진감 혜소 선사의 속성은 최 씨로, 804년(애장왕 5)에 당나라로 가서 신감 대사 밑에서 승려가 됐고, 830년(흥덕왕 5)에 조계육조선사의 법맥을 잇고 신라로 돌아와, 신라의 다섯 임금의 스승으로 존경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지금의 쌍계사인 옥천사에서 입적했다. 

헌강왕은 885년에 혜소 스님에게 진감 선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감선사대공영탑이라는 탑호를 내려 탑비를 세우도록 했다. 이 비석의 글은 왕명으로 최치원이 짓고 쓴 사산비명(四碑銘)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문장 연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참고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조계종 제13교구본사 쌍계사가 불국사 학장을 역임한 일해 덕민 스님의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를 출간했다.

덕민 스님의 〈지리산 쌍계사 진감선사대공영탑비 강의〉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전해졌던 비문의 내용 전체를 국내 최초로 완역한 것으로, 불교사와 당시 신라시대 역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진감선사대공영탑비문은 일반인은 물론 학자들에게도, 난해한 한문으로 전해져서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덕민 스님은 이 어려운 비문을 원문과 함께 직역하고 평설을 통해 누구나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했다.

덕민 스님은 강의를 통해 “쌍계사 개산조사인 삼법대비화상과 창건조사인 진감 선사와 함께 중창조사인 서산·벽암·백암·용담 선사와 고산 혜원 선사를 조석예불에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쌍계사 중창주인 고산 혜원 선사는 1975년 삼신산 쌍계산문에 들어와 입적할 때까지 46년간 주석하면서 폐허에 가까웠던 쌍계사를 일신했고, 선사께서는 불식촌음(不息寸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을 고산가풍으로 세우고, 쌍계사 창건 이념인 선, 교, 율, 차와 범패의 사상을 실천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쌍계사 창건주 진감 혜소 선사의 공덕을 기리는 ‘진감선사대공영탑비’의 모습. 
쌍계사 창건주 진감 혜소 선사의 공덕을 기리는 ‘진감선사대공영탑비’의 모습. 

비문에는 왜 쌍계사가 선, 교, 율, 차와 범패의 성지라고 자부하는 지를 알게 한다.  통일신라 723년(성덕왕 22)에 삼법(三法) 스님과 대비(悲) 스님이 중국 선종의 6대조인 육조혜능조사의 정상을 모시고 설리갈화처(雪裏葛化處), 즉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정상을 봉안하여 선종대가람의 선풍을 개산했고, 828년에는 대렴이 당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하면서 차나무 씨를 가지고 와서 왕명으로 처음 지리산 쌍계사 화개 골짜기에 심게 했다. 쌍계사 화개곡에는 차나무 시배지가 있는데, 경상남도에서는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밭으로 인정해 1987년 8월 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61호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로 지정했다.

이어 840년(문성왕 2)에 진감 혜소 선사가, 육조혜능조사의 선법을 잇고 귀국해 삼법, 대비 두 화상께서 육조혜능조사의 정상을 봉안한 곳에, 조사의 영당을 짓고 절을 크게 확장해 옥천사(泉寺)라 하여 창건했으며, 이곳에서 선, 교, 율, 차와 불교음악인 범패를 가르쳤다. 그리고 고산 혜원 선사가 쌍계사를 중창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게 덕민 스님의 주장이다.

덕민 스님의 강의는 쌍계사의 개산과 창건, 중창이 전해 내려오는 연기설화가 아니라  최치원이 지은 비문의 기록을 통해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신라의 명문장가 최치원이 쌍계사를 묘사한 표현도 눈길을 끈다. 최치원은 쌍계사를 묘사하면서 ‘호중별유천지(壺中別有天地)’라고 했다. 이것은 호로병 가운데 별천지가 쌍계사라는 것으로, 쌍계사가 별천지 무릉도원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다. 쌍계사는 봄에는 꽃이 화려하고, 여름에는 우거진 소나무 소리에 울려 퍼지는 비파소리가 있고, 가을 골짜기에는 달이 휘영청 밝고, 겨울에는 산 정상에 눈이 쌓여있다고 했다.

따라서 별천지는 지리산 화개골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쌍계사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이 최치원의 비문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덕민 스님은?
저자 일해(一海) 덕민 스님은 1954년 범어사에서 우룡 종한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1968년 범어사에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55년부터 1960년까지 청암사 승가대학에서 수학을 했으며, 1967년에서 1969년까지 흥국학림에서 호경 스님 문하에서 경학을 연찬하던 중, 1968년 청암사에서 우룡 스님께 전강을 받았다. 1970년부터 1986년까지 마지막 유학자 추연 선생 문하(태동고전연구원)에서 공부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범어사 승가대학 학장, 2004년부터 2017년까지 불국사 승가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현재, 기림사 성림금강학림 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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