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광주박물관, ‘가련유사’ 번역집 발간

초의 선사 관련 유묵 364점
박동춘 소장 기증하며 연구
1818, 1819년 진행된 시회
초의, 다산학단 참여해 교류
조선 불교, 유학자 교유 확인

조선시대 불교와 유림의 교유(交遊)를 확인할 수 있는 시회를 기록한 유묵이 번역됐다.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이애령)은 조선 후기 대흥사에서 열렸던 시회에서 나온 시들을 기록한 〈가련유사(迦蓮幽詞)〉를 번역·출간했다.〈사진〉 

〈가련유사〉 번역집은 ‘박동춘 기증 초의선사 유묵 번역집’ 시리즈의 첫 결과물로, 2021년 1월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초의 선사 관련 유묵과 문화재 총 169건 364점을 기증하며 연구·번역이 시작됐다. 이는 박동춘 소장이 스승 응송 스님에게 전해 받은 것으로 초의 선사 친필서책과 당대 지식인들이 교유한 서신 등이 주를 이룬다. 기증 당시에도 조선 후기 차문화와 불교·유교의 교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았다. 

이에 국립광주박물관은 박동춘 소장 기증 문화재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우리 차문화의 연원과 아시아 차문화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2022년부터 번역사업에 착수했고, 〈가련유사〉의 첫 번역작업을 완료한 것이다. 

〈가련유사〉는 초의 선사를 비롯한 대흥사 스님들과 다산 정약용의 제자들, 일명 다산학단이 1818·1819년 2차례 걸쳐 대흥사에서 개최한 시회(詩會)의 내용을 엮은 아회록(雅會錄)이다. 1818년 시회에는 색성 스님을 비롯해 윤종영·이기수·윤기호·윤종민·오도휴·윤병흠이 참석해 시로 교유했으며, 1819년에는 초의 선사와 철경·색성 스님을 비롯해 윤종정·윤종영·윤종심·윤기호·윤종민·윤종삼 등이 참여했다. 

〈가련유사〉는 총 2권으로 1권은 1818년 시회의 시 210수를 담았는데, 그 내용은 각자가 운을 집은 후 운에 따라 시를 짓는 형식이다. 1819년 시회의 시 90수를 기록한 2권은 봄, 여름, 가을 절기에 맞춰 3자의 운을 따라 시를 짓고 있다. 

초의와 다산학단이 열었던 이 시회는 일종의 불·유 교유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이는 중국 진라 고승 혜원(335~417)의 동림고사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동림사는 혜원의 주석 사찰로, 그의 수행력을 흠모했던 도연명, 육수정 등이 그곳에서 혜원과 격의없는 교류를 나눴다. 실제, 윤종영이 쓴 〈가련유사〉 서문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산방에 함께 묵었는데, 아암의 문도 색성이 내외전에 두루 통하고 시에도 능했다. 마침내 동림고사를 모방해 고사의 참여 인원보다 세 사람이 더 참가했다.〈중략〉 ‘가련(迦蓮)’은 무엇인가. 절을 주장한 것이요. ‘유사(幽詞)’는 산 중의 일을 읊은 것이다. 이는 산문(대흥사)의 역사로 삼을만 하다.”

유묵을 기증한 박동춘 소장은 “시회에 참석한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다산이 강진 유배시절 다산초당에서 기른 제자들이 주도한 시회라는 특징을 보인다. 다산계 제자로는 색성 스님과 윤종영, 윤종심, 윤종삼 등이 있고 이기수, 오도휴 등은 다산에게 훈도를 받은 인물”이라며 “이 자료는 다산의 해배 이후 그의 제자들이 대흥사에 모여 시를 짓고,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우의를 이어간 현장 기록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애령 국립광주박물관장은 “〈가련유사〉는 조선 후기 호남지역 스님과 유림들이 종교와 사상을 넘어 시와 차를 나누며 격의 없이 교유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며 “앞으로도 이저리 초의 선사 유묵 번역집 발간을 비롯한 박동춘 기증 문화재 조사연구 사업의 성과들이 조선 후기 문화사와 차문화 원형을 찾아가는 유용한 자료로 활용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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