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 시절은 불안했고, 초조했고,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많아 지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사회적으론 IMF까지 터졌으니…. 시대와 내 형편을 고려하면 빨리 안정적인 취업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나의 기질은 인간과 삶에 대해 좀 더 사색하고 고민하고 나누고 싶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인간에 대해 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란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터라 다짜고짜 사회로 내몰리는 내 처지에 저항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에 난 사찰 수련회 광고를 봤다. 4박 5일에 부담 없는 비용이라 바로 신청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예불과 참선, 발우공양, 108배, 묵언, 차수, 마지막 날 1080배까지 참 엄격한 일정이었지만 당시에는 여름방학 동안 한 사찰에서 몇 차례 수련회를 개최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낙산사와 해인사 수련회를 다녀온 이후로 강남 소재의 큰 사찰에서 진행하는 대학생 법회에도 정기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해인사 수련회 자원봉사도 자원해 한 달간 봉사하고 인터넷 카페도 개설해 카페지기로 활동하며 운영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또래들을 만나기도 하고 연령과 직업을 초월해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삶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더불어 참선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습의사 스님이 주신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화두는 밑도 끝도 없는 의정의 세계로 몰고 갔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한 3년에서 5년 정도 불교를 공부하면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출가란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기에 그런 내 의지를 확인하고 싶어 성철 스님이 계셨던 백련암에 3000배를 하러 갔다. 3000배는 해봐야 출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담이지만 3000배를 끝내고 뿌듯해하고 있던 그때 백련암에서 절을 하고 계시던 대부분의 불자님들은 하루 1만배를 하고 계셨다.

그렇게 3000배를 끝내고 동화사 양진암으로 출가했다. 양진암은 비구니 선원이다. 행자생활과 강원 4년을 마치고 양진암에서 상노스님 시봉하는 소임을 맡고 있을 때였다. 딱 출가한지 5년이 되던 해였는데 상노스님을 시봉하며 문득 ‘아 이 길은 5년으로 끝낼게 아니구나. 평생 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대학시절의 불안과 초조함은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상노스님의 따뜻하고 평등한 보살 같은 사랑을 보며 나도 그런 사랑을 주는 수행자가 되고 싶었다.

시현 스님/성신여대 불교동아리 지도법사
시현 스님/성신여대 불교동아리 지도법사

지금은 출가한지 20년이 훌쩍 넘어 포교당을 운영하며 대학생 법회를 맡고 있다. 많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만 대학생들에게 마음이 더 가는 이유는 내가 출가를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공감하지만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마음상태를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우리 법우들도 진정한 사랑, 보살 같은 사랑을 경험하고 나눌 수 있기를. 그래서 사회의 곳곳에서 등불이 되기를. 참 신기하게도 이런 보조자의 역할이 내 수행을 더 깊고 간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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