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붓다가 보여준 존엄한 죽음 (4)

열반의 과정, 시간 두고 알려주며
제자들이 느낄 혼란 막은 부처님

감정마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이 셔터를 내리듯 차단되는 상황이다. 감정마비 상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어릴 때부터 학대를 당했거나 왕따 경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기도하다.

특히 자식을 사고로 잃은 부모들의 경우 마음의 셔터를 더 강하게 내려버린다. 이런 경우 아버지들은 벼랑 끝으로 자신을 내몰아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고통의 시간을 견디기도 한다. 그들은 아프다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고통을 피해 마음의 벽을 세워두고 외면해도 감정은 어느새 쏟아지듯 폭발하고 마치 쓰나미가 휩쓸고 간 현장처럼 마음이 피폐해져 버린다.

민호(40) 씨도 가족의 연이은 죽음에 감정의 셔터를 내린 상황이었다. 그는 큰형이 뇌종양으로 사망하고 이후 동생들의 연이은 죽음을 경험해야 했다. 가난했던 시절에 자식을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도 그는 덤덤하게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재작년에 남동생도 뇌종양으로 죽었습니다. 장례를 위해 장례식장을 잡고 친척들에게 연락하고 화장터를 잡고 부고를 어떻게 알려야 할지 정했습니다. 뇌종양 치료에 든 병원비를 정리했고 보험이 있어서 잘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남동생의 죽음에 대해 물었을 때 어떻게 처리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마치 회사 면접에서 보고하는 브리핑처럼 말을 이어갔다. 마음은 어땠는지 묻자 그는 “잘 모르겠다”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의 남동생은 부모와 형제가 모두 사망한 뒤 자신이 자식처럼 키운 유일한 혈육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푹 꺼진 듯 공허했고 끊임없이 일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했다. 일에 대해서는 아주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능력을 보여줬지만,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고 불면증이 지속됐다. 혼자 조용한 방에 머물 때면 알 수 없는 냉기가 느껴지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죽음은 이처럼 살아있는 사람에게 큰 과제를 남긴다. 감정을 알아차리면 마치 죽을 것처럼 자신을 방어하고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면 깊은 통찰로 성숙의 삶을 선물 받기도 한다.

열반을 앞둔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성숙한 삶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부처님은 3개월간의 시간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열반을 준비하도록 했다. 책 〈고타마 붓다의 생애〉를 보면 마라가 열반에 들 부처님께 찾아와 “이제 열반에 드시라”고 재촉한다. 이에 붓다는 “마라야. 안심해라, 붓다는 곧 열반에 들리라. 앞으로 3개월 후에 붓다는 열반에 들리라”고 답했다. 이후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열반에 들 것을 알려주며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붓다는 더 머물러 줄 것을 간청하는 아난다의 슬픔을 위로하며 모든 비구스님들을 웨살리(Vesl) 근처의 꾸따가라(Ktagra) 정사로 모이도록 했다. 그리고 부처님은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듯 붓다의 죽음을 미리 알고 충분히 애도하도록 돕는다. 부처님은 “비구들아, 모여서 이루어진 모든 것은 반드시 흩어진다. 그러므로 정진하라. 머지않아 붓다는 입멸할 것이다. 앞으로 3개월 후에 붓다의 육신은 떠날 것이다”고 알렸다.

사별은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포함한다. 감정으로는 비탄이며 애도의 과정을 요구받는다. 특히 애도(mourning)는 슬픔과 비탄의 감정을 넘어서서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고 삶으로 받아들여 통합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별 혹은 애도 상담은 임종자와 건강하게 작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죽음을 주제로 사별 상담을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인식하도록 돕고 특히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도록 돕는다. 가족의 죽음 후에도 일상에서 잘 생활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에서 판단하고 결정해 실수를 하거나 가족들과 친척들에게 비난을 퍼붓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붓다의 열반 전 마지막 3개월은 충분히 애도하고 제자들이 함께 우는 시간이었다. 혼란을 최대한 막기 위해 부처님은 열반 후에 해야 할 일을 자세히 일러주며 살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붓다는 자신이 어느 장소에서 열반에 들 것인지를 알려줬고, 자신에게 공양을 올릴 춘다를 위해 자책하지 않도록 당부의 말을 남긴다. 열반 후 경배하고 기념할 장소도 구체적으로 알려줬으며 자신의 유해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자세히 말한다. 애도의 과정 속에 겪을 혼란을 막고 평소처럼 제자들이 정진하며 전법의 시작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운 붓다의 자비이며 완벽한 애도 치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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