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미래본부 공동기획] 출가를 말하다
권진영 동대부영석고 교법사

종립학교 30년 근무한 베테랑
‘5분 설법’으로 불교의 길 안내
지난해 고3 제자 출가 후 수계
다른 두 제자들도 출가 결심해
불교인재양성 모임 ‘선연’ 역할
“교육공동체 필요…인식 전환도”

3월 17일은 부처님 출가절이다. 한 나라의 왕자로서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뒤로 하고 진리를 체득하기 위해 ‘위대한 포기’를 시작한 날. 그 뒤로 불교는 전 세계로 뻗어나갔지만 1700년 역사의 한국불교는 출가자 급감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속세와의 연을 끊어야 한다든지 또는 난해한 교리 공부와 수행이라는 인식이 출가를 더 멀게만 느끼게 하는 건 아닐까. 이에 본지와 조계종 미래본부는 출가를 더 현실적이고 대중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공동기획 ‘출가를 말하다’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첫 순서로 고등학생 제자들에게 불교를 안내하며 출가를 돕는 권진영 교법사의 이야기를 출가절을 앞둔 3월 12일 동대부영석고에서 들어봤다. <편집자 주>

동대부영석고 법당에서 합장한 권진영 교법사. 종립학교에서 30년을 근무하며 학생들에게 불교를 전한 베테랑 교법사다.
동대부영석고 법당에서 합장한 권진영 교법사. 종립학교에서 30년을 근무하며 학생들에게 불교를 전한 베테랑 교법사다.

“예전에는 출가를 모든 인연 끊고 산에 들어가 고행하는 결사적인 분위기로 표현했다면, 요즘의 저는 진로진학의 입장에서 출가를 알리고, 대학 불교학과 진학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교종립학교에서 30년째 근무한 베테랑인 권진영 교법사가 내뱉은 첫마디부터 인상적이었다. 진로진학의 관점에서 출가를 안내한다니, 평범한 성인불자의 시각으로는 좀처럼 생각해보지 못한 접근이다. 무엇보다 수승하고 숭고한 출가지만 그 가치를 너무 추상적으로만 다루면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됐을 터.

그 덕분일까. 지난해에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학교 졸업을 앞둔 제자가 소년출가 절차를 밟아 ‘용철’이라는 법명을 받고 사미가 됐다. 지금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다니며 출가수행자로서의 소양을 닦고 있다고. 올해 영석고 3학년인 다른 제자 2명도 출가를 결심한 상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청소년이라면 대입경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스스로를 빨리 속단하는 것 같습니다. 내신이 낮거나 시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꿈을 포기하고 소중한 자신의 삶을 방치하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비교를 통해 열등감이나 좌절감을 쉽게 느끼게 되니까요. 마음 한 번 돌리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예불 끝나고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불교의 길을 알려주곤 합니다.”

권 교법사의 경력이 30년이나 된 만큼 그동안 출가한 제자들은 제법 있다. 출가뿐만 아니라 교법사의 꿈을 갖고 공부해 교법사가 된 제자들도 많다. 다만 당시에는 권 교법사가 의도적으로 출가를 안내하거나 독려해서 이뤄진 결과는 아니었다. 권 교법사가 진로진학 차원에서 불교와 출가를 알리기 시작한 건 3년 전부터다. 논문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면서 출가자 급감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고, 양적인 포교도 중요하지만 본격적인 불교교육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 여기에는 예불 이후 진행되는 ‘5분 설법’이 큰 역할을 했다.

“불교학생회 친구들이 법당에선 시끌벅적하고 자신감 넘치는데 교실에만 돌아가면 위축되는 경우가 많아요. 대입 공부로 인한 부담감 때문이죠. 그래서 남들이 다 외줄타기를 한다고 해서 나도 따라 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합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사는 게 정답은 아니니까요.”

서울 홍대선원에서 열린 템플스테이. 학생들이 준한 스님의 출가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서울 홍대선원에서 열린 템플스테이. 학생들이 준한 스님의 출가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지난해 출가한 제자 용철 스님도 그랬다. 과학영재로서 중학생 때까지 공부 잘하는 수재라고 평가받던 제자는 고등학교 진학 후 좌절감을 느꼈다. 공부를 더 잘하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아 회의를 느꼈다. 대입 공부를 하며 쓴맛을 본 제자는 권 교법사를 만난 뒤 변했다. 그때그때 짤막하게 전해들은 불교적 사고방식이나 교리를 집안 밥상머리에서 풀어놓았다. 말 없던 아들의 말문이 트이니 어머니도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제자는 권 교법사에게 출가 의사를 밝혔다.

권 교법사는 “다시 생각해보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공부가 싫어 치기어린 마음에 한 생각은 아닌지, 순간적인 충동 때문이거나 출가를 낭만으로 느낀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라는 뜻이었다. 큰 인연을 맺는 일인 만큼 무조건적인 환영보다는 스스로의 인생 로드맵을 설정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그럼에도 제자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권 교법사는 제자의 부모님까지 만나 상담하고 출가를 도왔다.

“출가라는 것이 회피가 되면 안 되니까 출가하고 싶다는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마음을 굳혔다면 출가자로서의 비전을 교육해서 훌륭한 발심으로 스님이 될 수 있게 최대한 돕습니다. 용철 스님이 첫 사례고, 그런 모습을 본 후배들도 출가를 결심하게 된 거죠.”

권 교법사의 제자들이 출가 결심을 한 데는 불교핵심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모임 ‘선연(善緣)’의 역할이 컸다. ‘선연’은 진지하게 불교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에게 조금은 특별한 템플스테이를 경험하게 해준다. 지난달에는 조계종 국제전법단과 함께 서울 홍대선원에서 템플스테이를 했다. 외국인들도 함께한 템플스테이에서 학생들은 포틀럭 파티를 즐기고 싱잉볼 명상을 체험하며 보다 친숙하게 불교에 녹아들었다. 홍대선원 주지 준한 스님도 자신의 출가인연을 소개하며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힘을 보탰다.

홍대선원 템플스테이에서 싱잉볼 명상을 체험하며 내면에 집중해보는 학생들.
홍대선원 템플스테이에서 싱잉볼 명상을 체험하며 내면에 집중해보는 학생들.

권 교법사는 제대로 된 출가자 확대를 위한 밑바탕으로 ‘불교교육공동체’를 꼽는다. 단순한 템플스테이가 아닌 오대산 명상마을이나 프랑스 플럼빌리지 같은 곳을 탐방하면서 확실한 불교문화를 느낄 수 있게 돕는 것. 자신감을 갖고 불교에 첫 발을 내디뎠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교리로 다가가는 교육보다는 느낌과 기분, 정서로 다가가는 교육을 했을 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청소년기에는 교리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보다 새벽에 듣는 사물 소리가 가슴을 울렸을 때 더 큰 환희심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체험이 불교를 향한 발심으로 이어지는 데 효과적이고요. 지금 볼 수 있는 것 너머의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이를테면 세계불교의 신심 있는 모습 같은 것 말이죠. 그러려면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처럼요. 재정적인 지원도 뒤따라야 하고요.”

권 교법사는 공동체 조직과 더불어 필요한 것으로 출가에 대한 부모의 인식 전환을 강조했다. 자식이 신부를 장래로 꿈꾼다면 집안의 경사로 여기는 천주교와 달리 불교에선 ‘인연을 끊는다’는 출가 이미지로 인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론 출가 후 환속하는 것을 마치 변절자나 실패자로 보는 낙인성 시선도 문제다.

“조개에서 진주가 그냥 생기지 않죠. 어떤 핵이 들어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작용을 거쳐 진주 한 알이 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좋은 인연을 심어주는 게 첫 번째라고 봅니다. 그리고 불교의 접점을 다각도로 만나게 해줘야죠.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했죠. 앞으로의 미륵불은 인격적인 부처님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체계나 조직, 단체일 수도 있을 거라고요. 기성세대가 바뀌면 또 다른 기회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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