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최주현
그림=최주현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 봄이 오나 보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 속에는 이미 봄기운이 스며들었다. 황구지천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오리 떼들의 날갯짓이 경쾌하다. 재잘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늘어선 벚꽃나무들도 함빡 꽃을 터뜨리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오후에는 황구지천의 벚꽃 길을 걷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시골에서 벚꽃 길 근처에 사는 호사를 매일 누리는 것이다.  

중풍으로 반신을 잃은 할머니가 절뚝절뚝 홀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노부부가 웬만큼 궂은 날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벚꽃 길을 산책한 지는 오래되었다. 할아버지 혼자 걸어도 힘든 산책길이다. 흙바닥이 조금이라도 고르지 못하면 휠체어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 자리에서 맴돌았다. 나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 도와주려 하자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하겠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이후 서로 만나면 눈인사만 나누고 제 길을 걸었다. 

그런 어느 늦가을,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할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은 할아버지를 붙잡고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다. 흔들흔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 나는 일부러 눈길을 돌리곤 했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나는 뜸하게 벚꽃 길을 찾았는데 할머니는 변함없이 그 길을 걸었나 보다. 드디어 벚꽃이 움트는 계절에 할머니는 휠체어도 할아버지도 없이 홀로 걷고 있다. 각고의 인내로 추운 겨울을 이겨낸 것이다.  

한 해 두 해, 한 달 두 달이 지나는 동안 할머니는 첫걸음을 뗐다. 그동안 마비되었던 신경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온 천하에 봄이 찾아왔다. 할머니는 이제부터 남의 힘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제힘으로 걷는다. 그녀는 중풍 걸리기 이전에도 걸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걷는 줄도 모르고 걸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걷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걷는 것이다. 할머니의 첫걸음은 옛 시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 시대의 시작이다. 

그냥 살아가는 삶에는 기쁨이 없다. 그저 유행에 휩쓸려 이웃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참 나가 없다. 내 안에 불성(佛性)이 있는 줄 모르고 밖에 보이는 것을 탐하며 걸어가는 삶은 죽은 삶이다. 발을 잘름거려도 내 힘으로 걷는 것이 본래적인 참 자아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내 힘으로 사는 삶을 도(道)라고 한다. 

진리를 깨달으면 사람이 되는 것이고, 진리를 못 깨달으면 사람이 못 된다.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남을 의지해서는 부처가 될 수 없다. 부처가 되기까지, 할머니는 언 손을 호호 불며 넘어지면 일어서고 넘어지면 일어서기를 수 없이, 무릎에 멍이 들고 발꿈치에 군살이 박혀도 걸음을 옮기고 또 옮겼다.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헤아릴 수 없지만 첫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 바로 내가 사람이 되는 때이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꽃을 보기 위하여 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봄은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내 안에는 이미 진리의 꽃이 피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절뚝거릴지라도 자기 힘으로 걸어갈 때, 봄이 활짝 꽃눈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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