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진입장벽 높이는 게 선결 과제
공익성과 직업윤리가 통제 수단

불교 관련 문헌들을 읽다 보면 유독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있다. 읽을 때마다 심금을 울리는 말씀도 있지만, 전에는 무심코 읽어갔던 구절이 어느 순간 새롭게 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요즘의 내게는 <보왕삼매론>의 첫 구절이 그렇다. 평소에는 셋째 구절이나 다섯째 구절에 눈이 갔는데 의사들의 파업이니 면허취소니 하는 뉴스들이 세간을 시끄럽게 하는 요즘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첫 구절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무병장수를 바라지 않는 중생들이 어디 있겠는가 싶지만, 평소와 달리 아파도 쉽게 치료를 받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지면서 병원 갈 일이 없기를 더 간절히 바라게 되고, 건강 상태에 더 민감해지는 것 같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를 두고 재연된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은 몇 년 전에 이미 한 차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쟁점이었다. 마침 불어닥친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잠깐 휴전했다가 다시금 발화된 사건이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진척된 논의는 없는 것 같다. 여론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잡고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려는 의사들에 비난이 이어지고,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시선은 곱지 않다. 


‘전문직 프로젝트’라는 이론이 있다. 특정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이 직업집단을 이루고, 지식을 표준화하고 통제하며, 국가와의 협상을 통해 지식 서비스 시장을 지배하여 상층계급으로 이동하려는 일련의 행위를 ‘전문직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이 전문직 프로젝트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다. 


‘전문직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쉽게 그 직업을 얻을 수 없게 진입장벽을 높이고,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다른 직업집단을 배제하는 사회적 폐쇄 과정이 필수적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정책이므로 저항하는 것이고, 업무 영역이 중복되는 한의사나 약사, 간호사를 배제하기 위해 대립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직의 집단이기주의를 통제할 방법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통제의 핵심은 공익성과 고도의 직업윤리이다. 직무 수행과 관련하여 공익에 부합할 것과 높은 수준의 윤리적 실천을 요구하고 준수하는 한, 전문직은 기득권과 대중의 존경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위반 시에는 추상같은 제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의료수가, 오진한 의사들의 처벌 규정, 저출산 등을 문제 삼는 의사들의 주장이 공익성과 직업윤리에 부합하는지 의문이 든다.  

 

단 한 번이라도 그 명호를 들으면 “갖가지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을 없게 하고, 온갖 병이 사라지고 몸과 맘이 안락하며 집안 식구들과 생활물품이 갖추어지고 나아가 위없는 깨달음을 얻게 하리라”라는 약사유리광여래의 자비심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직에 요구되는 공익성과 직업윤리 준수라는 의무를 다했는지부터 엄정하게 성찰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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