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성신여대 대학생 법회를 맡고 솔직히 많이 긴장했다. 출가하고 20여 년간 노보살님들만 만났지 대학생을 상대해본 일이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여학생들은 예민하지 않을까…’ 한아름 걱정을 안고 캠퍼스로 향했다.

나름대로 준비한 명상과 교리 설명, 마음 나눔 등 한 시간여의 법회를 마무리하며 법우들한테 소감을 물어봤다. 다행히 긍정적으로 대답해준 덕분에 안도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뒤풀이 식사자리로 향했다. 그때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다.

“스님, 뭐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색깔은요?”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사석은 ‘스님의 상’으로 무장한 나에게 대학생 포교에 대한 무력감을 주기 시작했다.

“스님 주말엔 주로 뭐 하세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굳이 생각해본 적 없던 삶이었고, 주말이 딱히 구분되지 않는 승려생활이라 대답해주기가 난감했다. 그 중 무난한 질문인 것 같으면서도 나를 더 좌절하게 만든 게 있었다.

“스님은 MBTI가 어떻게 되세요?”

“글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첫 만남에서 편안하게 나누는 대화 주제인데 나만 ‘이방인’이었다. 불교를 전하겠다는 마음에 ‘스님 상’으로 무장한 채 명상과 교리라는 딱딱한 내용만 준비해온 것이 후회됐다. 그래놓고 학생들의 멘토가 되겠다니 얼토당토않은 포부인 셈이었다.

지금은 MBTI를 물으면 서슴없이 “ENFJ”라고 말한다. 대학생법우들은 듣자마자 “아~” 하고 바로 공감한다. 흔히 ‘선도자형’이라고 하는데, 공감능력 ‘끝판왕’에 뭔가를 자꾸 바꾸려 하고 항상 사람을 탐구하는 사람이란다. 그래서 지금 대학생 지도법사도 하는가보다.

요즘은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나 공부 잘하는 법, 자기관리에 관한 동영상 강의도 자주 본다. 그러다보니 정해진 법회보다 뒤풀이 시간이 학생들에게도 훨씬 재밌고 유익해졌다. 식사 후 차 한 잔 할 때는 더 깊은 고민상담도 한다. 자연스레 남자친구 소개도 하고, 친구와 있었던 일들, 심지어 친구의 친구 고민까지 얘깃거리가 되어 즐거운 ‘맛수다(맛있는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시현 스님/성신여대 불교동아리 지도법사.
시현 스님/성신여대 불교동아리 지도법사.

눈높이가 같아야 마음을 열고 나누기 수월하다. 너무 강한 표현처럼 느낄지 모르겠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세상이 전쟁터 같단다. 세상 편한 것 같아보여도 불안한 마음은 더 커졌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다. 산사에 있을 땐 몰랐는데 도심포교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공감대가 생겼다.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보니 말에 힘이 생겼다.

‘하루 5분 명상, 혹은 108배, 감사일기 쓰기.’ 너무 익숙해서 간과하기 쉬운 이 수행이 바쁜 대학생들에겐 닻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것 같지만 닻을 내린 배는 파도가 쳐도 안전하다. 치열하게 삶을 고민했던 인생의 선배로서 밥 한 번, 차 한 잔과 함께하는 ‘수다’로 오늘도 전법하러 간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