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 봄호서 불교환경운동 방향 제언하며 ‘쓴소리’

비구는 ‘乞士’… 지금도 정신은 지켜야
생산 떠남으로서 세상과 결속되기 때문
“승가, 환경문제 책임자에 죽비 내려야”
권력에 무력한 대중 옆에 서는 게 ‘중도’
“환경운동, 자비로운 삶 위한 기도돼야”

새만금 삼보일배 당시 수경 스님.
2003년 수경 스님은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와 함께 ‘생명 평화, 전쟁 반대를 위한 새만금개펄 살리기 삼보일배’ 대장정에 올랐다. 스님은 55일째 탈진으로 쓰러졌으나, 끝까지 대장정을 완료했다.

무너져가는 새만금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을 삼보일배했던 환경보살수경 스님이 앞으로 불교환경운동의 방향으로 보살행으로서 자비로운 삶을 위한 기도라는 작은 곳에서의 실천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승가에게는 정치와 자본권력에 자유로운 집단이 돼야 한다. 권력에 무력한 대중들의 옆에 서는 것이 중도행”이라는 일침을 내렸다. 지난 2010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히 모습을 감췄던 수경 스님이기에 사부대중을 위한 스님의 고언이 더 깊이 와 닿는다. 

수경 스님(사단법인 세상과함께 한주)<불교평론> 봄호(통권 97)에 특별기고한 욕망을 줄여야 합니다를 통해 불교환경운동의 방향성을 제언했다.

기도·가피·공양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스스로의 환경운동과 보살행의 과정을 되짚은 수경 스님은 소욕지족으로 복덕의 가피를 구하는 기도가 불교환경운동의 정신적 바탕이 돼야 한다고 했다. 무너져가는 자연 앞에 우리는 작게 살고, 적게 쓰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만 업()과 습()으로 인해 그리 살기란 쉽지 않기에, 수경 스님은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라는 말 뒤에 숨는 국가와 기업
수경 스님은 환경문제는 공업(共業)’임을 분명히 했다. 스님에 따르면 자가용 운전의 경우 개인이 짓는 불공업이지만, 그것들이 일으킨 오염의 합은 모두가 감당해야 하는 공업이 된다. 수경 스님은 현대사회에서는 공업과 불공업의 관계가 불분명하다면서도 환경문제의 경우 공업과 불공업이 합해 이뤄진 것이지만, 결과는 모두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업이라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환경문제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이 작금의 문제라는 게 수경 스님의 지적이다. 특히, 환경문제에 있어서 가장 책임을 많이 져야 하는 당사자인 국가와 기업들이 우리라는 말 안으로 숨어버리는 현대사회의 구조가 가장 문제라는 것이다.

수경 스님은 “(환경문제는) 국가나 기업의 책임에 비하면 각 개개인의 몫은 미미한 수준이라며 이를 도외시하고 우리의 문제로 묶음처리하는 것은 국가와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정부와 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연대에도 한계가 있다. 매일의 생계가 벅찬 사람들에게 환경 운운하는 것도 죄스런 일이라고 자조하면서도 그래서 NGO와 종교단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종교단체 가운데서도 불교의 출가 수행자 집단인 승가가 최적임자라는 게 수경 스님의 주장이다.

2003년 수경 스님은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와 함께 ‘생명 평화, 전쟁 반대를 위한 새만금개펄 살리기 삼보일배’ 대장정에 올랐다. 스님은 55일째 탈진으로 쓰러졌으나, 끝까지 대장정을 완료했다. 사진은 마지막 서울을 넘으며 문규현 신부를 부둥켜 안고 우는 스님의 모습. 한국환경운동사의 한획을 그은 장면이었다. (현대불교신문 자료사진)
2003년 수경 스님은 문규현 신부,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와 함께 ‘생명 평화, 전쟁 반대를 위한 새만금개펄 살리기 삼보일배’ 대장정에 올랐다. 스님은 55일째 탈진으로 쓰러졌으나, 끝까지 대장정을 완료했다. 사진은 마지막 서울을 넘으며 문규현 신부를 부둥켜 안고 우는 스님의 모습. 한국환경운동사의 한획을 그은 장면이었다. (현대불교신문 자료사진)

승가가 왜 환경운동의 적임자인가
수경 스님은 왜 한국불교의 승가가 환경운동의 적임자라고 했을까. 비구와 비구니로 이뤄진 승가는 생산에서 멀어진 집단이기 때문이다. 스님에 따르면 출가수행자는 비구()라고 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Bhiksu’의 음역으로 의미는 걸사(乞士)’이다. 일체 생산을 하지 않고 걸식으로 생을 살아가야 하기에 비구()세속과 관계를 끊은 출리적 존재이다.

이에 수경 스님은 승가의 출리성은 생산관계로부터 떠남으로서 단단해지고, 그것으로써 세상과 강력하게 결속된다비구가 인천사(人天師)로서 세상과 하늘의 사표가 될 수 있는 도리가 거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스님은 승가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집단이고, 그래야만 한다. 왕이 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권위가 거기서 나온다고 역설하며 승가는 공동체성이 붕괴된 현대사회에서 환경문제에 가장 책임이 무거운 사람들에게 개개인을 대신해 죽비를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수경 스님은 현재의 승가에게 올바른 중도를 행할 것도 주문했다. “모든 승가가 환경운동가가 될 것 없다고 말한 수경 스님은 다만, 부처님이 행하신 대로 분분사에 충실하면 된다. 말 못하는 자연의 편에 서는 것, 환경위기에 따른 피해에 취약한 약자 편에 서는 것, 이것이 제가 아는 중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치권력과 자본의 힘 앞에 무력한 대중의 편에서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기꺼워하는(기쁘게 여기는) 것이 승가의 중도행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그것을 하지 않고 화엄의 사사무애(事事無碍)를 말한다는 것은, 구름 위에 떠올라 어디에도 걸림없이 활보하겠다는 원대한 망상’”이라고 꼬집었다.

앞으로의 불교환경운동은
수경 스님이 말하려는 환경운동의 방향성은 명징하다. ‘소욕지족을 통한 복덕구족을 지향하는 삶이다. “물과 공기조차도 자본주의에 지배되는 세상에서 자발적 가난같이 듣기 좋은 고담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아낄 것 자체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소욕지족을 말하기도 면구하다고 밝힌 수경 스님은 말하고 싶은 소욕지족은 알뜰한 삶이다.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재활용하고, 종이컵을 안 쓰는 것이 방생이라는 인식정도는 하고 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경 스님은 지금의 한국불교는 거룩함에 매몰되어 버렸다. ‘좋은 삶에서 오는 복덕의 가치는 기복으로 오해받아 밀려났고, ‘지혜는 깨달음 지상주의에 의해 신비화 되어 버렸다면서 우리의 삶과 목숨을 알뜰히 여기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복덕구족의 삶이라고 밝혔다.

또한 스님은 앞으로의 불교환경운동은 복덕구족을 지향하는 좋은 삶, 보살행으로서 자비로운 삶을 위한 기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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