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리면 불상, 눈 돌리면 마애불

2012년 답사 연수로 경주 남산 접해
이후 답사 몰입…‘서남산 코스’ 추천
코스 시작은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동네 청년 같은 친근한 모습에 미소
아미타부처님 극락 정토신앙 담아내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모습. 1963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됐다. 근엄함보다는 친근한 모습의 민불(民佛)이다.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모습. 1963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됐다. 근엄함보다는 친근한 모습의 민불(民佛)이다.

정말 우연이었다. 2010년까지 나는 경주 남산이란 곳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조계종스님들은 연수 교육을 종단 차원에서 연도마다 받고 있다. 한 해가 시작되는 연초에 교육 일정이 알려지면 이 중에서 한가지 교육을 신청해 받게 된다. 2012년 연수 교육 과목 중 경주 남산의 불교문화 답사가 있었다. 경주도 가보고 남산 주위를 돌아다니면 좋겠다 싶어 신청했다. 경주 남산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겠지만, 포교당을 운영하면서 마음이 답답하던 차에 ‘바람이나 쐬며 돌아다니면 좋겠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완전 턱이 빠졌다. 경주 남산을 처음 들어섰을 때의 그 신비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곳곳마다 부처님이 계셨다. ‘왜 멋진 불상들이 이 산에 이렇게 많이 조성되어 있지?’ 처음이었다. 어딘가에 불상을 보러 가는 답사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던 불교문화유산 햇병아리 연구자(?)에게 경주 남산의 불상은 충격이었다. 어떤 불상을 보기 위해 답사의 길을 하루 코스로 다녀오던 나에게 곳곳마다 즐비한 불상은 신비로움의 세계로 인도하는 손짓이었다. 이날 오전, 오후 하루 코스로 다녀온 답사의 길, 아니 참배의 길은 경주 남산에 빠지게 한 시작점이었다. 기괴하기도 하고 멋스럽기도 한 소나무 숲에 자리 잡은 신라의 왕릉인 삼릉에서 출발해 용장곡을 지나는 서남산 코스와 더불어 칠불암을 지나 내려오는 동남산 코스였다. 

먼저 한마디 해야겠다. 경주 남산에는 지명을 쓸 때 곡과 골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곡은 한자이고 골은 한글인데 혼용돼 사용하고 있다. 용장골이기도 하고 용장곡이기도 하다. 이러한 혼용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많다. 대표적으로 남산에서 2007년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상이다. 열암곡 마애불상을 찾아가기 위해 인터넷 지도를 보고 주차장을 찾았다. 그런데 열암곡 주차장이 없는 것이다. 이런저런 조사를 해보았더니 새갓곡 주차장이 열암곡에 올라가는 주차장이었다. ‘왜 새갓곡이지’하고 찾아봤더니 지금은 새갓곡이라 하기도 하고 예전엔 열암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새갓은 산 사이의 골짜기라는 의미이다. 또한 새갓곡과 새갓골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물론 열암곡도 열암골이라고 사용한다. 여기에다 새갓과 열암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열암곡 마애불상을 찾아갈 때 새갓 주차장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누구에게 사정을 말하고 시정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겠다. 제발 경주 남산의 지명을 통일시켰으면 좋겠다.

이때의 답사 연수 이후 틈만 나면 경주에 들르고 시간이 나면 남산에 올랐다. 특히나 자주 갔던 길이 서남산 코스다. 이 코스는 경주 남산을 대표하는 코스다. 배동의 삼존불과 왕릉을 지나 오르다 잠시 숨을 돌리면 불상이고 잠시 눈을 돌리면 마애불이다. 특히나 남산을 기단으로 한 삼층석탑의 웅장함과 이에 어울리는 하늘의 경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멋짐을 보여준다. 가서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용장골 삼층석탑의 장엄함이다. 

경주 남산의 서남산 코스의 첫 시작은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다. 잘 정돈된 서남산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행을 시작하는데, 여기서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만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다. 불교문화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불상이지만, 일반 참배객이나 소문으로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미리 알지 못하면 굳이 찾지 않는 불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서남산 주차장에서 오르는 길은 삼존입상이 아닌 삼릉 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면 가지 못하는 멋진 불상이 바로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이다. 

경주에는 안내가 친절하지 못하여 지나는 길 주위에는 있지만 찾지 못하는 불상과 불적, 유적들이 꽤 많다. 매번 경주를 갈 때마다 느끼지만 이야기가 있는 답사 길이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특히나 경주 남산의 불적은 가이드가 잘 되어 있다면 의미가 깊은 참배의 길이 될 것인데 말이다. 

이글을 보는 모든 분들께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에 꼭 가서 참배하기를 권한다.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7세기 중반 그러니까 600년대 중반 조성된 불상이다. 우리나라 불상 중 바위에 조성되는 시초의 불상이다. 부처님과 보살님의 얼굴을 보면 조선시대 불보살상처럼 근엄함과는 거리가 있는 마음씨 좋은 청년의 모습이다. 그저 가볍게 삼배만 해도 모든 소원을 다 들어주고 모든 걱정거리 다 없애줄 것 같은 불보살님이다. 본존불은 손의 모습이 오른손은 손바닥을 위로한 시무외인과 왼손바닥을 밑으로 한 여원인을 하고 있다. 시무외인은 부처님께서 걱정거리를 없애주겠다는 수인이고 여원인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수인이다. 나는 찾아가면 삼배를 마치고 주변을 한참 동안 어슬렁거리며 불보살님의 여유로움과 입가의 웃음을 마음과 얼굴에 새겨놓는다.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중앙의 본존불상이 높이 2m73㎝이고 좌협시보살은 2m35㎝, 우협시보살은 2m32㎝이다. 불상은 양감으로 조성되어 전체적인 모습에서 조형성이 풍부하다. 머리가 몸에 비해 유난히 큰 점은 경주 남산에 있는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경주 남산의 불상의 머리가 큰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이 경주 남산 불상이 경주 남산 불상인 이유다. 

경주 남산의 부처님은 높은 곳에 조성됐다. 그러므로 참배하는 신자들이 밑에서 위를 보면서 참배를 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불상은 전각에 조성되며, 법당에 들어가 바로 앞 거의 정면에서 부처님을 참배한다. 눈앞에서 참배하고 바라보기에 균형이 맞아야 한다. 그러나 경주 남산의 불상은 법당이 불상보다 더 멀리, 더 아래에서 바라본다. 그렇기에 머리가 커야 균형감이 맞는다. 즉 야외 남산에서 바라보는 신자의 시선에 맞춰서 불상을 조성한 것이다. 갈 때마다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지금의 자리보다 약 1m 이상 좀 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계셔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좌협시보살은 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의 보살이고, 신자가 바라보면 오른쪽이다. 배동의 좌협시보살은 정병을 들고 있다. 정병은 삶이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생명의 물인 감로수를 뿌려주는 관세음보살의 상징이다. 그래서 정병을 들고 있는 좌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로 추정된다. 추정을 하는 것은 관세음보살의 이마에 아미타불이 새겨져 있다면 100% 관세음보살이 되는데 명확한 확인이 안 되고 있다. 혹시나 다른 보살님께서 정병을 들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협시보살은 두광에 꽃문양과 가슴과 다리 밑으로 굵은 보석을 두르고 있다. 정병을 들고 있는 좌협시보살을 통해 본존불은 아미타 부처님이고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토신앙에는 미래에 오실 미륵불이 주인인 미륵정토 신앙과 아미타불이 주인인 극락정토 신앙이 있다.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삼존입상은 남산에 흩어져 있었는데 1923년 지금의 자리에 옮긴 것이다. 이후 어느 때 전각을 세워서 보호한다고는 했지만, 현재는 불상에 곰팡이 등 습기에 의한 훼손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경주 남산의 화강암으로 조성된 불상은 햇빛과 바람이 통하게 해야 한다. 화강암은 햇빛이 차단될 때 습기에 의한 훼손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경주 남산의 불상은 자연에 노출시켜 남산의 햇빛과 바람, 남산이라는 자연환경으로 보존시키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보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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