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명 보정 선사 재조명 나섰던
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 지어
생애, 업적, 차시까지 총망라해

금명 보정 선사 진영.
금명 보정 선사 진영.

조계산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위대한 선지식을 가장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한반도의 험난한 역사 속에서 송광사 역시 폐허가 될 위기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한 혼란기에 송광사는 물론 조계종의 종통을 혼신을 다해 지킨 선지식이 바로 다송자(茶松子) 금명 보정(錦溟寶鼎, 1861~1930) 선사다.

하지만 현대의 불자들에게 ‘다송자’라는 호도 ‘금명 보정(錦溟寶鼎)’이라는 법호도 낯설다. 이런 상황에서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 스님은 송광사의 옛 자료를 수집하며 금명 보정 선사를 알게 됐고, 송광사 주지 소임을 맡았던 2001년 송광사에서 ‘다송자 금명 보정의 생애와 사상’ 이라는 이름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역사 속에 묻힌 금명 보정 선사의 위대한 업적을 널리 알리고 이를 계기로 금명 보정 선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자 한 것이다.

현봉 스님은 2015년에 다시 한 번 송광사에서 ‘다송자를 중심으로 한 선사상(禪思想)과 송광사 다풍(茶風)’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금명 보정 스님의 업적과 행적에 대해 제대로 알리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여겨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현재 다송자의 저술은 〈한국불교전서 제12책〉 ‘보유편’에 방대한 분량이 수록돼 있지만 한문인데다 한글로 번역되지 않아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난 2020년은 금명 보정 선사 입적 90주기였다. 이때 송광사 부도원에 ‘금명보정탑(錦溟寶鼎塔)’을 건립했다. 현봉 스님은 이후로도 금명 보정 선사에 관한 자료를 보정해 드디어 이 책 〈다송자 금명보정〉을 세상에 내놓게 됐다.

이 책에서 현봉 스님은 다송자의 문집 가운데 일부 행적을 뽑아 행장을 중심으로 업적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송자의 시고(詩稿) 1000여 편 가운데 차시(茶詩) 70여 편과 문고(文藁) 가운데 기문(記文) 몇 편을 골라 번역을 함께 실었다. 

행장을 따라가다 보면 송광사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크고 작은 사건을 접하게 된다. 또한 한반도의 당시 시대상도 알 수 있어 귀중한 사료 역할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송광사성보박물관의 도움을 받아 남아 있는 사진 자료들도 이 책에 수록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다송자 금명보정/ 현봉 지음/ 조계종출판사/ 2만7000원
다송자 금명보정/ 현봉 지음/ 조계종출판사/ 2만7000원

조계종풍을 재정립했다고 평가받는 다송자 금명 보정 선사는 어떤 인물일까. 금명 보정 선사는 송광사에 출가해 주석한 대종사로 법휘(法諱)는 보정(寶鼎)이며, 법호(法號)는 금명(錦溟)이다. 스스로 호를 다송자(茶松子)라고 했다.

금명 보정 스님이 송광사를 지키던 때는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대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혼란과 핍박의 시대였다. 조정의 관리는 승려를 노비 부리듯 하였고, 사찰은 종종 약탈의 대상이었다. 언제 목숨을 잃어도 놀랍지 않은 시대였다. 금명 보정 선사가 남긴 당시 기록에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두 벗이 찾아와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면서 말하기를 “이런 난세에 보신하는 것은 재야에 숨는 것이 좋으니 함께 세속으로 나가도록 하자”고 하자, 대꾸하기를 “두 형들은 어찌 그런 생각을 하는가? 나는 이미 입산하여 불자(佛子)가 되었으니 맹세코 산을 내려가지 않을 것이오. 차라리 저런 산적들에게 해를 당할지언정 불자의 이름을 바꾸지 않으리라. 그대들이나 바라는 대로 환속하여 스스로 도생하시기 바라오.”

당시 일제는 일본의 조동종을 한국불교에 들여와 원종이라는 것을 만들어 사찰을 통제하려 했다. 뜻있는 선사들은 이러한 만행에 저항하며 임제종 종무원을 송광사에 설립하였다. 이후 조선불교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핍박 속에서도 금명 보정 선사를 비롯한 선지식들은 임제종풍에 입각해 우리 불교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금명 보정 선사 역시 시대에 꺾이지 않고 평생 동안 송광사를 지켜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칫 사라질 뻔한 송광사의 모든 자료들을 한평생 수집하고 고증하고 정리해냈다. 오늘의 송광사가 승보종찰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금명 보정 선사가 그 틀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송광사의 역사를 남기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한국불교와 나아가 한국문화와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를 남긴 업적이다.

계맥과 다풍을 이어갔던 것도 금명 보정 선사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동국의 칠불계맥은 대은으로부터 금담에게 전해지고, 다시 초의와 범해로 전해졌다. 범해는 다시 송광사의 금명과 율암, 통도사의 선곡, 해인사의 제산과 취은 등 여러 율사들에게 전해졌다. 서상수계로 되살린 동국계맥을 중흥시켜 오늘의 한국불교가 있게 되었던 것이다. 금명 보정 선사는 이러한 초의와 범해로 이어지는 계맥과 더불어 그들의 선, 교, 율을 이어받고 대변했으며 나아가 그들의 다풍(茶風)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범해로부터 많은 감화를 받았고, 초의의 〈동다송〉과 〈다신전〉 등을 읽으며 대흥사의 다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스로 자호를 다송자(茶松子), ‘차를 즐기는 송광사 스님’이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자긍심이 담겨 있다. 책에 수록된 시를 통해 우리는 금명 보정 선사의 면모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