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설이었다. 합동차례를 지내는 가족이 많아져 아이부터 어른까지 절은 여느 때보다 북적였다. 1년에 두 차례, 여러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날을 맞아 입춘 때 준비해둔 입춘부와 소원성취부를 나눠주며 안부를 물을 때였다.

“스님! 잠시만 대화할 수 있을까요?”

점심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한 보살님이 다가와 물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안색은 어둡고 무언가로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정해진 일정들이 있어 갑자기 짬을 내기 부담스러웠지만 상담을 뒤로 미루기엔 보살님의 낯빛이 너무 어두웠다. 나는 예정된 자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20분 뒤 보살님과 마주앉았다.

“스님, 너무 힘들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게 힘드세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보살님은 따님에 대한 걱정에 매여 있었다. 자식을 향한 애정이 남다르다보니 자식이 잘될 땐 보람을 느끼다가도, 자식이 힘들어할 땐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마음에 삶이 후회되고 자책한다는 얘기였다. 그러다보니 우울증에 시달리고 괴로움에 깊이 빠져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벗어날 길을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속내를 전해듣는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동안 시간을 두고 보살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금은 길이 보였다. 자식이 잘 살기를 바라는 보살님의 마음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자식을 돕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삶의 목표이자 전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식 역시 스스로가 힘들 때 엄마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자식을 대하는 대로, 자식 역시 엄마에 대한 이미지가 고착화된 것이다.

그래서 보살님에게 자식을 도와야 한다거나 자식 잘되는 게 내 삶의 전부라는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생각이 나를 고통으로 끌고 간다는 걸 알아차리고 멈추도록 하는 수행법을 일러줬다. 또 매일 집에서 우울 속에 있지 않고 부처님 만나러 출근하듯이 절에 당분간 계속 나오기로 하고 상담을 마쳤다. 60대 중반의 보살님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집에 돌아갔다.

부산 미타선원장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하림 스님.

붓다께서 “누구에게 의지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으로 가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라”고 유훈하신 것이 생각난다. 붓다가 그렇게 말씀하고 행하셨듯이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하고, 함께 그 길을 걸어가며 홀로 설 수 있도록 동행하는 것이 앞으로의 사찰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심리치료 책을 읽고 있다. 붓다께서 강조하신 길이 현실에서, 현장에서 결실로 맺히기를 늘 기원 드린다.

저작권자 © 현대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